짧고 강한, 서평연대 서른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2. 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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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상태의 사랑(김연덕 지음 / 민음사)

‘액체 상태의 사랑’ 표지



어떠한 상태가 되더라도 기꺼이 사랑에 폭 안겨 버리거나 뛰어들어 버리는 시인의 사랑 어린 시선이 담긴 일기. 시인의 가족, 연인, 강사와 수강자로 때로는 단골과 사장님의 사이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 자주 가는 카페나 와인바, 학교와 집은 곧 사랑이 되고 시가 된다.

다 타고 재가 되어 버린대도, 녹고 녹아 흘러 버린대도 사랑하게 된 모든 걸 기꺼이 사랑하는 시인의 시선은 마치 투명한 물 같았다. 이 책에는 머물러 있다가 흘렀다가 눈이 되어 내렸다가 다시 흐르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2월, 길거리에 들리는 캐럴을 들으며 눈을 기다리면서도 기다리지 않는 모순된 설렘을 안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잠시 잊었던 낭만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한 해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추억하기 좋은 이 시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에세이. 읽고 있으면 마음속 기쁨과 슬픔이 모두 눈이 되어 내리고 소복이 쌓일 듯하다. 봄이 오면 눈이 녹은 그 자리에 새싹이 자라나 모두 다 괜찮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현다연



■불안의 변이(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불안의 변이’ 표지



이 책은 어떤 장르로도 담을 수 없는 경계를 오가는 작품들로 묶였다. 열 행의 짧은 단상부터 마리 퀴리 입장에서 쓴 약전, 불안한 사람의 이야기(바실리 평전을 위한 스케치), 그리고 외로움과 그리움 어귀에서 복잡한 감정을 담은(나의 몇 가지 잘못된 점) 이야기가 소설처럼 생생하면서도 에세이처럼 진솔하게 다가온다.

수록된 작품들은 대상을 분석하는 데 집요하다. 인물의 처지, 질병, 애도 그리고 불안의 감정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파편처럼 흩어진 경험을 문장으로 엮는다. 인물을 포착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끈기를 갖고 분야를 넘나드는 글을 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산책하듯 자유로운 영혼처럼 다가왔다.

책 제목의 ‘불안’처럼 불안하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다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최상현 / 서점원, 9N비평연대)

최상현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정아은 지음 / 마름모)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표지



장편소설로 큰 문학상까지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정아은은 어느 날 신문사로부터 칼럼 청탁을 받는다. 고작 원고지 10장 분량. 정아은의 눈에는 지면에 이전에 글을 썼던 모든 필자의 글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나로서는 까무러쳐도 따라갈 수 없을 급으로 보였다”라고 그때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런데 정아은 작가가 이를 극복한 과정이 기발하다. 청탁을 받은 다음 날부터 정 작가는 신문이라는 신문의 칼럼을 모두 찾아 읽는다. 짧은 글쓰기에 관한 책도 보이는 대로 사들였다.

압권은 이제부터다. 한 편의 칼럼을 기고하기 위해 무려 다섯 편의 칼럼 초고를 쓴 뒤, 그것도 각각 서너 번에 걸쳐 퇴고한다. 그리고 마감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중 두 편을 골라 거듭 퇴고한다. 그러고는 원고를 넘겨 줘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 두 편 중에서 한 편을 골라 신문사로 보냈다고 한다. 이걸 귀엽다고 해야 할지, 가엽다고 해야 할지, 잘나가는 작가의 병아리 시절이 우리를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사실 새로운 시작점에 선 모든 이에게 과연 어떤 각오와 태도가 필요한지를 알려 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진정한 작가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단련됐고, 얼마나 강인해졌는지를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보여 주는 책이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김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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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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