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만이 살길이다···학령인구 변화에 사라지는 여학교·남학교
지난 15일, 인천 동구의 공업계 특성화고인 인천재능고 신입생 임시소집에는 개교 후 57년 만에 처음으로 여학생이 참석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교복과 체육복 치수를 측정하고, 합격증을 받았다. 인천재능고는 올해까지 남고로 운영했는데 내년에는 신입생 191명 중 22명이 여학생이다. 인천재능고 관계자는 “지난 11월에 열린 입학설명회에도 여학생이 아주 많이 왔다”며 “선생님들도 연수를 받으며 여학생들에 대한 지도를 함께 준비하고 있고, 학생들도 기대가 많다”고 말했다.
전국의 남학생, 여학생으로만 이뤄진 단성학교들이 남녀공학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일부 권역의 학생 쏠림현상이 심화하면서 학교 운영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전국의 시도교육청은 화장실 등 시설공사비를 대고, 남녀공학 전환 시 인센티브를 주는 등 각 학교가 적정 규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는 농어촌 지역은 남녀 신입생을 모두 받아야 학생 수를 유지할 수 있다. 전북 장수군의 백화여자고등학교는 내년부터 교명에서 ‘여자’가 빠진다. 백화여고는 1983년 설립됐다. 현재는 총 3학급(학년당 1학급)만 운영 중이다. 전북 고창군의 고창여고도 ‘자유고’로 이름을 바꾸고 내년부터 남학생을 받는다. 고창여고는 최대 24학급(학년당 8학급)까지 운영하다가 현재 15학급(학년당 5학급)으로 줄었다.
통학 거리 등으로 학교 신설이 필요하지만 학생 수가 충족되지 않는 곳에서도 기존 단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바꾸고 있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취임 후 남중·여중 4곳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제주시 동쪽에는 남중이 없고, 신제주에는 여중이 없다.
올해 처음으로 여학생을 받은 서울 장충고도 여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사례다. 서울 중구에는 남고만 세 곳이었다. 장충고 관계자는 “근처에 여학교가 없다 보니 여학생들이 멀리 통학하게 되는 불편함이 있어서 지역사회에서 계속 (남녀공학 전환)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남녀공학 전환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022년~2072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학령인구(6~21세)는 지난해 750만명에서 2040년 337만명, 2072년 278만명까지 감소한다. 초등학교 신입생은 내년에 처음으로 40만명대가 붕괴되고(35만7771명), 5년 뒤에는 30만명을 밑돈다(27만2337명).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단성학교 운영이 많이 어려울 거로 보고 있다”며 “올해 서울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신청한 곳만 3~5곳”이라고 말했다.
구성원들의 반발로 남녀공학 전환이 불발된 사례도 있다. 생활지도 어려움이나 시설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춘천 유봉여중은 2025학년도 남녀공학 전환을 시도했으나 구성원들의 반대로 단성학교를 유지하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성학교인 줄 알고 입학했는데 나중에 교육 여건이 바뀌면 학생들의 정서나 입시가 불안정해진다고 반대하거나, 전통있는 학교들의 경우 동문회가 활성화돼있는데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남녀공학으로 전환된 학교들은 시설을 구비하고 학급 편성 등에 신경 써 교육환경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장충고는 기존 남자 화장실 2개를 여자 화장실로 바꿨다. 내년 여름방학까지 각층에 남녀 화장실을 모두 갖출 예정이다. 장충고 관계자는 “학급 편성을 어떻게 할까부터 고민했는데, 6개 학급에서 남녀 학생 비율 1대 1로 합반해 운영한다”며 “각종 행사에서 분위기가 활기차지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과거에는 학생 수가 워낙 많았고 남녀를 구분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남녀를 구분할 필요성이 없어졌다”며 “학령인구 급감 시대에는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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