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이면서 동시에 고체... 양자 물질에서 '제4의 상태' 네마틱 찾았다

스마트폰 액정처럼 액체+고체 상태
이론만 존재하던 '스핀 네마틱' 관측
양자컴퓨터 기술 발견의 단초 제공

이리듐 산화물 사각격자 안에 작은 파란색 화살표는 쌍극자, 노란색 도넛 모양은 사극자를 나타낸다. 230~260K(켈빈) 사이 온도를 나타내는 왼쪽 빨간색 직사각형 안에 있는 사각격자에서는 쌍극자(화살표)가 사라지고, 사극자만 남아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양자 물질에서 액체·기체·고체 상태 중 한 가지가 아닌 액체와 고체 상태를 동시에 가지는 '네마틱' 상태를 국내 연구진이 최초로 관측했다. 수십 년간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양자 물질의 네마틱 상태가 실제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에 따르면 김범준 부연구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이달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발표했다.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네마틱 상태는 휴대폰 화면에 쓰이는 액정(liquid crystal)이다. 액정은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고체처럼 분자의 배열이 규칙적이다. 이 같은 네마틱 상태가 양자역학 개념인 스핀(spin·전자의 각운동량)에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적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 발견된 적이 없었다. 고체 상태인 자석에서 스핀은 N극과 S극, 즉 두 개의 '쌍극자'를 형성하는데, 스핀 네마틱은 극이 4개인 '사극자' 형태이기 때문이다. 기존 실험 장비는 쌍극자를 검출하는 데 유용한 반면, 사극자 형태인 네마틱을 관측하기는 어려웠다.

김범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부연구단장. IBS 제공

연구진은 엑스(X)선을 사용해 사극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산란장비를 설계하기 위해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와 4년간 협력했다. 이어 포항가속기연구소에 해당 장비를 구축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고온 초전도체 후보 물질인 이리듐 산화물에 X선을 비춰 스핀의 모습을 관찰했다. 관찰 결과, 230K(켈빈·-43.15도) 이하 저온에서는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지만, 260K(-13.15도)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져도 사극자가 남는 네마틱 현상이 발견됐다.

고체와 액체가 함께 존재하는 스핀 네마틱의 발견은 양자컴퓨터 기술로 발전할 수 있는 스핀액체 발견의 가능성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 저자인 조길영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학계에서는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수십 년간 스핀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면서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스핀 액체 탐색의 핵심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