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태양폭풍 온다 … 통신·전력망·항공운항 대혼란 우려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2023. 12. 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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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위협하는 태양풍

밤하늘을 초록빛, 붉은빛 커튼으로 휘감는 오로라는 극지방 인근에서만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달 3일(현지시간) 극지방이 아닌 러시아 남부,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유럽과 북미 일부 지역, 그러니까 북위 40도 지역에서 오로라가 목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일에는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서도 선명한 오로라가 관측되며 주목을 끌었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날아온 양성자와 전자 등이 지구 자기장과 상호 작용하면서 극지방 상층 대기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방전 현상이다. 오로라가 많은 곳에서 선명하게 관찰됐다는 것은 태양에서 많은 양성자와 전자 등이 태양풍을 타고 극지방에서 중위도대로 남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양풍은 태양의 대기층에서 이온 입자들이 플라스마 형태로 고속 방출되는 현상이다. 태양풍의 원동력은 강력한 폭발에 의해 태양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다. 태양이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하는지에 따라 태양풍의 강도는 변화한다.

태양은 약 11년을 주기로 강력해지는 극대기와 약해지는 극소기를 반복한다. 태양 활동 주기는 18세기 스위스 천문학자 루돌프 볼프가 제안한 흑점 지수 계산법에 근거해 1755~1766년을 1주기로 명명했고, 이후 평균 11년마다 주기를 늘려가고 있다. 인류가 태양 활동 주기를 세기 시작한 이후 24번의 주기가 있었으며, 202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 활동은 2019년 12월에 25번째 주기에 공식 돌입했으며 2025년 7월에 극대기를 맞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힌 바 있다.

태양 활동을 가장 손쉽게 파악하는 방법은 태양 표면의 흑점 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태양 활동이 활발하면 흑점은 많아지고 침체되면 적어진다. 흑점 수가 줄어들면 태양의 불덩이가 일렁이는 플레어 발생 빈도 역시 줄어들고 플라스마와 자기장의 방출도 비례해 적어진다. 태양 자전으로 발생하는 흑점은 자기장으로 대류가 방해를 받으며 평균적인 태양 표면 온도보다 낮아지면서 검게 보이는 부분이다. 평균적인 태양 표면 온도는 약 5800K(5227도)이지만, 흑점 온도는 4000~5000K(3727~4727도)다.

지구와 달리 유체 형태인 태양은 고위도와 적도의 자전 속도가 다르다. 적도 기준 약 25.5일, 극 기준 약 33.5일인 태양의 자전 속도는 내부 대류 및 질량 이동의 원인이 된다. 차등 회전에 따라 플라스마 운동이 영향을 받고 특정 부분에 강한 자기장을 갖는 곳이 생긴다. 강한 자기장 때문에 태양의 대류가 지체되고 온도가 낮아지면서 흑점이 생기는 것이다.

태양 활동이 활발한 주기에 극대기 흑점 수는 보통 200개 안팎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ASA 등은 이번 주기에 태양 활동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보고 2025년 7월쯤 흑점 수가 115개로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태양은 NASA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흑점 수는 지난 7월 벌써 159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전 24번째 주기의 정점에서 나타났던 흑점 수 120개를 웃도는 수치다. 지난 8월에도 흑점 수는 115개를 기록했다.

이에 많은 과학자가 새로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태양 활동이 이미 예측치를 훨씬 넘어 지난 20년 이래 가장 활발한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로 미뤄볼 때 애초 예상보다 몇 달 앞선 내년 하반기에 태양 활동이 정점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NASA의 태양 물리학자인 딘 페스널 박사도 라이브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태양이 11년 주기에서 가장 활동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2024년 말 또는 2025년 초에 태양 활동이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태양 활동에 인류가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태양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태양풍을 타고 지구에 당도하는 태양에너지 입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구에 도달한 수많은 태양에너지 입자는 통신, 전력망, 항공기 운항 시스템, 우주선 등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해 태양 폭풍으로 스페이스X가 발사한 저궤도 우주 인터넷 위성 49개 중 40개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해 약 50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

태양풍은 실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 1989년 캐나다 퀘벡주와 인근 지역에서는 태양풍에 의한 전력 과부하로 9시간 동안 600만명 이상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1994년 일본에서는 태양풍에 의해 통신위성이 고장 나면서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이 중단됐으며, 1997년 미국 AT&T의 통신위성 텔스타 401호는 태양에서 발생한 자기 폭풍으로 수명이 9년이나 단축되는 등 태양풍으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태양풍 사건으로는 1859년 태양대폭풍이 있다. 당시 하와이, 쿠바는 물론이고 적도 지방에 가까운 콜롬비아에서도 오로라를 관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전신 시스템은 마비됐다.

2013년 영국 런던로이즈와 미국 대기환경연구소(AER)는 캐링턴 사건의 데이터를 사용해 비슷한 일이 현재 일어났을 때 세계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비용을 계산했는데 2조6000억달러(약 344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무시무시한 태양풍에 인류는 가만히 손을 놓고만 있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2013년 '우주전파재난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제정했다. 매뉴얼에 따르면 우주전파재난 위기경보 수준을 4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로 구분하고, 주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우주전파재난 경보를 발령하면, 유관기관과 함께 해당 분야 피해 복구와 조치를 수행하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우주전파센터에서 우주전파환경 예·경보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국립해양대기청(NOAA)을 중심으로 NASA, 국방부, 에너지부, 국무부 등이 참여하는 '국가우주기상프로그램(NSWP)'을 수립해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1995년 '소호(SOHO)'를 발사한 데 이어 1997년 '에이스', 2020년 '솔라 오비터' 등 태양 탐사 위성을 NASA, 유럽우주국(ESA) 등이 연이어 발사하며 태양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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