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랩·신탁 불법 걸린 증권사들, 자율배상 두고 `눈치게임'

우연수 기자 2023. 12. 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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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손실 계좌 손해배상"…NH투자·SK證 선제적 자율조정 마무리
규모 큰 곳은 셈법 복잡…"횟수·금액 봐야"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랩·신탁 운용 실태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를 마무리하고 중간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증권사들이 손실 계좌에 대한 선제적인 손해배상에 동참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

금감원은 증권사 위법 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계좌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통한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지만, 규모가 크고 위법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증권사들의 경우 선제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2~3일 내 혐의가 적발된 증권사들로 금감원의 채권형 랩·신탁 검사 중간 결과가 전달될 예정이다. 각 회사는 금감원이 지적한 위법 행위와 횟수·금액 등을 살펴보고, 이후 소명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를 종합해 최종 검사 결과를 낸다.

금감원은 올해 상반기부터 9개 증권사(하나·KB·한국투자·유진투자·SK·교보·키움·NH투자·미래에셋)를 대상으로 채권형 랩·신탁 운용 실태 점검에 착수했다. 그 결과 특정 고객 계좌의 손실을 불법 다른 고객의 계좌로 전가하는 등 중대 위법 사실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증권사 위법으로 고객 손실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경위는 이러하다. 증권사들은 특정 고객의 랩·신탁 계좌로 기업어음(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했다. 예를 들어 한 증권사는 총 6000여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했다.

채권 금리가 급등한 시기, 만기가 먼저 도래한 고객들의 수익률을 위법하게 보전해주고 그 손실을 만기가 좀 더 늦은 계좌로 돌린 것이다.

금감원이 파악한 증권사별 손실 전가 금액은 최대 수천억원 규모다.

금감원은 손실 계좌 고객에 대해 손해 배상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결과를 발표하면서 "운용상 위법 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투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하여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법상 운용상 위법 행위가 있는 경우, 금융투자회사가 손해배상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사가 위법 행위를 인정하게 되면 자율적인 조정·사적화해를 통해 자체적으로 배상할 수도 있고, 소송을 통해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건은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펀드 등을 불완전판매한 사례들과는 다르다"며 "충분히 대응 능력이 있는 기관 투자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사들이 자율적으로 하되 잘 안되면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지는 금감원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위법 수준이 중대하지 않고 금액이 적은 경우엔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게 리스크를 털고 가기에 좋을 수 있다. 제재심의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제재 확정까지 가지 않고 고객 관리하는 차원에서 회사 대 회사로 해결하는 게 가장 깔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금감원이 들여다 본 랩·신탁의 고객들은 대부분이 여유 자금을 유치한 법인으로 알려진다.

증권사 중 SK증권이 올해 초 선제적으로 사적화해를 마쳤으며 1월부터는 해당 상품 판매도 중단시켰다. NH투자증권도 지난 9월 자율적으로 배상에 나섰으며 현재 마무리된 상태다. 금액은 100억원대 수준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금액이 큰 증권사들은 적극 소명을 통해 혐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우선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 선제적으로 배상에 나서면 위법을 모두 인정하는 셈이 되고, 배상 규모로도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액이 적은 곳들은 금감원의 최종 검사 결과나 제재심, 금융위 의결 등이 나오기 전에 자율적으로 배상에 나설 수 있겠지만 금액이 큰 곳들은 선제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손해배상을 검토하고 있진 않다"며 "이번주 내 구체적인 위반 혐의를 전달받고 나면 자율조정이나 소송, 혹은 우선 적극 소명하는 방식 등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투협회 관계자는 "각사의 불법 수준, 고객 유형, 판매 프로세스별로 케이스가 달라 획일적인 손해배상 기준을 정할 순 없다"며 "적정한 기준으로 환매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oinciden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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