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투쟁, 12·12 뒤 사형선고…민주주의 길 위엔 그가 있었다

김은형 2023. 12. 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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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 김대중’ 내년 1월10일 개봉
영화 ‘길위에 김대중’. 명필름 제공

신드롬을 일으킨 ‘서울의 봄’이 다룬 12·12 군사반란의 9시간, 그 앞과 뒤를 연결하는 영화가 개봉한다. 내년 1월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이다.

‘길위에 김대중’은 고 김대중 전대통령(1924~2009)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지만 군부 쿠데타, 유신,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전쟁 이후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 김대중의 삶 전체가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관통해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김대중이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끈질기게 독재와 싸우고 국민을 설득했던 모습을 비추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하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

영화는 목포의 젊고 야심만만했던 사업가 김대중이 정치에 투신하는 과정을 짧게 소개한 뒤 우리가 잘 몰랐던 젊은 정치인 김대중을 조명한다. 후대에게는 민주투사로 각인된 김대중이 사실은 확고부동한 의회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세번이나 국회의원 낙선의 고배를 마신 뒤 장면 총리의 발탁으로 민주당 대변인이 된 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협정을 추진할 때 변절자라는 동료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협정에 반대하지 않고 가장 실리적인 협정안을 끌어내자고 주장했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 . 명필름 제공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밀어붙일 때는 야당에 의석수를 주겠다는 박정희의 제안을 받아 의회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10·26 사태 뒤 박정희 독재가 종식됐다고 많은 이들이 ‘서울의 봄’을 서둘러 기다릴 때 비민주적인 방식의 정권 종식은 또 다른 독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며 12·12 반란을 예견하기도 했다. 영화는 생전 인터뷰와 대통령 퇴임후 구술로 남긴 회고록 속 김대중의 목소리를 통해 이런 국면들에서 의회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 김대중이 내렸던 판단과 결단을 전달한다.

‘길위에 김대중’에는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진과 영상자료들도 여럿 담겼다. 이 가운데 교도소 시시티브이(CCTV)에 잡힌 두 장면이 인상적이다. 유신 때 연금을 뚫고 명동성당에 가서 재야인사들과 시국선언을 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8년형 1심 선고를 받고 투옥 중이던 김대중이 홀로 담배를 물고 앞을 응시하는 동영상과 전두환 정권 때 내란음모죄로 사형 판결(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던 김대중이 교도소에 찾아온 이희호 여사와 안기부 직원의 미국 망명 권유를 거부하다가 한참 침묵하는 모습은 투사 김대중 뒤에 가려져 있던 인간 김대중의 외로움이 일렁거리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김대중 영화에 김대중이 없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긴 시간 할애한다. ‘길위에 김대중’이 개인의 치적이나 위대함을 기리는 전기 영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가는 지점이다. 투옥으로 한 달 동안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던 김대중이 2년여 망명생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6년 만에 광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직전 대선 후보 경쟁을 두고 김영삼과의 갈등, 언론의 비난 등에 대해서도 영화는 윤색없이 보여준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 명필름 제공

‘노회찬 6411’(2021)에 이어 ‘길위에 김대중’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은 18일 시사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87년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가던 여정을 보면서 김대중을 이해하게 됐다.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해서 그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면서 “(투사나 사상가 등이 아닌) 정치인 김대중이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봐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범도’를 쓴 소설가 방현석이 대본을 썼고 배우 장현성이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11월 한달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만여 명의 후원자를 모집한 ‘길위에 김대중’은 이달 말까지 전국 13개 도시에서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연다. 또 개봉 뒤 국외 27개 도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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