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컬리, '불고깃집 지도' 만든 속내는
MD 큐레이션 역량 활용한 마케팅
서울식 불고기 가이드
지난 11월 초의 일입니다. 컬리가 '불고기 러버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가이드북을 내놨습니다. '서울식 불고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맛집을 안내하고, 컬리에서 판매 중인 불고기 제품도 알리려는 취지의 기획이었죠.
처음 이 기획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아, 신제품 홍보 책자겠구나' 했습니다. 적당히 맛집 두어 곳 추천한 뒤 "그 맛집 불고기, 컬리에서도 팔아요" 같은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컬리가 내놓은 기획을 살펴보니 제법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선 서울 시내에서 불고기 메뉴가 있는 5000여 곳의 식당 리스트를 추출한 뒤 서울식 불고기를 판매하는 200여 개의 레스토랑을 선정해 점수를 매겼습니다. 또 여기서 61개 레스토랑을 2차로 추출해 수차례 직접 방문한 뒤 최종 30개의 레스토랑을 골랐다는 설명입니다.
평가 역시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식 불고기의 특징인 불판과 고기(부위), 양념을 나음의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나눴습니다. 불고기에 빠질 수 없는 냉면과의 조화까지 고려했더군요. 그리고 총 9곳에 컬리를 상징하는 보라색 앰블럼을 달아줬습니다.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이름이 하나 떠오르실 겁니다. 전세계 레스토랑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미슐랭(미쉐린) 가이드'입니다. 컬리는 이 프로젝트를 '불고기 러버스'라 이름지었지만 사실은 '불고기 가이드'라 부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컬리가 왜
컬리가 왜 갑자기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걸까요. 미슐랭 가이드가 타이어를 더 팔기 위한 타이어 회사의 마케팅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컬리의 '불고기 가이드' 역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번에 선정된 맛집들과의 '협업'입니다. 최근 가정간편식 시장의 트렌드는 RMR(레스토랑 간편식)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메뉴를 구현하는 것을 넘어 맛집의 레시피를 그대로 집으로 옮겨오는 거죠.
문제는 'RMR'에 걸맞은 맛집을 섭외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어디부터 맛집이라고 해야 할 지도 애매하죠. 불고기 가이드는 이런 '맛집 지표'로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불고기집 타이틀을 선정한 뒤, 그 맛집의 메뉴를 컬리에서 판매하면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이 완성됩니다.
서울식 불고기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한식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기는 은근히 까다로운 '외식용' 메뉴이기도 합니다. RMR 제품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많습니다. 실제로 컬리는 이번 불고기 가이드에 맛집으로 선정된 메이필드호텔의 '낙원'과 손잡고 불고기와 갈비찜, 불고기 전용 불판을 판매 중입니다.
'K-미슐랭'으로의 길
최근 유통 채널 플랫폼들은 상품 외에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소비자들을 유입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쿠팡플레이를 선보인 쿠팡, 웹드라마를 내놓고 있는 CJ온스타일, 유튜브에서 1억뷰를 넘긴 콘텐츠 '편의점 뚝딱이'를 만든 CU 등이 대표적입니다.
업계에서는 컬리도 '불고기 가이드'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식들의 맛집 지도를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시리즈가 쌓이면 컬리판 '미슐랭 가이드'가 만들어집니다. 이 콘텐츠를 보기 위해 소비자들이 컬리를 찾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런 '맛집 가이드 북'은 컬리의 강점인 MD들의 큐레이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컬리는 그간 미식가를 위한 큐레이션 뉴스레터, 특정 영역의 핫한 상품을 한 패키지에 담는 '샘플러'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번 '불고기 가이드' 역시 이런 큐레이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기획이기도 합니다.
미슐랭 가이드 역시 시작은 자동차 여행 안내 책자의 부록이었습니다. 과연 컬리의 '불고기 가이드'는 미슐랭 가이드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일단, 시작이 반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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