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만에 ICBM 발사한 북한, 미 대선 앞두고 '호객행위' 시작됐다 [애널라이즈 정치]

이성대 기자 2023. 12. 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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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전격 발사했습니다.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린 지 한 달여 만이자 지난 7월 이후 6개월여만입니다.

앞서 우리 군당국은 북한이 18일 오전 8시 24분쯤 동해상으로 ICBM 1발을 고각 발사한 것을 포착했다고 밝혔습니다. 70여분간 약 1000km 를 비행했는데, 일본 정부에선 최고고도가 6000km 이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은 올들어 2월(화성-15형), 3월(화성-17형), 4월(화성-18형), 7월(화성-18형) ICBM을 발사했는데, 하반기엔 이렇다할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리를 보고 때리는' 눈과 주먹 자랑한 북한

그동안 잠잠하던 북한이 6개월여만에 전격 ICBM을 쏘아올린건 나름의 전략적 판단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북한 입장에선 적절한 타이밍을 고른 것인데, 대내적, 대남적, 대외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대내적 측면입니다. 북한도 연말엔 한해를 결산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업적을 내세울 필요성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찰위성 발사 성공 직후인 지난달 22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공화국무력이 이제는 만 리를 굽어보는 '눈'과 만 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다 함께 자기 수중에 틀어 쥐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눈'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주먹'은 사실상 ICBM을 의미합니다.

지난 7월 까지 진행된 ICBM 발사는 '눈없는 주먹'이란 한계가 있었다면, 이번 발사는 '눈을 확보한뒤 내민 주먹'과 같습니다. 다시말해 이전과 달리 ICBM 발사가 한층 위력이 커졌고, 이를 올해 국방분야 핵심 업적으로 부각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오늘(17일) 밝혔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대남 측면에선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2차 한미핵협의그룹(NCG) 합의에 대한 반발 성격으로 볼수 있습니다. 한미는 이번 회의에서 내년 6월까지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하겠다고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했습니다. 내년 하반기에 열리는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에 NCG에서 논의한 핵작전 시나리오도 처음 시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사실상 재래식 전력 위주인 우리나라의 대북 방어가 핵전력 운용 쪽으로 무게중심이 살짝 이동한 셈입니다.

특히 한미는 이자리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며 “북한의 미국과 미 동맹국에 대한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될 수 없고, 김정은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종말'은 지난해 11월3일 미국에서 열린 제54차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담겼는데, 공식 문서에 이같은 표현의 문구가 들어간건 처음입니다. 다시말해 '김정은 정권 종말'이란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조하는 강력한 수사인 셈입니다.

이때문에 북한은 한미의 확장억제를 구체화하는 NCG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 지난 7월18일 제1차 NCG가 서울에서 열린 바로 다음날인 19일 새벽,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쏘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습니다.

북, '거래의 명수' 트럼프에게 호객 행위

그러나 당시엔 한반도가 사정거리인 단거리미사일을 날렸습니다. 이번처럼 미국 본토에 닿을 정도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쏜다는건 우리 정부가 아닌 미국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하는게 일반적입니다. 다시말해 6개월만에 ICBM 발사를 재개한건 북한이 미국을 향해 메시지를 발신할 타이밍을 잡았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호객행위를 시작했다는 걸로 보입니다. 그 상대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면서, 내년 미국 대선은 '바이든 VS 트럼프' 리턴 매치가 될거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실제 워싱턴 싱크탱크에선 트럼프 2기가 들어서는 걸 전제하고, 미중갈등이나 북핵문제를 전망하는 세미나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지난달 초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워싱턴에서 연 세미나에서 김재천 서강대 교수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돌아오면, 김정은과 러브레터를 주고받을지, '화염과 분노'를 주고받을지 우려가 나오고있다”고 진단했니다. 어느 경우든 한국엔 걱정입니다. 어떤 경우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리정부를 '패싱'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친분을 토대로 북핵문제나 확장억제 정책 등을 임의 조정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마침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장 지난 16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유세에서 “김 위원장은 매우 좋은 사람”이라며 “그는 바이든 행정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자랑했습니다. 북한은 '거래의 명수'인 트럼프의 재등장을 염두에 두고 보란 듯이 ICBM을 날린 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연합뉴스〉

한미외교 전문가로 잘 알려진 스콧 스나이더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달 28일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 2기가 들어선뒤 독자적으로 북한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직면할 수 있는 시나리오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강력한 대북 억제 전략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강한 반발에 직면하고, 둘째,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의 수모를 겪은 김정은이 이를 만회하기위해 '호가'를 높일 수 있고, 마지막으로 한국내 자체 핵무장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중 눈여겨볼 건 둘째, 북한의 셈법입니다. 이미 중국의 지원 말고도 러시아와 밀착으로 상당한 군사기술을 받아낸 북한으로선 당장 북미관계 개선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손에 쥔게 더 많아졌습니다. 폭파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다시 복구해 언제든 7차 핵실험이 가능하도록 준비해놨습니다. '만리를 굽어보는 눈'이라는 정찰위성도 손에 쥐었고, '만리를 때리는 주먹'인 ICBM은 5년사이 더 고도화됐습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2019년보다 더 다양한 상품을 미국에 판매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스나이더는 “그래서 북미간의 새로운 관여정책에 대한 호가가 트럼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최근엔 북한이 미소를 지을만한 기사가 미국발로 보도됐습니다. 지난 13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북한의 핵 동결을 대가로 경제제재를 완화해주는 대북정책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측 인사들을 인용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하되, 새로운 핵무기 제조를 막기 위해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걸 구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배경으로 “소용없는 핵무기 관련 대화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중요한 일, 즉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자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트럼프측은 곧바로 “가짜뉴스”라고 반박했지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결국, 북한이 그동안 핵 능력을 꾸준히 강화해 몸값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온 게 트럼프의 재등장과 맞물려 제값을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ICBM 발사에 녹아있는 메시지란 해석입니다.

정대진 원주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과거와 달리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핵무력을 고도화하는 과정에 무게를 두고있다”면서도 “트럼프와는 면대면으로 겪어봤으니 자신들에게 바이든 정부보다 기회가 될 것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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