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반 우려반’ 안병영 장관…교육관료 말만 듣는 듯했다

한겨레 2023. 12.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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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천일야화][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45화 교육혁신의 좌절 2

“전교조 활동” “나아진 것 없어”
김병준·안병영, 교육혁신위 비판
안 장관 참여정부 비난 소문도
‘내신 중시·경로별 입시’엔 합의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등 주장한
김민남 교수 두고 “과격하고 이상”
안 장관, 교육관료 말만 듣는 듯해
“그게 아냐” 지적하자 “그러냐” 수긍

2008년 대입제도 확정 앞두고는
‘교사별 평가’ 반대 기존 방식 고수
대통령 뜻도 튕겨내면서 버텨
‘교육혁신 장애물’은 계속 나타나

2004년 3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기 전 안병영 교육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4년 1월9일(금) 윤덕홍 교육부 장관의 후임 안병영 장관 상견례 겸 오찬에 박봉흠 정책실장, 김병준 정부혁신위원장, 성경륭 균형발전위원장과 함께 참석했다(호경원). 김병준 위원장이 “교육혁신위는 일부 상임위원 중 강경파가 문제다. 그중 한명은 전교조 활동하다가 들어왔다”고 비난했다. 안병영 장관은 “혁신위 안을 보니 몇년 전 5·31 대책보다 한걸음도 더 나간 것이 없어 실망스럽더라”고 했다. 내가 혁신위를 옹호했다. “혁신위가 내놓은 경로별 입시는 아주 혁신적이며 미래 한국교육의 희망이다. 서울대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안 장관이 “문제는 대학에 그것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기에 “강요는 못해도 각종 인센티브로 권장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안 장관에게 “어쨌든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혁신위와 잘 협의하라고 말해주세요. 저도 혁신위에 교육부와 잘 협의하라고 하겠습니다”고 하니, 안 장관은 “물론이지요”하며 헤어졌다.

안 장관이 한해 전 연세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참여정부를 비난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속으로 좀 걱정이 됐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할 때는 상당히 참신하고 개혁적이었다. 당시 안 장관이 강연차 경북대에 왔을 때 참석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다시 등판한 안 장관이 과연 교육혁신을 해낼까?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2004년 2월24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시도교육감회의를 주재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월12일(목) 안병영 장관, 전성은 교육혁신위원장과 조찬을 했다. 2008년부터 경로별 입시를 도입하고, 내신을 중시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듣고 보니 두사람은 과거 좋은 인연이 있었다. 안 장관이 1996년께 거창고를 방문했는데 기숙사 시설이 너무 형편없어 리모델링 지원을 약속하고 갔다. 그래서 공문을 올렸더니 경남교육청에서 묵살했다. 몇년 지나 2003년 전성은 교장이 교육부장관 물망에 오르니 경남교육청에서 공문을 보내라고 하더니 임명이 안되자 다시 묵살하더란다. 참으로 약삭빠르고 비겁한 처세술이다. 안 장관은 “전성은 위원장과 교육을 보는 눈이 거의 비슷하다. 앞으로 잘 협력합시다”라고 말했다. 큰 희망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날 오후 3시반 사교육비 경감대책 회의가 열렸다(집현실). 교육부 김영식 실장이 10대 과제를 보고했다. 이(e)러닝 등 단기과제, 교사평가 등 중기과제, 학벌사회 타파 등 장기과제로 나누어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중요한 것 몇가지만 내걸고, 중기보다 단기과제를 앞세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제동을 걸었다. 안 장관이 자신 있다며 서너차례 호소하고, 이종재 교육개발원장과 김영식, 이수일 실장이 지원 발언을 했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교사평가가 가져올 분란을 걱정하며 요지부동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내가 나섰다. “경로별 입시는 옳은 방향이다. 선진국 대학들도 그렇고, 교육부와 교육혁신위가 10차례 회의해 합의됐다. 2008년부터 갑자기 바꿀 수는 없으니 3년 정도 점진적으로 새 체제에 접근해 가야 한다. 경로별 입시로 가고, 내신비중 높이고, 교사의 재량,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교사의 책임이 커지므로 교사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면 교사들도 수용할 것이다. 동시에 내신 신뢰를 높이기 위해 성적 부풀리기, 수행평가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하자.” 노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 “경로별 입시는 교육부, 교육혁신위, 정책기획위원장이 합의했다고 하니 그렇게 가고, 발표 내용은 단기 먼저, 중기는 뒤로 돌려라.”

회의 뒤 안 장관이 내게 감사 표시를 했다. 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악수하다 김민남 교수에게 “부산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김 교수가 “대구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아! 드디어 2008년부터 경로별 입시가 도입된다. 김 교수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이날 저녁 6시 반 중앙일보 회견 준비 회의가 열렸다(관저). 김재홍, 김호기 교수, 권오규, 이병완 등 12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말했다. “나는 앉아서는 글을 한페이지도 못 쓰는데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이 잘 정리된다.” 대통령에게 오후에 악수한 김민남 교수는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라고 설명하니 노 대통령이 “동아대 교수 아닌가요?” 라고 물었다. 균형발전위원 동아대 김민남 교수와 혼동하는 것 같았다. 노 대통령이 웃으며 “그러면 한명은 김만남으로 하든지”라고 농담을 했다. 늘 장난기와 유머가 많은 노 대통령에게 내가 말했다. “경북대 김민남 교수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주 양심적이고 훌륭한 분입니다.”

6월2일(수) 저녁 6시반 안 장관과 식사했다. 안 장관이 전성은 위원장하고는 아무 문제 없으나 몇몇 위원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특히 김민남 선임위원은 국립대 공동학위제, 교육이력철, 교육자치 등을 주장하는 과격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 필요한 개혁인데 교육부 관료들 말만 듣고 장관이 잘못 판단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김민남 교수는 경북대에서 오랜 세월 겪어봤는데 아주 양심적이고 개혁적 인물입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고 하자, 안 장관이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안심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었다.

2004년 8월31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주관으로 열린 대학혁신포럼에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전국 350개 총학장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8월18일(수) 오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내일 새 대입제도 토론이 있는데 수능 비중 낮추고 내신 높이는 것은 옳은 방향입니다. 다만 수능 등급을 5개, 9개, 15개 중 어느 쪽으로 할지 대립이 있습니다. 서울대 3대 천재로 불리는 제 은사 임종철 교수님은 서울대는 4등급 중 상위 1등급(25%)이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차 5등급을 지향하되 우선 9등급 정도가 좋겠습니다.” 노 대통령이 “그게 좋겠다”고 바로 동의했다.(당시 세칭 일류대와 교육부는 15등급을 주장하고 있었다. 알짜만 쏙 빼가겠다는 의도다.)

8월19일(목) 오후 3시 2008년 대입제도 회의가 열렸다(세종실). 내신과 수능을 상대평가해 9등급으로 나누기로 정했다. 교사별 평가를 주장하는 교육혁신위와 종래 방식대로 교과별 평가를 주장하는 교육부, 민경찬 교수(연세대) 사이에 첨예한 의견 대립이 발생했다. 노 대통령은 교사별 평가를 지지하다 안 장관이 강하게 반대하자, 그럼 부총리와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후퇴했다. 강승규, 김정금, 이재강 세 위원이 여러차례 교사별 평가를 주장했지만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았다. 이것 빼고는 모두 합의에 도달했다.

교사가 각자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독자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교사별 평가’를 하면 창의적, 혁신적 수업이 가능하며 학원 과외가 발붙일 여지가 적다. 선진국은 교사별 평가를 하는 반면 한국은 여러 교사가 가르친 내용에서 공통 문제를 출제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교과별 평가’를 고수해 학원과 일타 강사에게 절호의 먹잇감을 제공했다.

8월25일(수) 오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지난주 대입제도 회의 때 미결 사항인 교사별 평가 대 교과별 평가 문제를 우선 교과별 평가를 하되 몇 년 뒤 교사별 평가로 간다고 예고하면 양자 절충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노 대통령이 즉각 동의했다. 총리에게 이야기하니 이해찬 총리도 “그렇게 전환하는 데 5년 정도 걸릴 것이고 대학도 준비가 필요하고….” 하며 바로 동의했다.

안병영 장관에게 전화하니 내일 발표인데 준비가 부족하다, 반론도 많다며 난색을 보였다. 대통령 뜻인데도 자꾸 튕겨냈다. 나중에 전화가 와서 ‘장기적으로’ 교사별 평가 도입 구절을 넣겠다고 하기에 “관가에서 ’장기‘는 안 하겠다는 뜻이니 ‘중장기’로 고쳐달라”고 요청해 그리 정했다. 전성은 위원장에게 알려주니 아주 기뻐했다. 교사별 평가라는 개혁을 위해 일조해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교육혁신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계속 장애물이 나타났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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