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정국, 우리 앞에 서 있는 정치꾼의 민낯 [관점+]

이윤찬 기자 2023. 12. 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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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섣부름과 포퓰리즘
거대한 늪과 퇴행
느닷없는 김포 편입론
민주당 횡재세의 오류
尹 정부 섣부른 정책들
총선 정국서 잊힌 민생
침착한 리더십 어디에

# 정치는 어지럽고 민생은 어렵다. 칠흑 같은 '침체 터널'에 갇힌 서민에게 힘겨움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런데도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은 국민을 담보로 '정치적 흥정'만 늘어놓고 있다. '총선 정국'에 매몰된 우리나라 정치판의 민낯이자 뼈아픈 퇴행이다.

# 우리는 視리즈 「섣부름과 카오스(통권 573호)」 「포퓰리즘의 역행(통권 574호)」을 통해 섣부름과 인기영합주의란 늪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 마지막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고 있을까.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엉뚱한 짓

한껏 넓어진 무선통신망, 몰라보게 빨라진 인터넷…. 1990년대 중반 원격통신사업은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고작 10년 만에 달성한 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통신업계를 주름잡고 있던 전통의 AT&T는 여전히 '장거리 주파수'에 매몰돼 있었다. 곳곳에서 '그따위 구태한 전략으론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란 혹평이 쏟아졌지만, AT&T CEO 로버트 G. 앨런은 엉뚱한 짓만 거듭하고 있었다.

# 40대 기수론

납득 못 할 인수·합병(M&A), 독단적인 후임자 임명, 여기서 기인한 주가의 끝 모를 추락…. '무능한 CEO'였던 앨런은 AT&T를 침체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인내심을 잃은 AT&T 이사진은 1997년 10월 앨런을 내려 앉히고, 그 자리에 원격통신사업에 정통한 40대 기업인을 임명했다. '젊은 기수'로 선택받은 이는 일렉트로닉스·IBM에서 요직을 거친 마이크 암스트롱(Mike Armstrong)이었다.

시장은 곧바로 긍정적 시그널을 보냈다. 암스트롱의 임명을 발표한 다음날 AT&T의 주가는 전일 대비 5.1% 상승한 47.50달러를 기록했다. 시장도 그를 'AT&T를 혁신할 적임자'로 판단한 셈이었다.

# 90일의 침묵

그런데 그날 이후 AT&T에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암스트롱은 공식 석상에서 돌연 종적을 감췄다. 그 흔한 기자회견도, 내부연설도 하지 않았다. 시장을 흥분시킨 새 CEO의 두문불출은 무려 90일간 이어졌다. 암스트롱은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섣부름의 실패학'을 펼쳐봐야 한다.

# 섣부른 개입과 카오스

"리더는 카오스(chaos)에 익숙해져야 하고, 모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이걸 해내지 못한 채 중간에 개입하면 조직은 그야말로 카오스가 된다."
- 기술기업 고어 CEO 테리 켈리(Terri Kelly)

정책이나 전략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 현장에 적용했을 때 '갈등·조정·타협'이란 필연적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어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앞길을 막아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조직(국가 혹은 기업)의 리더가 절차와 변수를 탐색하지 않은 채 정책을 내놓거나 바꾸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욕구가 강하고 과신에 매몰된 리더는 이 '간단한 섭리'를 망각한다. 그들에게 탐색과 숙고는 번거로운 과정일 뿐이다. 문제는 얄팍한 성급함이 패착을 부르고, 패착은 실패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혁신기업 고어(GORE)의 전 CEO 테리 켈리가 꼬집은 '카오스'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혹자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을 지적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섣부름의 실패 사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가지 사례를 보자.

# 사례➊ 느닷없는 편입론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포: 서울시 편입론'. 사실 이 주장은 "한강을 경계로 경기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자"는 논의 과정에서 도출된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한강 남쪽에 있지만 생활권은 북부에 있는 김포시의 애매한 공간이 도마에 오르자 "서울로 편입해 달라"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이를 여당 대표(당시)가 섣불리 받으면서 일이 커졌다.

설익은 의견이 나온 지 고작 한달여 만의 일. 편입 효과를 따져본 보고서도, 위험요인을 분석한 리포트도 없었다. 하물며 서울이 김포를 품으면 무엇이 좋은지, 김포시민이 실제로 누릴 편익은 얼마만큼인지, 포화상태인 서울이 더 커지면 후유증은 없는지를 설명하는 여당 인사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서울시에 김포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맹목적인 속도전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포: 서울시 편입론'이 총선용이란 낡은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이유다. 과연 총선이 끝나면 이 섣부른 편입론은 어디쯤 서 있을까.

# 사례➋ 영구 횡재세의 빈틈

'섣부름의 늪'에 빠진 건 여당만이 아니다. 제1야당 대표 역시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횡재세의 오류다. 그 배경을 상세히 살펴보자. 용혜인 의원(기본소득당)이 횡재세 법안(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놓은 건 2022년 8월 10일이다.

여드레 후인 18일, 이번엔 이성만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정유사를 대상으로 삼은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다. 그해 12월엔 같은당 양경숙 의원이 '과세표준 3000억원을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한 기업에 초과소득세(횡재세)를 부과하자'는 내용의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세 법안은 국회에서 1년간 낮잠만 잤다. 몇몇 유럽국가가 횡재세를 도입할 때도 금배지들은 공론을 위한 테이블을 제대로 차리지 않았다. 그렇게 국회 어딘가에 묻혀있던 횡재세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11월 제1야당 대표가 '횡재세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민생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1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이재명 대표)."

곧바로 논란이 일었다. 금융권의 이자수익이 최대치를 경신할 땐 뭐 하다가 이제야 횡재세를 운운하느냐는 거였다. 대통령이 '(국민들이) 은행 종노릇하는 것 같다'면서 시중은행을 일갈하자 섣불리 내놓은 '총선용 카드'에 불과하단 비판도 쏟아졌다.

실제로 부랴부랴 꺼내든 탓인지 민주당의 횡재세안案엔 빈틈이 숱하다. 민주당은 '영구적 횡재세'를 앞세워 "횡재세는 일시적 이벤트로 발생한 초과 이윤에 부과하는 것"이란 기본틀을 흔들었다.

'석유가격 급등'이란 시대적 횡재를 거저 누린 정유사를 건너뛰고 은행부터 타깃으로 삼는 실수도 저질렀다. 횡재세를 채택한 20여개 유럽국가 중 정유사보다 먼저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 나라는 한곳도 없다. 제1야당 대표의 '섣부른 카드'가 횡재세의 합리적인 논의를 되레 방해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 패착과 부메랑

그렇다고 여야 수장만 '섣부름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건 아니다. 섣부름의 오류를 저지른 사례는 현 정부에서도 차고 넘친다. '근로시간제도 개편' 정책은 8개월간 숱한 논란만 양산한 채 흐지부지됐다.

진보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 법인세·종합부동산 인하책은 낙수효과는커녕 '세수 부족'만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 '중도금 대출 규제 완화' 등 집값 급락을 막겠다면서 시행한 부동산 정책은 가계부채 증가란 역효과를 양산했다. 하나같이 섣부름의 패착이자 뼈아픈 부메랑이다.

# 10% 위한 탐색

자! 이쯤에서 우리의 관점을 첫 질문으로 돌려보자. "AT&T의 새 선장 암스트롱은 석달간 뭘했을까." 답은 별다른 게 아니다. 그는 90일 동안 사내 중역들과 불철주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밑그림'을 설계했다. 기존 전략부터 미래 플랜까지 모조리 논쟁의 테이블에 올렸다.

섣부름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한 '탐색과 탐구'의 과정이었다. 암스트롱은 훗날 이때의 90일을 이렇게 묘사했다. "90%가 아닌 10%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시간이었다."

탐색과 숙고 끝에 그가 꺼내든 카드는 '공격적 투자'였다. 암스트롱이 취임한 후 AT&T는 텔레포토 커뮤니케이션(12억 달러), TCI(케이블·48억 달러), 미디원그룹(54억 달러·당시 기준) 등 굵직한 기업을 인수하는 데 큰돈을 베팅했다. 시장이 격변하든 말든 방어에만 치중하던 AT&T가 다시금 '혁신의 페달'을 밟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의 모든 전략이 적중한 건 아니었다. 몇몇 M&A는 '눈덩이 부채'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돈을 들여 인수했던 회사 중 일부는 뿔뿔이 흩어졌고, 그 때문에 상당수 노조원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 6일 대통령과 총수들이 벌인 '떡볶이 먹방'은 정치‧경제 고위층이 민생의 현주소를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많은 경영 전문가는 암스트롱의 성과를 얕잡지 않는다. 그의 차분하면서도 모험적인 도전이 AT&T가 다시 '통신거물'로 거듭나는 데 한몫했다는 걸 부인하는 이도 드물다.

씨티그룹 전 회장 샌퍼드 웨일은 2004년 AT&T를 떠난 암스트롱을 이렇게 평가했다. "마지막에 많은 빚을 남기긴 했지만 난 여전히 마이크 암스트롱이 훌륭한 전략가였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I think Mike was a brilliant strategist and I think he still is-뉴욕타임스)."

# 총선 정국에 매몰된 나라

침착하고 현명한 리더는 표면적 현상과 내면적 본질을 동시에 분석한다. 이 까다로운 탐색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결정을 방해하는 섣부름의 오류를 털어낸다. 성급하고 오만한 리더는 반대다. 어떤 일이든 '눈앞의 현상'만 본다. 숱한 변수를 탐색하긴커녕 섣부름을 떼내는 절차를 되레 패싱한다. 지금 우리 앞엔 어떤 리더가 서있을까. '총선 정국'에 매몰된 고만고만한 정치꾼 중엔 과연 현명한 리더가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강서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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