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이던 타블로의 응원, 20주년에도 에픽하이 ‘넌 나의 구원’[공연보고서]
[뉴스엔 황혜진 기자]
"가끔 힘에 부칠 때 에픽하이가 '우산'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함께 불러 주세요."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그룹 에픽하이(EPIK HIGH/타블로, 미쓰라, 투컷)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에픽하이가 지난해 5월 개최한 'Epik High is Here Encore'(에픽 하이 이스 히어 앙코르) 이후 1년 7개월 만에 진행한 국내 단독 콘서트이자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음악 인생의 동반자 하이 스쿨(High Skool, 에픽하이 공식 팬덤명)들과 공동 주최한 가족 모임이었다.
20주년 활동 피날레 격이었던 이번 콘서트는 당초 16일, 17일 양일간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티켓이 삽시간에 동이 나며 예매에 실패한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적지 않은 연차에도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입증한 에픽하이는 이 같은 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15일 추가 공연을 결정하며 두터운 팬 사랑을 드러냈다.
타블로는 첫 공연에서 "솔직히 전 이렇게 콘서트가 매진될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며 "여러분이 해내셨다. 진짜 여러분이 최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관객들이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쓰라는 "진짜다"고 말했다. 투컷은 "여러분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알차디 알찬 세트리스트, 에픽하이 20년 역사 집대성
2003년 10월 'Map of the Human Soul'(맵 오브 더 휴먼 소울)로 가요계 입성한 에픽하이는 올해 대망의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들이 선명하게 찍어 온 발자취들은 대한민국 힙합 역사와 다름없다.
에픽하이는 '서사적인 높음', '시에 만취된 상태'를 의미하는 팀명에 걸맞게 문학적이고 감성적인 노랫말과 소리를 꾸준히 세상에 내보이며 '국힙'(대한민국 힙합)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숱한 히트곡들로 국내외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음은 물론 Mnet 'MKMF'(MAMA의 전신) 대상(올해의 앨범상) 수상,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음반상 등 성과를 거뒀음에도 현재의 위상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와 성장을 거듭했다. 2005년 2월 서울 대학로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시작으로 국내외 크고 작은 공연장을 오가며 2015년 대망의 통산 100회 단독 공연 기록을 새겼다.
지난해에는 정규 10집 앨범 'EPIK HIGH IS HERE'(에픽하이 이즈 히어)를 내며 '정규 10집을 발매하는 최초의 한국 힙합 그룹'이라는 유의미한 수식어를 추가했다. 2016년과 2020년에 이어 한국 가수 최초로 3번째 미국 최대 음악 축제 '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다.
20주년에도 어김없이 열일했다. 에픽하이는 2월 1일 'Catch'(캐치) (feat. 화사) 등이 수록된 글로벌 앨범 'Strawberry'(스트로베리)'를 발매한 이후 4월 영국, 벨기에, 덴마크, 독일,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 총 7개 국가 36개 도시로 이어지는 월드투어 'ALL TIME HIGH TOUR'(올 타임 하이 투어)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11월 1일에는 그룹 세븐틴 멤버 호시가 피처링한 싱글 'Screen Time'(스크린 타임)을 내고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주년 콘서트 역시 풍성했다. 30여 곡에 육박하는 세트리스트로 에픽하이의 서사를 녹여낸 것. 게스트 라인업은 대형 음악 축제 못지않았다. 15일에는 다이나믹 듀오(개코, 최자)와 하동균, 16일 싸이와 넬, 17일 성시경과 윤하가 깜짝 등장해 특별한 무대를 꾸몄다.
오프닝을 장식한 곡은 2007년 발매된 'Remapping The Human Soul'(리맵핑 더 휴먼 소울) 수록곡 '白夜 (백야)'였다. 리더로서 에픽하이를 20년간 이끌어 온 타블로는 "다시금 타오르는/꿈의 아우라/모든 걸 풀 수 있는/답을 간직한/인간의 영혼의 지도를 새롭게 밝힌다"라는 가사에 걸맞게 흰 핀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등장했다. 이어 'Lesson 3'(레슨 쓰리), 'Fan(팬)', 'Fly'(플라이), '평화의 날', 'High Technology'(하이 테크놀로지)를 열창하며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타블로는 "어린 시절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아낌없이 노력하며 살고 과연 난 어떤 이름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될까 생각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늘 여러분을 보니까 에픽하이, 그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전 이 세상에서 리드하기 가장 힘든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라고 말문을 열었다.
투컷은 "오랜만이다. 전 20년째 여러분의 형님, 혹은 여러분의 오빠를 맡고 있는 에픽하이의 DJ 투컷이다. 반갑다"고 운을 뗐다. 미쓰라는 "에픽하이의 20번째 생일을 축하하러 와 주셔서 감사하다. 전 에픽의 막내 미쓰라"라고 첫인사를 건넸다.
차례로 이어진 '연애소설', 'Screen Time'(스크린 타임), '헤픈엔딩', 'Love Love Love'(러브 러브 러브), 'Map The Soul'(맵 더 소울), 'Prequel'(프리퀄), 'Go'(고), 'BLEED'(블리드), '연필깎이', '부르즈 할리파', '1분 1초', '트로트', '노땡큐', 'One'(원), 'Kiil this love'(킬 디스 러브), 'New beautiful'(뉴 뷰티풀), '우산', '빈차', 'BORN HATER'(본 헤이터), 'Don't Hate Me'(돈트 헤이트 미), '사진첩' 역시 대중적 인기를 누린 히트곡 향연이었다.
중반부 'Prequel' 무대를 통해서는 소속사 및 숙소 계약을 처음 체결하고, 보수로 만 원 한 장이 든 봉투를 받아 들었던 데뷔 초로 회귀했다. 넘어졌을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던 시절을 되돌아본 에픽하이는 "습한 홍대 지하에서 코첼라 사막 위/배경은 달라졌지만/내 땀은 마르지 않지", "우린 여전히 존재/과거와 현재/늘 출발점에 선 듯이 무대 위 GO 해"라고 노래했다.
이어진 데뷔 앨범 'Map of the Human Soul'(맵 오브 더 휴먼 소울) 수록곡 'Go'(고)에서는 20년 전 앳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One' 무대에서 "You are the one/어둠속을 걷고 있을 때/어둠속에 니가 사로잡힐 때/내 숨이 같이 해/넌 나의 구원/내게 손을 건네준 그대/세상속에 문이 네게 닫힐 때/내 손을 바칠게/You are the one 넌 나의 구원"이라고 떼창하며 검지를 하늘 높이 치켜세우는 순간 역시 오래도록 기억될 명장면이었다.
에픽하이는 공연 내내 녹슬지 않은 유려한 랩 실력은 물론 열정의 춤사위로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마지막 주자 미쓰라의 득남으로 전원 유부남 그룹이 됐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20대로 돌아간 듯 열정을 불태우는 광경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존재들이 주는 위로, 믿고 듣는 음악의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영화 '바비'를 패러디한 K-힙합의 '애비' 콘셉트 공연 포스터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에픽하이는 대기공간에 마련된 추억의 에픽월드(싸이월드 패러디) 입간판을 통해 "이제는 애비가 된 애비하이, 할애비 되는 그날까지"라고 에픽하이의 장수를 약속했다.
포스터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품절 사태를 일으킨 박규봉(응원봉) 제작 비화도 공개했다. 타블로는 "저희의 첫 공식 응원봉을 우리 미쓰라가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웃음을 참지 못한 투컷은 "머릿속으로 오랫동안 시뮬레이션을 해 봤다. 무대에서 이 광경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약간 복잡 미묘하다. 한마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감사하다 여러분"이라고 밝혔다.
타블로는 "물론 여러분처럼 멋지고 예쁜 분들은 이걸 들고 다닐 때, 보관할 때 좀 걱정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저희 같은 놈들이야 자신 있게 들고 다닌다. 여러분은 좀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부끄러울 필요가 없는 게 이 응원봉이 단순히 박규(손가락 욕설을 완곡하게 가리키는 표현)를 상징하는 게 아니다. 사랑을 상징한다. 가끔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이 세상에서 지키기 위해, 내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내밀어야 하는 게 이거 아닌가. 여기저기서 막 치고 들어올 때 가방에서 꺼내 주시면 된다"며 메가 히트곡 'Love Love Love'를 열창했다.
▲ 20주년에도 팬들의 구원이자 우산…21주년 아닌 1주년 에픽하이의 새로운 시발점
공연 말미에는 보다 내밀한 진심을 털어놨다. 멤버들 중 가장 눈물 많기로 유명한 타블로는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에 사흘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타블로는 "진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투컷은 "제가 사실 감정을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은 좀 뭉클한 게 몰려온다. 20년 전 데뷔를 했을 때 내가 연예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약간 있었다. 오늘 이 자리, 이 무대에 서면서 그때 연예인이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미쓰라는 "사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이만큼 긴 시간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도 많았다. 한 해 한 해 진짜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현하면서 살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저희의 20주년을 축하해 주신 여러분,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이 많은 분들에게 정말 정말 여러분이 에픽하이를 만들었다고, 여러분을 위해 앞으로도 더 노력하는 팀이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타블로는 "여러분 오늘 행복하셨는지, 즐거우셨는지, 힘이 좀 생기셨는지 궁금하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에 들어오기로 결정을 하고 시간을 내주시고 여기까지 와서 입장하실 때 아마 여러분의 근심, 걱정, 고민을 밖에 잠깐 두고 들어오셨을 것 같다. 참 신기한 게 우리가 한 거라고는 같이 웃고 같이 떠들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뛴 것밖에 없는데 잠시나마 다 잊히지 않았나. 그 힘은 사실 저희가 오늘 여러분에게 드린 게 아니고 여기에 와 주신 여러분 안에 있는 거다. 그게 지금 이렇게 밖으로 나온 거다. 그래서 당신을 강하게 만든 거다. 그 근심, 걱정, 고민을 다 잊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늘 여기서 느낀 거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잊지 않으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밖에 나가면 그 고민, 걱정, 근심 전부 다 두고 오신 자리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오늘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안에서 만든 힘을 기억하시면 절대, 절대 아무것도 여러분을 꺾을 수 없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비 내리고 하겠지만, 여러분이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가끔 힘에 부칠 때 저희가 '우산'이 돼 드리겠다. 함께 불러 달라"며 '우산' 무대를 이어갔다.
끝으로 타블로는 "정말 긴 세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2023년이 20주년인데 이제 끝이 아니다. 내년은 21주년이라고 부르지 않고 1주년으로 부르겠다. 새로운 시작, A new beginning!(어 뉴 비기닝) 사랑합니다"고 외쳤다.
'중콘'(2회 차 콘서트)에서도 하이스쿨을 향한 응원은 계속됐다. 타블로는 에픽하이로서 살아온 세월에 대해 "비아냥도 들으면서 많은 실패도 겪고 많은 미움도 받고 20년 동안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그게 에픽하이가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이 됐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인생도 순탄하지 않을 거고 지속적인 실패를 하거나 실수를 해도 잘못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경우들이 있을 텐데 저희 에픽하이가 여러분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저희도 할 수 있었고 여러분도 무조건 할 수 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팬들은 앙코르 무대에서 '평생 내 선곡표=에픽하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단체 슬로건 이벤트로 감동을 안겼다. 타블로는 "20년 쉽지 않았다. 여러분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막콘'(마지막 콘서트)에서는 투컷, 미쓰라와 함께 관객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팬들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을 공식 계정에 게재한 이후에는 "여러분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 쏟아지게 되네요"라는 글을 덧붙였다.
에픽하이의 사랑 고백에 하이스쿨 역시 애정 어린 메시지로 화답했다. 팬들은 "하이스쿨 하면서 힘든 적 없고 힘 된 적만 있음! 사랑하고 고마워요 나의 구원들", "내년부터 데뷔 1년 차 슈퍼 루키 에픽하이 가자", "형들이 제 10대 시절을 채워줬는데, 30대의 삶도 앞으로 계속 함께 해주시리라 믿어요. 변함없이 멋있어줘서 고마워요", "30대 되고부터 ‘나 왜 살지?’라는 의문이 가득했는데 저 정말 살아있길 잘했네요. 이렇게 또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까요. 하이스쿨로서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등 댓글을 남겼다.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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