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뇌의 보상회로 자폐스펙트럼장애 치료한다

2023. 12. 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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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연구 모습. [IBS 제공]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후면에 커다란 눈 모양 스티커를 붙인 트럭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뒤에 따라오는 운전자의 시선을 끌어 추돌사고를 예방하려는 아이디어다. 왜 눈 모양에 시선이 가는 것일까? 바로 우리 뇌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비롯해 여러 구성원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적 동물의 뇌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을 선호하도록 진화했다.

그런 사회적 뇌의 특징 중 하나가 ‘사회적 지향’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뇌는 사회적 신호에 더 큰 반응을 보이고 주의를 집중하게 만든다. 이제 막 사물을 보기 시작한 갓난아기들이 이전에 배운 적이 없는데도 사람의 눈을 더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청소년들이 또래들의 행동 양상을 따라하는 현상의 근간에도 사회적 뇌가 작동한다. 상대방의 행동과 표정을 무의식 중에 따라 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닮은 사람을 더 신뢰하는 소위 ‘카멜레온 현상’이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지키려는 언행 등,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행동의 이면에도 사회적 뇌의 작동이 숨어 있다.

사회적 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회적 자극을 보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주목을 받는 것이 우리 뇌에 보상 신호로 작용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친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더 많은 사회적 보상을 받으려는 동기 부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우리 뇌가 사회적 자극을 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타인과 상호 작용을 하려는 욕구가 줄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려는 동기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는 사회적 자극에 관심이 없고 사회적 상호 작용에 서투르다. 사회적 신호를 보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동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개체의 주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보상과 관련된 뇌 부위의 활성이 증가했다. 그리고 보상 관련 뇌 영역을 자극하였더니 다른 개체와 상호 작용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러한 발견은 뇌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신호 처리와 보상 신호의 처리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경우 사회적 신호 처리 기능의 이상 때문에 타인과의 상호 작용이 보상 회로의 활성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자폐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어도 사회적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제는 없다. 대신 자폐를 조기에 진단하여 어린 시절부터 장기간 행동치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법이다. 행동치료의 원리는 적절한 사회적인 행동을 했을 때 보상을 주어서 다음에도 그 행동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상황을 교육할 수 없는데 학습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행동치료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겪어본 상황에서만 효과를 낸다고 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가능케 한다는 의견이 모두 있다. 만약 행동치료가 뇌의 사회적 신호 처리 능력 자체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미리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적 상황에서도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치료가 뇌의 사회적 신호 처리 능력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

최근 필자가 이끌고 있는 연구팀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행동치료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자폐 모델로 사용되는 유전자 변형 생쥐를 이용하여 보상 학습이 뇌의 사회적 신호 처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테스트하였다.

쥐는 냄새로 다른 쥐를 파악한다. 자폐 모델 쥐에게 다른 쥐의 냄새(사회적 신호)와 쥐가 아닌 다른 냄새(비사회적 신호)를 제시하면서 뇌의 전두엽에 있는 신경 세포의 활성을 측정하였다. 정상 쥐의 경우 두 종류의 신호에 다르게 반응했는데, 자폐 모델 쥐는 두 신호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사회적 신호의 처리 능력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냄새를 구별하면 보상으로 물을 주는 훈련을 반복하자 전두엽의 신경 세포들이 사회적 신호와 비사회적 신호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보상 학습 훈련을 통해 사회적 신호 처리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자폐 환자에게 적용하는 행동치료 요법의 신경과학적 근거를 밝혀냈다. 아직 동물 실험에 국한되어 있고 신경 회로 기전에 대한 후속 연구들이 필요하지만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리 뇌의 기능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결과이다. 이번 연구 결과가 행동요법을 통한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치료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도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위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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