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난제 유보통합 진전에 후한 점수... 사교육 카르텔 혁파는 최하점
0~11세 국가 책임 돌봄·교육 3.8점
"방향성 맞고, 강력한 이니셔티브"
자격·양성체계 등 쟁점 극복 관건
사교육 카르텔 혁파는 1.8점 '최저'
"킬러문항 의제 협소" "효과 없다"
"사교육 경감은 사회구조적 문제"
"윤석열 정부는 올해를 교육개혁 원년으로 삼고 달려왔다."(지난달 7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1주년 발언) 과연 정부는 연초부터 교육개혁 3대 국정과제인 △국가 책임 돌봄·교육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 △대학 개혁 관련 추진 방안을 쏟아냈다. 대부분 윤 대통령 임기 내인 2025년 본격 시행을 예고했다.
본보는 국내 대표적 교육 전문가 5명에게 교육개혁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를 들었다. 평가 부문에는 기존 3대 국정과제 외에 올해 중반부터 교육개혁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 '사교육 카르텔 혁파'를 포함했다. 부문별로 개혁 취지, 세부정책 성과 및 미비점, 전망을 종합해 5단계 등급(A~E)을 매기도록 하고 이를 점수(1~5점)로 환산하는 정량평가도 병행했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국가 책임 돌봄·교육 부문(평균 3.8점)을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했다. 반면 사교육 카르텔 혁파 부문(1.8점)은 가장 박한 평가를 내렸다. 평가에는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오세희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한국행정학과 교육행정포럼 위원장), 성기선 가톨릭대 교직과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전 한국교육개발원장),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전 총장)가 참여했다.
첫걸음 뗀 유보통합... 자격·양성체계 난제 풀어야
유보통합(영유아 보육·교육 체계 일원화), 늘봄학교(방과후수업+돌봄) 전면 확대 등 0~11세 돌봄·교육에 국가책임성을 강화하려는 개혁 정책은 방향성과 성공 가능성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저출생 위기, 기관·시설별 아동교육 격차 완화, 보육·교육의 질 향상 등 정책 취지를 두고 전문가 5명은 "옳은 방향"이라고 의견을 같이했다.
이행 측면에서도 유보통합 정책을 교육부로 일원화하면서 개혁 기반을 잘 다진 것으로 평가됐다. 보건복지부 소관이던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이달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오세희 교수는 "중앙부처 간 이해관계를 정리하고 정부가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나갔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를 시작으로 번번이 유보통합이 무산된 데에는 부처 간 책임 분산과 협의 부진, 쟁점 해결 의지 부족이 걸림돌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가의 돌봄·교육 책임을 국정과제로 처음 선언하고, 7월 교육부가 복지부, 각 시도 및 시도교육청과 유보통합 협업을 위한 '4자 공동선언'을 끌어낸 점도 "(좋은) 점수를 줄 요인"(배상훈 교수)이란 평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개혁 진전에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유보통합의 경우 교사 자격 및 양성 과정 설계, 유치원 교사 설득이 관건이다. 교육부는 해당 과제의 해법을 담은 유보통합 모델 시안을 연말에 공개할 예정인데, 반대 측 직역단체들은 벌써부터 졸속이 될 거라며 성토하고 있다. 반상진 교수는 "교사 자질을 높일 양성과정 재설계와 적용은 5년 이상 긴 호흡이 필요한데 목표 시행 시기가 너무 이르다"며 성과에 조급해하지 말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연간 소요 비용이 수조 원으로 추산될 만큼 유보통합 사업 규모가 크지만 예산확보 방안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이 부총리가 전면 시행 일정을 내년으로 1년 앞당긴 늘봄학교에 대해서는 돌봄전담사 질 관리, 내실 있는 프로그램 가동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I발 수업 혁신... "교사 역량 뒷받침돼야"
인공지능(AI) 교과서 도입이 골자인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은 무난한 평가(3.6점)를 받았다. 다만 '맞춤형 교육으로 교실을 깨운다'는 개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교육부는 교사 1명이 다수 학생을 상대하는 지식 전달형 수업에서 '잠자는 교실'이 시작된다는 진단하에 지난 2월 정책을 내놨다. 2025년 초중고 일부 학년의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AI 교과서를 도입하고 매년 확대하는 게 골자다. AI를 활용한 학습 도구로 학생 개인별 성취도를 진단하고 진도를 체크하는 등 1대 1 학습 효과를 내려는 조치다. 10월 교과용 도서 규정을 개정해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도 마련했다. 디지털 교육에 전문성을 갖추고 동료를 지원할 선도교사를 올해 400명에서 2025년 2,000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연초 대책에 포함됐다.
박남기 교수는 "AI 활용이 시대적 흐름이고 우리나라는 세계적 선도 분야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게 현실인 만큼 교육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해나갔으면 하는 정책"이라며 A등급을 줬다. 이어 교사·학생·학부모의 디지털 전환 인식, 개별화 교육에 필요한 기술력 보강 등이 뒷받침되도록 시범사업에서 꼼꼼히 점검하고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수업 변화의 방향을 잡을 교사의 역량이 정책 성패의 관건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배 교수는 "디지털 혁신에 관심 없는 교사들의 디지털 리터러시(활용 능력) 강화가 과제"라며 "교육의 질은 결국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AI 교과서 플랫폼을 개발하는 민간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해소하는 것도 과제로 꼽혔다.
학습 보조 도구로 교육을 대전환한다는 건 '본말전도'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기선 교수는 "오지선다 수능이 더 강화되는 과거 지향적 입시제도 아래 학생은 문제풀이에 급급한데, 도구만 미래형으로 가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사교육을 좇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거나 딴짓하는 건 입시제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대거 풀린 대학 규제, 혜택은 어디로
대학 개혁 부문은 3.2점이었다. 대학·학과 간 벽 허물기와 첨단분야 지원 측면에서 대학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정책적 노력에 대해 "정부가 규제 완화를 가장 많이 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배 교수)는 긍정 평가가 따랐다.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가 수도권·지방 대학 양극화를 심화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규제 걷어내기는 대학 설립·운영 규정상 4대 요건(교원·땅·건물·수익용기본재산) 완화가 대표적이다. 대학·학과 통폐합, 첨단학과 신설 등 대학 혁신의 걸림돌을 치운다는 취지였다. 오 교수는 "4대 요건을 내세워 대학을 틀어쥐던 교육부가 이를 내려놓은 점은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다만 규제 완화 혜택이 수도권 대학에 돌아가고 있다면서, 첨단 분야에서 4대 요건 중 교원 확보율만 충족하면 대학원 정원을 늘릴 수 있게 하면서 수도권 대학원이 대거 수혜를 본 사례를 꼽았다. 그는 "가뜩이나 재정도 모집도 어려운 지방대는 다 고사할 판"이라며 "규제를 푸는 건 옳은 방향이지만 수도권-지방에 미칠 영향 분석도 병행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겸임‧초빙교원 활용 비율을 전체 교원의 5분의 1에서 3분의 1 이내로 확대한 것에는 "학생이 아닌 사학에 유리한 방향으로 교수의 질은 떨어질 것"(반 교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지방대 살리기의 핵심 정책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두고는 전문가 전원이 지자체 역할론을 강조했다. 지자체가 중앙부처로부터 넘겨받은 행정·재정 권한을 바탕으로 대학을 지원할 역량을 갖추는 게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RISE는 광역시도 주도로 지자체와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체계로 2025년 전면 도입이 목표다. 일부 전문가는 RISE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대학의 운명에 민감한 기초지자체의 관여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신한 구조개혁 내지 혁신 계획을 밝힌 30개 안팎 대학에 5년간 총 1,000억 원씩을 정부가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30 프로젝트'를 두고는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돈만 주고 사후평가만 할 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 상황을 체크하고 미흡한 점을 컨설팅하며 이끌어줘야 한다"(박 교수)는 제언이 나왔다.
이목 집중 '사교육 카르텔 혁파'는 최하점
6월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지시 이후 입시학원-교사 유착을 겨냥한 범정부 차원의 사정(司正)으로 이어진 사교육 카르텔 혁파는 전문가 5인 모두가 가장 박한 평가를 내리면서 1.8점을 받았다. "자극적이고 전형적인 포퓰리즘"(반 교수), "교육의 정치적 중립 훼손"(성 교수) 등 강한 톤의 비판도 제기됐다.
수능 부담 완화라는 즉각적 정책 목표도 무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교수는 "올해 수능은 킬러문항이 빠졌다는데도 '불수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역시 학원에서 문제풀이를 많이 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시그널이 강화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카르텔을 잡는다고 사교육이 줄어들 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학원가와 일부 유착 교사를 제재한들 사교육 경감에 실속이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대학 서열화, 빈부 양극화 심화, 복지시스템 미흡 등 근본적 원인을 해소해야 사교육 문제도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배 교수는 사교육 카르텔을 개혁 대상으로 삼기에 킬러문항 문제는 '좁은 의제'였다며 "사교육은 교육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가 해결을 못 한다. 대통령의 프로젝트로 풀 사회문제"라고 강조했다.
학교 수업의 질을 올려 공교육 강화에 집중하는 것이 교육 정책의 옳은 방향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오 교수는 "학교에서 사교육 수요를 흡수해줄 게 무엇인지 적극 발굴하고 지원해야 더 효과를 볼 것"이라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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