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기후·물가·청년·폭력… ‘위기’를 파헤쳐 ‘미래’를 모색하다

박세희 기자 2023. 12. 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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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문화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3890편에 드러난 세상
시 3240편·단편소설 444편
동화 193편·평론 13편 응모
시부문, 기후·부채·전쟁 등
‘비인간’에 관한 내용이 많아
단편소설, 동물·집 등 소재로
청춘들의 리얼리즘 두드러져
동화서도 학교 · 가정폭력 등
판타지보다 현실문제에 주목
문학평론, 비인간적 객체와의
공생을 다룬 작품 크게 늘어
지난 13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소설 부문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서수(왼쪽부터)·조경란·백가흠 소설가. 문호남 기자

“인간의 일상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사물 등 비인간적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생태 위기, 기후 재난 등에 관심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나희덕 시인)

“집을 매매하며 벌어지는 일, 전세 사기를 당한 이야기, 임대주택 이야기, 아파트에 입주하며 겪은 일 등 집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두드러졌습니다. 어떤 안전한 ‘집’에 거주하고 싶은,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서사가 많았습니다.”(조경란 소설가)

2024 문화일보 신춘문예의 전반적인 경향은 ‘위기’로 압축된다. 기후 위기, 기후 재난은 문학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고, 이는 곧 자연·동물 등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함께 치솟는 집값을 비롯한 높은 물가 등 경제 위기에 처한 청년 세대의 팍팍한 현실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 근원을 파헤쳐 앞으로의 미래를 모색한 셈이다.

지난 1일 공모가 마감된 2024 문화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단편소설, 동화, 문학평론 4개 부문에 1298명이 응모, 총 3890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시 응모작이 3240편으로 가장 많았고 단편소설 444편, 동화 193편, 평론 13편 순이었다. 총 4012편이 응모된 지난해보다 다소 줄었지만, 단편소설 부문은 지난해보다 늘어 눈에 띄었다.

응모작들에 대한 심사는 지난 4일부터 15일까지, 4개 부문 모두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했다. 시 부문은 나희덕·문태준·박형준 시인이, 소설 부문은 조경란·백가흠·이서수 소설가가 심사했으며 동화는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와 최나미 동화작가가, 문학평론은 김형중 평론가가 맡았다.

문태준(왼쪽부터)·나희덕·박형준 시인이 시 부문 당선작을 선정하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가장 많은 응모작이 접수된 시 부문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서정시부터 실험적인 시까지 다양한 장르의 시 작품들이 응모됐다. 내용으로 보면 ‘비인간’에 관한 시가 크게 늘었다. 심사위원들은 팬데믹을 지나오며 기후위기, 생태위기 등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결과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문태준 시인은 “기후변화와 기후위기, 젊은 세대의 부채 문제, 전쟁, 폭력 문제 등이 올해 두드러진 소재였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 문제와 이주민 문제 등 사회적인 주제도 많았는데 이를 유쾌하게 풀어나간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박형준 시인은 “현실에 대한 풍자를 유쾌하게 펼쳐나가는 활달한 작품들이 많았다. 힘든 문제도 유니크하게 풀어나간 작품들이 있어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보다 40편 더 많은 작품이 응모된 단편소설 부문은 작품 수와 함께 작품의 완성도도 크게 높아졌다고 심사위원들은 전했다. 조경란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들을 높이 평가한다.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썼다고 느끼게 한 작품이 많았다”며 “다만 방법론에 있어, 이야기에 구조를 만들어 사건과 정보들을 배열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단편소설 부문의 키워드로는 ‘동물’과 ‘집’, 그리고 ‘여행’을 꼽을 수 있다. 애완견 또는 애완묘를 돌보거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거나, 누군가에게 맡긴 후 벌어지는 일 등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집’에 관한 이야기도 다수 눈에 띄었으며 몽골, 이탈리아, 일본 등 해외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서사도 다수였다. 팬데믹이 끝나고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함께 나타난 경향으로 보인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생활비를 버느라 애쓰는 청춘들의 이야기 등 리얼리즘 성향의 응모작들도 두드러졌다.

동화 심사를 맡은 최나미(왼쪽) 작가와 김지은 평론가. 박윤슬 기자

동화 부문에서도 현실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등 어두운 현실도 이야기됐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동화의 소재가 예전에는 경향에 따라 편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소재 자체가 아주 다양해졌다. 판타지보단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백동현 기자

문학평론 부문 응모작들에서는 비인간적 객체와의 공생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크게 늘었다. 김형중 평론가는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아져 한두 편만 제외하고는 모두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면서 “좋아하는 작가 한 명을 미시적으로 분석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세밀하고 깊이 있는 분석은 좋았으나 해당 작가가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전체 맥락과 관련한 의의를 짚어내는 게 약한 작품들이 있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부문별 당선작은 2024년 새해 1월 2일 자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 공개된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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