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아가는 새살을 보면서… 회복했단 증명을 ‘새기고 싶어’ 결심한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박세희 기자 2023. 12. 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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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정보라
타투 - 낙인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지난 9월부터 한국의 대표작가 15명이 AI·돌봄·반려식물·SNS 등 우리 시대·우리 사회를 키워드로 쓴 짧은 소설 릴레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가 정보라 작가의 ‘낙인’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2024년 새해 2월, 시즌 2로 돌아옵니다.

인공지능 타투 기계가 사람의 팔을 태웠을 때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것이 소송의 요점이다. 소송은 현재 2년째 끌고 있으며 근시일 안에 끝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시술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른바 ‘인공지능 문신시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어느 SNS 광고를 통해서였다. 신제품 디지털 타투 기계 판매 광고였는데, 제거제를 사용하면 문신을 지울 수 있다는 부분에서 귀가 솔깃해졌다. 그래서 나는 광고를 재생시켰다. 판매사에 따르면 타투 기계에 무선 인터넷 연결장치가 탑재되어 있어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누구나 원하는 디자인을 스스로 만들어 시술할 수 있다고 했다. 동영상 광고 안에서는 모델이 귀여운 색색 가지 디자인을 만들어 팔에 찍은 뒤 타투 제거제를 발라 문질러 타투를 지우고 다른 디자인으로 또다시 타투를 만들어 팔에 찍으며 활짝 웃었다. 제거제는 별도 판매였고 가격은 타투 기계 본체 가격에 육박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디지털 타투 기계를 주문했다.

문신을 그리는 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생애 첫 타투 디자인 시도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생전 처음이니 기념 삼아 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내 주문을 듣고 만들어준 디자인을 팔에 찍어 보았다. 아주 조그만 여러 개의 바늘이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긁는 느낌이었다. 인공지능은 내가 지정한 색깔을 내가 원하는 색감으로 배합해 주었으며, 조그만 타투 기계는 디자인의 세부적인 모서리와 작은 줄이나 점까지 의외로 꽤나 선명하게 피부에 새겨주었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디지털 타투를 감상하다가 나는 다른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타투를 지우려고 함께 배송되어 온 타투 제거제를 꺼내 발랐다.

팔이 타기 시작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피부 위에 그려진 타투 잉크에 제거제를 문질러 바르자 잉크가 녹으면서 팔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고 수도꼭지 아래 팔을 들이밀었다. 물을 타고 타투 잉크와 제거제가 더 넓게 퍼졌다. 팔의 피부가 계속해서 선홍색으로 부어오르다가 점점 더 비인간적인 자줏빛을 띠어갔다. 나는 공포에 질렸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다급한 생각과 병원 가는 길에 팔이 타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솟아올라 부딪쳤다. 찬물을 더 세게 틀고 팔뚝을 비누로 씻어내자 비누 거품과 함께 살 껍질이 떨어져 나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중에 피해자 모임에 나가 보니 이런 경험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팔이나 다리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았지만 발등이나 귀 뒤쪽 등 피부가 얇고 민감한 부위를 다친 사람도 있었다.

타투 잉크와 제거제 성분이 합쳐지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타투 잉크 자체는 문제가 없고, 제거제도 그 자체 성분만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여러 색깔을 내기 위해 타투 잉크를 기계 안에서 배합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고, 거기다가 제거제를 섞으니까 피부를 부식시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으면 사람 피부에 이런 성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피해자 모임에서 초청한 피부과 의사가 분개했다.

우리는 물론 경찰에 신고했다. 당연히 수사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문제의 염료를 제조한 업체와 판매한 업체가 각각 달랐다. 그리고 양쪽 업체 모두 처음 들어보는 외국에 있었다. 그 염료를 사다가 타투 기계 안에 넣은 업체는 또 다른 외국에 있는 또 다른 회사였다. 그렇게 조립된 타투 기계를 국내에서 판매한 업체는 또 따로 있었다. 내가 보았던 동영상 광고는 그런 광고만 만들어주는 전문업체에서 제작했다. 광고제작사에서 알려준 타투 기계 판매업자 연락처는 대포폰이었다. 경찰이 판매업자를 찾아내는 데만 거의 일 년이 걸렸다. 판매업자는 타투 기계를 정식으로 수입한 게 아니었다. 통신판매업 신고도 하지 않고 세관 신고도 없이 대충 배에 물건을 실어다가 동영상 광고를 통해 택배 배송해서 팔고 문제가 생기면 동영상 다 내리고 도망치는 이른바 ‘보따리 장사’였다.

“도대체 문신 같은 걸 왜 했습니까?”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 모임을 찾아가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도대체 그런 걸 왜 했어?”

가족과 친구들이 답답해하며 물었다.

“애초에 문신을 안 하면 되잖아?”

피해자 중에는 타투 아티스트가 여러 명 있었다. 새로운 종류의 기기를 사용해서 더 폭넓은 디자인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타투 잉크를 지울 수 있는 제거제가 어떤 것인지도 알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타투 전문가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기계를 직접 사용해 보았다가 피해를 입었다.

“이런 게 걱정돼서 손님한테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요.”

매우 짧은 분홍색 머리카락의 타투 아티스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교육받은 인간 타투이스트가 그냥 보통 쓰는 타투 기계로 시술했으면 이런 일 안 생기죠.”

타투이스트의 분홍색 머리카락 아래 목덜미 피부가 벌겋게 녹아 벗겨져 있었다.

경찰은 냉소적이었다. 한국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은 불법이었다. 법집행기관의 관점에서 보기에 피해를 입은 타투이스트나 불법 타투 기계를 들여와서 판매한 보따리 장사나 똑같은 범법자들이었다. 불법 문신 시술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대체로 소용없었다. 불법 판매상이 허가받지 않은 기계에 검증되지 않은 염료를 넣어 성분을 알 수 없는 제거제와 함께 판매했기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으며, 그러므로 해당 기계와 염료, 제거제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피해자 모임은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에 들었던 똑같은 비아냥을 계속 들었다.

“그러게 누가 문신 같은 걸 하래?”

문제적 타투 기계의 동영상 광고 속에서 모델은 왼쪽 팔뚝 안쪽에 문신을 찍고 지우고 또 새로 찍었다. 왼쪽 팔목 바로 그 자리에 나는 크고 넓은 흉터가 있다. 어렸을 때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는 냄비 손잡이를 실수로 잡아당겨 팔뚝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오래돼서 지금은 흉터가 많이 옅어졌지만 가까이서 보면 피부가 울퉁불퉁하고 피부 색깔도 팔의 나머지 부분과는 다르다. 짧은 소매를 입으면 밖으로 드러나는 위치라서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게 신경 쓰면서 살아왔다.

내가 문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흉터 때문이었다. 흉터도 내 몸의 일부니까 제거하거나 가리기보다는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화상치료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울던 모습과… 그런 기억들을 뿌리치지 않고 흉터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우리 애는 그냥 궁금해서 해 봤대요. 친구들하고.”

피해자 모임에 자녀 대신 참가한 중년 아저씨가 말했다.

“그냥 궁금한 게 그렇게 죽을죄입니까? 애 피부가 녹아서 홀랑 뻿겨질 정도로 잘못이에요?”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그냥 궁금해서, 그리고 지울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래서 믿고 구매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잘못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감정이 솟아올라 복잡해졌기 때문에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원래 흉터가 있던 왼팔은 더 큰 흉터로 덮였다. 나는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에 했듯이 화상 전문 병원에 가서 죽은 피부를 벗겨내는 치료를 받는다. 굉장히 아프다. 그리고 SNS 계정에는 끈질기게 조롱하는 댓글이 달린다.

―그러게 누가 문신 같은 걸 하래?

“다 나으면 내가 공짜로 해 줄게요.”

피해자 모임에서 친해진 타투 아티스트가 호언장담한다.

“공짜는 안 되지, 피해보상금 받아야지.”

중년 아저씨가 받아친다.

피해보상금 같은 걸 받는 날이 우리 평생에 과연 올지는 알 수 없다. 치료가 너무 아프고 비싸고 사방에서 들리는 조롱과 냉소가 괴로우니까 우리끼리 서로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새살이 돋아가는 팔뚝을 보면서, 완전히 나으면 정말로 문신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일을 겪고도 회복했다는 증명을 몸에 새기고 싶다. 그때는 인간 타투이스트에게 부탁해서, 안전하게 시술받을 것이다.

(c)HyeYoung

“사고대응·해결보다 피해자들 비난부터? 아무 도움되지 않아”

■ 작가의 말

‘싸우는 소설가’라는 별명을 가진 정보라 작가의 소설 ‘낙인’은 그가 왜 거리로 나가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하는지 설명한다. 불량 제품을 판매한 사람들을 잡아달라고 찾아간 경찰서에선 “도대체 문신 같은 걸 왜 했냐”는 핀잔을 듣고,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마저도 “애초에 문신을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그냥 한 번 궁금해서, 내 팔의 화상 흉터를 예쁘게 가리기 위해서였을 뿐인데. 소설 속 인물들은 엄연한 피해자이지만, 온전한 피해자로 남을 수가 없다.

“왜 거기에 놀러 갔느냐” “살균제는 세제인데 세제를 코로 들이마시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이태원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을 향한 이런 말은 폭력이다. 작가는 “실제 현실에서 사고 대응이나 피해 해결보다 피해자 측에 비난부터 쏟아내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비난부터 하면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일반 개인은 누구나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시민을 처벌하는 기구가 아니라 지원하는 기구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작가는 덧붙였다.

■ 정 작가는…

1976년생. 무섭고 기이한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집 ‘저주토끼’와 ‘여자들의 왕’ ‘그녀를 만나다’ 등을 썼으며 ‘탐욕’ ‘안드로메다 성운’ 등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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