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로 어르신 살린 인공지능 돌봄도 사회연대경제로 가능했다

조현경 2023. 12. 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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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10년
좌우 아닌 아래로부터의 연대·협력
정책과 지역 공동체간 연결과 소통
독거 어르신들에게 인공지능 스피커 사용법을 안내하고, 지속적으로 기기를 관리하거나 이상 징후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의 ‘케어매니저’들이 담당한다. 지난 4월 케어매니저가 스피커 사용법을 안내하며, 안부를 묻고 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어느덧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사회연대경제를 활용해 지방정부의 성공적인 정책 수행을 지원한 사례와 활동의 성과, 의미를 짚어봤다.

# 사례1.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

“고혈압 약 드실 시간이에요”. 인공지능 스피커가 홀로 사는 유미란(가명, 74)씨에게 약 먹을 시간을 알린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어르신이 복약 시간을 잊지 않도록 하는 서비스다. “아리야~ 패티김 노래 들려줘!” 유씨가 익숙한 듯 주문을 말하자 인공지능스피커에서 “패티김이 ‘이별’을 시작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이내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제 잠은 푹 주무셨나요?”,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정해진 시간엔 건강상태를 묻고 답을 주고받는다.

뿐만 아니다. “아리야 불 꺼줘”라고 주문하면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스마트 조명과 연결되어 그 내용을 어김없이 이행한다. 어두운 곳에서 이동하다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응급상황에서 큰 몫을 해낸다. 지난 7월 경북 구미시에 홀로 거주하는 이영순(가명, 78)씨는 갑작스러운 마비 증상에 “아리야, 살려줘”라고 외쳤고, 인공지능스피커가 즉시 에스오에스(SOS) 신호를 보냈다. 이를 받은 119 구급대원들이 바로 출동해 응급 이송을 진행했고, 이씨는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스마트 돌봄 기능은 ‘행복커뮤니티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됐다. 비대면·대면(현장 방문)이 결합된 인공지능스피커 기반의 돌봄 서비스로 에스케이텔레콤과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 지방자치단체가 함께하는 민관협력형 프로젝트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와 에스케이텔레콤이 고독사 방지와 스마트 돌봄 확산을 위해 인공지능 스피커와 사물인터넷 등을 저소득 홀몸 어르신 댁에 설치해주는 사업으로 시작됐다.

독거 어르신들에게 스피커 사용법을 안내하고, 지속적으로 기기를 관리하거나 이상 징후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회적기업 행복커넥트의 ‘케어매니저’들이 담당한다. 스피커를 통해 어르신들의 “우울해”, “외로워”, “죽고 싶어” 등 부정 발화를 감지할 경우 케어매니저가 이를 모니터링하고, 안부 확인 및 방문 조치 등 어르신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한다. 만약 “살려줘”, “도와줘”, “신고해줘” 등 긴급 상황으로 판단되는 발화가 확인되면 119 신고 연계를 통해 긴급 구조에 나선다.

서비스의 효과성이 검증되면서 전국 120여개 지자체 및 전문 돌봄 기관들과 취약계층 4만8000여 가구에 도입됐다. 에스케이텔레콤에 따르면 2019년 4월부터 2023년 8월까지 ‘긴급 에스오에스(SOS)’로 생명을 지킨 건수도 600여건에 이른다. 부정 발화 등이 감지돼 돌봄 심리상담으로 연계된 건수도 올해 9월 기준 900여건에 이른다.

# 사례2. 취약계층 아동 디지털 학습지원

학습격차라고 하면 대학입시를 앞둔 중고등학생들의 문제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학습격차는 더 어린 나이에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령 초기, 즉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에 보호자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기초적인 우리말 사용과 수학 개념 이해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격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성취에 방해가 되어 격차를 심화시킨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학교수업에 제약을 받으면서 아동들의 학습격차는 더욱 심각해졌다.

에누마 누리집 갈무리

소셜벤처 에누마는 이러한 아동 학습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자 다문화 가정, 조손가정 등 취약계층의 아동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한글, 수학 학습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전용 태블릿 PC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와 함께 지자체를 통해 학습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배포했다. 아이들은 보호자의 도움 없이도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전용 소프트웨어 ‘에누마 글방’(현재 명칭 ‘토도원’)을 마음껏 사용해 1년 동안 한글과 수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부모의 모국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도 포함되어 있다. 단순한 학습지원을 넘어 사회통합을 꾀하기 위해서다.

기업의 사회공헌 지원을 받아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에누마 글방’ 사업은 2022년까지 총 38개의 지자체와 기관을 통해 1165가구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 사례3. 폐기물 재활용 자원순환 모델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남다르다. 우리나라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이로 인한 일회용품 사용의 증가는 환경 문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커피를 만든 후 남는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coffee 粕)’의 처리 문제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실 커피박은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비료나 방향제 제작 뿐 아니라, 연료전지나 반도체 폐수 필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커피박을 바이오에너지원에 포함시켜 관련 통계를 작성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바이오 원료에 기반한 액체바이오연료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해 재생에너지원 범주에 포함시켰다.

사회적기업 포이엔(4EN)이 성동구의 지역 소상공인들을 만나 커피박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사업을 안내하고 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제공.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지방정부’가 먼저 발 벗고 나섰다. 2021년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회원 지자체인 서울 성동구가 사회적기업 포이엔(4EN)과 협력해 시범사업을 개시했다. 지난해 4월엔 추가로 회원 지자체인 경기 안성시, 경기 화성시와 한솔제지, 쏘카 등 민간기업도 참여해 ‘혁신적 지역 자원순환 시스템 구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지역의 폐기물(커피박) 배출 및 재활용 과정에서 사회적기업의 혁신기술을 도입해 자원순환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자원순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골자다. 사회적기업 포이엔(4EN)은 버려지는 커피박을 수거해 연료전지를 만들고 조명 하우징(전등을 감싸는 플라스틱) 등 다양한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는 이 사업모델을 근간으로 사회연대경제를 활용한 자원순환 정책을 확산하기 위해 ‘폐기물 재활용 자원순환 모델 구축을 위한 추진체계’를 구축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창립 10년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이하 협의회)’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 협의회는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자 2013년 설립된 전국 단위 행정협의회로,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협의회는 △사회연대경제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역량 강화(교육, 컨설팅, 콘텐츠 등) △사회연대경제 관련 정책개발 및 제도개선 △우수 사회연대경제 기업 및 사업모델 발굴 및 지원 △사회연대경제 확산을 위한 국내외 협력사업 및 국제네트워크 참여 등의 활동을 통해 역동적으로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변화를 만들어 왔다. 위의 세 사례 모두 협의회가 사회연대경제를 지방정부의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우수 사회연대경제 기업과 발굴·연결해 온 사업들이다.

창립 10년을 맞은 협의회는 공공정책과 사회연대경제 조직 등 지역공동체 사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 단위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네트워크인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하재찬 상임이사는 “민간의 활동들이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는 시기에 협의회가 만들어져 뿌리내릴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며, “여러 풍파가 있는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자 든든한 동반자”라며 감사와 축하를 전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개최한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2023 사회연대경제 홈커밍 데이’에 참석해 건넨 말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2023 사회연대경제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에서 참석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함명준 강원 고성군수, 김보라 경기 안성시장 (협의회 6기 사무총장),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협의회 현 6기 회장), 이순희 서울 강북구청장,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협의회 5기 부회장), 문석진 전 서울 서대문구청장 (협의회 5기 회장), 이동진 전 서울 도봉구청장,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이사, 이미영 한국공정무역협의회 공동대표, 김대훈 전국협동조합협의회 사무총장, 민형배 국회의원(협의회 3기 회장), 임정엽 전 전북 완주군수(협의회 1기 회장),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협의회 자문위원장), 최혁진 iN라이프케어연합회 사무총장(전 청와대 사회적경제비서관), 김영배 국회의원(협의회 2기 회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6기 협의회장인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정책환경의 변화에도 공공부문에서도 사회연대경제의 연대와 협력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국회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협의회의 창립 때부터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사회연대경제는 좌도 우도 아닌 아래로부터 왔다”며,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여야를 뛰어넘는 협력과 지역사회·시민사회와의 소통과 연대가 과정과 목적으로 양립되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방시대 실현 위해 ‘사회연대경제’ 주목

윤석열 정부는 ‘지역사회의 자생적 창조역량 강화’와 ‘지방소멸 방지 및 균형발전 추진체계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걸고, 그 실천과제로 △로컬브랜딩, 골목상권 육성 및 산업화 촉진 △골목산업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로컬인프라 구축 △참여·협력·혁신을 통한 로컬 창조커뮤니티 기반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월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로컬을 열쇳말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포괄하는 지방시대 선언을 제대로 실행해가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사회연대경제 영역에 더 많은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짚었다.

협의회가 누리집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회연대경제의 정의는 ‘지역혁신과 공동체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 ‘사회적 약자와 함께 걸으며, 더 나은 지역의 미래를 이웃과 함께 만드는 경제’다. 협의회의 김영식 사무국장은 “글로벌 경제 단위에서 활동하는 영리 대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기관차 역할을 한다면, 지역의 생활 경제는 우리 삶의 밑바탕을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한다”며, “지역의 생활 경제는 이타심과 상호성, 협동과 사회적 목적 등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할 경제다. 이윤 추구를 최우선하는 자본의 논리가 생활 경제를 지배하면,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국민은 생활 경제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시대의 실현은 기업의 선의만으로, 혹은 중앙정부의 의지만 강하다고 해서 진행되기 어렵다. 지방정부 단위야말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최적의 주체다. 지역에서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지역주민에 의해 소유되고, 지역주민에 의해 협동적으로 운영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기업을 육성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지방정부가 외부자원 유치에 의존하는 발전모델을 넘어 지역공동체의 부를 창출하고 축적하는 사회연대경제를 육성하는 것은 저성장 시대 새로운 지역 발전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중앙정부 차원의 예산 축소와 사업 폐지가 벌써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협동조합 관련 예산이 올해 대비 91%, 사회적기업 예산이 약 60% 줄었다. 소셜벤처 예산은 한푼도 책정되지 않았으며, 사회적 경제 지원기관들은 통합하거나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대폭 축소되고, 사회연대경제 주체들이 견고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 경제의 위기 상황과도 맞물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연대경제 조직과 지방정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obogi@hani.co.kr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SSE)란?

‘사회연대경제’와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는 한국적 맥락에서 같은 의미이지만, 최근 국제적으로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추세다. 유엔(UN)과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최근 ‘사회연대경제' 활성화와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사회연대경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현행 국회에 계류중이거나 폐기된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 상의 정의를 분석해 보면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이익’은 양극화 해소·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지역공동체 재생과 지역순환경제·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등을 의미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은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호혜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사업체를 통해 수행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민간(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에서 작성한 ‘2022 사회적 경제 정체성 보고서’에선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를 바탕으로 조직되고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작동하며, 국가 및 시장으로부터 자율성을 지켜나가면서 연대의 실천을 통해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경제 활동’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사회적 경제는 진영의 좌·우로 기획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나 시장과는 다르게 ‘사회의 필요·우리의 필요’를 조직화하는 독자적인 기획으로 정체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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