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기시감 사이… ‘명량 + 한산’의 절충안
전편의 신파·건조함 멀리하고
휴머니즘·간결한 서사 살려내
가장 고독한 이순신 장군 그려
박진감 넘치는 해상전투 장면
죽음 묘사땐 북소리만으로 먹먹
숙연함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20일 개봉) 속 이순신(김윤석) 장군은 어느 때보다 고독하다.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을 ‘완전한 항복’을 받기 위해 홀로 전진하기 때문이고, 이 전쟁의 끝에 그의 최후가 있다는 역사를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조선군과 왜군, 명나라군이 엉겨 붙은 아비규환의 전장 속에서도 이순신이 외딴 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비장함이 2시간 33분이란 러닝타임 내내 지속되며 숙연함을 강요한다.
이야기는 전작인 ‘한산: 용의 출현’과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유언을 시작으로 전쟁 현황이 게임 오프닝처럼 펼쳐진다. 이어 이순신 때문에 발칵 뒤집힌 왜구들이 동분서주한다. 이번 영화에선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의 전략에 따라 그의 심복(이규형)이 명군의 진린 도독(정재영)과 아군인 시마즈(백윤식) 사이를 발바닥에 땀 나게 다닌다. 왜구들의 상황이 얼추 정리되면, 이순신이 모습을 비춘다. 고니시를 고립시킨 순천 예교성을 둘러싸고 회의하는 장면이다. 참모들이 저마다 의견을 개진하지만, 이순신의 속내는 다르다. 군중 속의 고독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외교전이 지루해질 때쯤 드디어 대망의 전투가 펼쳐진다.
영화는 ‘명량’과 ‘한산’의 절충안 같다. 김한민 감독은 전편의 단점을 피하려고 애썼다. ‘명량’에서 지적받은 과도한 신파와 ‘한산’의 건조함을 멀리했다. 반대로 ‘명량’의 보편적 휴머니즘과 ‘한산’의 간결한 서사는 살렸다. 요약하면 영화 ‘노량’은 ‘명량’과 ‘한산’을 합해 나눈 값이다. 이러한 인위적 절충안을 보고 익숙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지, 기시감과 거부감을 느낄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신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말기와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기란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취하기 위한 눈물겨운 절충이다. 전 국민이 아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 유언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는 톤다운 된 대사로 처리된다. 귀를 메우는 신파조의 음악도 없고, 병사들의 울음바다도 없다.
그렇지만 1700만 관객을 신파 바다에 빠뜨린 김 감독이 이순신의 최후를 마냥 흘려보낼 리 없다.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한 충무공의 북소리가 그의 최후 속에서도 계속 울리는 것은 비장의 무기다.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북을 두드리는 장면을 중간중간 보여줬기 때문에 북소리만으로 이순신의 마음이 떠올려진다. 영화는 이순신의 장례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추모할 시간까지 준다.
100분간 이어지는 해상 전투 장면은 뛰어나다. 밤사이 벌어진 노량해전은 칠흑 같은 검은 바다에서 벌어졌다. 원경과 근경을 적절하게 활용한 촬영은 돋보인다. 유례없는 난전이었던 노량해전의 참상을 보여주면서, 공중에서 함선들의 움직임을 담으며 전투 지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한산’에서 맹활약한 거북선은 이번에도 왜군 함선을 장쾌하게 으스러뜨린다. 본래 노량해전엔 거북선이 쓰이지 않았지만, 감독의 영화적 장치다. 실감 나지만 물 위에서 찍은 게 아니다. 강원도 강릉 아이스링크에 3000평 규모의 세트를 짓고 실제 크기의 판옥선을 만들었다. 다만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몇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1917’ 같은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이미 본 듯하다.
영화 말미 3국 병사들의 비참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듯 차례로 담다가 이순신 장군으로 넘어가는 롱테이크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고는 이순신의 시점에서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비춘다. 전장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순신의 심정을 느껴보라는 의도다. 김 감독은 “3국 병사들의 아우성 속에 있는 이순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윤석은 깜깜한 바다처럼 심연을 알 수 없는 고독한 이순신을 연기했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명군과 왜군의 수장 모두 그 앞에선 움찔한다. 다만 말수가 적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인간 이순신으로서 매력은 적다.
영화는 순제작비 286억 원에 홍보비용을 합해 손익분기점이 720만 명에 달한다. 그렇지만 흥행에 낙관적인 요소가 많다. 합해서 2500만 명을 모은 전작을 잇는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이자 한반도 최고의 영웅 이순신의 최후가 담겼다는 점에서다. ‘서울의 봄’이 촉발한 ‘극장의 봄’ 분위기 역시 호재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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