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만으로 아름다운 선물”… 발달장애 아들 수영선수로 키운 父情[주철환의 음악동네]
이목구비가 뚜렷한 출연자를 얼굴 천재라 부르더니 아는 게 많은 연예인은 ‘뇌섹남’ 혹은 ‘뇌섹녀’라 칭한다. 빈정거림이 아니라 치켜세우는 말이니 거북하긴 해도 그냥 듣고 넘기자. 예능의 목표는 재미와 감동이다. 겪어보니 얼굴 천재나 뇌섹남은 감탄의 대상일지언정 감동의 영역까지 이르진 못한다. 화면에 광채를 뿌리며 등장하는 얼굴 천재들보다 골목에 조용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기부 천사들이 세상 온도를 높인다.
올 한 해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편의 영화를 보았나. 바빠서 죄송하다는 그대에게 4분의 틈새를 권한다. 독서나 영화보다 음악감상 시간은 대체로 짧다. 두께, 넓이로는 못 당해도 깊이로 영혼에 스며들 수 있다. 적어도 하루에 노래 한 곡 저장할 마음 한 칸은 확보하자. 생방송 시간 관계로 1절만 부르면 안 되겠냐고 했을 때 제작진을 애잔하게 바라보던 신인가수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한 곡을 부르기 위해 들였을 수많은 시간을 헤아린다면 차마 그런 요구는 하지 못했을 거다. 몸값, 밥값은 알아도 나잇값을 몰랐던 시절이다.
나이 먹는 게 버겁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제목은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아재 개그로 풀자면 나이+Add) 주인공(애넷 베닝)은 64세에 쿠바 하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 180㎞에 달하는 거리를 수영으로 종단한 인물이다. 네 번 잇달아 실패했기에 제목이 다섯 번째 파도다. 친구이자 코치(조디 포스터)의 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모험이었다. 영화 초반부 카메라에 잡힌 글귀가 당차다. ‘다이아몬드는 고난을 견딘 석탄 덩어리일 뿐이다.’(A diamond is just a lump of coal that stuck with it) 원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언인데 단어 몇 개를 바꿨다.
구호는 짧고 강렬해야 마음을 움직인다.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의 슬로건은 ‘함께할 때 빛나는 우리’(Grow Together, Shine Forever)다. 영국 가수 릭 애스틀리의 곡(1988) ‘영원히 함께’(Together Forever)에서 영감을 얻은 걸까. ‘끝까지 당신과 함께한다면 천지도 감동할 거예요.’(I would move heaven and earth To be together forever with you) 자신감의 근거가 뭘까. ‘당신의 찌푸린 얼굴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Because I wouldn’t ever wanna see you frown)
파도치는 삶에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동반의 조건은 동경(바라봄)이나 동정(가엾음)이 아니라 동행(함께 걸어감)이다. 얼마 전 지인이 전화를 걸었다. “옆에 계신 분이 잠깐 바꿔 달래요.” 누굴까. “저 상우예요.” 나는 마치 ‘100미터 전’인 것처럼 노래로 화답했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그 이름만으로 아름다운 선물이라 하기에 이 세상은 사랑으로 불타는가.’ 이상우(사진)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았던 노래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의 일부다. 그의 아내가 바로 이어서 받는다. “저 기억하세요?” 아니 ‘일밤’(일요일 일요일 밤에) 작가(본명 이인자)를 무슨 수로 잊어버리나. “당신은 영원한 2인자, 그러나 사랑만큼은 확실하게 1인자.”
이 부부는 발달장애 장남(승훈)을 수영선수로 멋지게(Shine) 키웠다(Grow). 풀장에서 나온 아들은 지금 트럼펫 주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침마당(12월 12일 방송)에서 차남(도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이상우를 보며 그가 방송사 사무실에서 노래 한 곡을 들려주며 내게 제목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던 일이 떠올랐다. 섬광처럼 떠오른 제목이 ‘비창’이었다. 눈길 마주칠 때마다 감사를 담아 들려주던 그 노래를 오늘은 내가 불러본다. ‘힘이 되는 슬픔으로 다시 사랑하기 위해 널 보내는 거야.’ 한 해를 보내며 나에게 묻는다. 내가 한 해를 보내는 걸까, 아니면 한 해가 나를 보내는 걸까.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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