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서 ★ 다섯개 ‘트로이의 여인들’…창극, 세계로 향하다
창극 ‘리어’는 내년 바비컨 센터 공연
그리스 비극에 이어 셰익스피어 비극이다. 창극 ‘리어’가 내년 10월 영국 런던 바비컨 센터 무대에 오른다. 런던의 대표적인 대형 복합 예술센터다.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지난 15일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좋은 조건으로 바비컨 센터 초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도 지난 8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판소리에 극을 입힌 창극은 20세기 들어 새로 정립된 장르다. 오페라·뮤지컬·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자양분을 흡수하며 영역을 확장해온 창극이 세계 무대를 향해 보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리어’의 바비컨 센터 공연은 초청료를 받는 공연이다. ‘트로이의 여인들’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성공이 계기가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뷰에서 별 다섯개 만점을 주며 “판소리 가락이 서사의 한탄, 애절함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호평했다. 이 공연 이후 바비컨 센터와 접촉이 이뤄졌고, 내년 초청 공연이 성사됐다.
중국 경극을 변용한 창극 ‘패왕별희’도 대만·중국 진출이 추진되고 있다. 2019년 봄·가을 두차례 공연에 이어 지난달 선보인 창극이다. 대만 출신 연출가 우싱궈, 안무가 린슈웨이가 작품 배경인 중국과 대만 진출에 적극적이라고 국립창극단 관계자는 전했다. 우싱궈 연출은 “중국에서도 김준수만큼 우희를 소화할 배우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6년엔 고선웅이 유머러스하게 각색하고 연출한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를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 무대에서 공연했다.
다만, ‘리어’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등 국외 무대에 올랐거나 공연할 예정인 창극들이 대부분 외국 원작이어서, 우리 전통 소재 창극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도 나온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외국 원작 작품을 공연한 데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며 “그런데 외국에 나가보면 그런 선택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가 주축인 창극이 서구인에겐 아직 낯선 형식이라 관객에게 다가서려면 익숙한 이야기로 돌파하는 게 효율적이란 취지다.
국립극장은 유럽 무대를 겨냥한 전통 소재 창극 제작도 추진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하나인 ‘심청가’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창극 심청가’를 2025년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에 따라 합동 제작에 나섰다. 기존 장르에 옷만 갈아입히는 시도를 넘어 새로운 버전의 소리극을 무대화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좋은 작품 제작을 위해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제작비를 반분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며 “유럽의 무대 전문가들을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청가’는 스토리와 메시지가 유럽에서도 거부감이 없는 보편적 소재라고 국립극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오페라 ‘심청’이 독일에선 제법 알려져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1972년 동서 화합을 주제로 열린 독일 뮌헨올림픽 문화행사에서 이 작품을 공연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무대에서 승부하려면 창극의 문호를 다른 장르에 더욱 개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소라 고려대 교수는 “창극의 대중화·세계화는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야 가능하다”며 “창극에 사용하는 음악도 판소리만 고집할 게 아니라 민요·정가 등 다양한 성악 장르를 포섭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국악인 박애리씨는 “외국에서 공연할 때 그들이 잘 아는 이야기나 형식에 매우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며 “창극의 세계화를 위해선 전통적 소재와 서구에 익숙한 소재 두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향 호서대 교수는 “세계화란 타 문화와 한국적 감수성 간의 교류”라며 “창극은 한국적인 것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여러 장르의 전문가들이 창극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웹툰 기반 창극 ‘정년이’를 연출한 남인우 극단 북새통 대표는 “창극에 도전하려는 젊은 연출가와 창작자들이 많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번역가 양성 등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서울시극단 대표인 고선웅 연출은 “외국에서 창극을 공연할 때 분명히 웃기는 장면인데 관객들이 웃지 않을 때 고통스러웠다”며 “창극 번역 인력 등을 키워내려면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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