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저하고’ 물 건너간 추경호 경제팀
2023. 12. 18. 07:03
윤석열 정부 1기 경제 성적표
내수·수출 침체로 저성장 악순환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 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새 정부 최우선 과제는 물가 등 민생 안정”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망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때였다. 당시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4.8%, 5월 5.4%, 6월 6.0% 등이었다. 경기도 급속도로 얼어붙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도 컸다.
추 부총리는 임명을 받은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서울청사에 기재부 주요 간부들과 도시락 회의를 하며 물가 현황 등을 점검했다. 추 부총리는 취임 첫날인 5월 11일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TF를 중심으로 선제적 대응 조치를 마련하는 등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관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1년여가 지난 올 7월 추 부총리는 물가와 관련해서 한고비 넘겼다고 자평했다. 그는 지난 7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한국경제가 지난 1년간 힘든 시기를 지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 왔다.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머물며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 전망과 달리 최근 물가는 3%대를 유지하고 있고, 상방 압력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서민 생활과 밀접한 먹거리 물가는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 올랐다. 8월(3.4%), 9월(3.7%), 10월(3.8%)에 이어 4개월째 3%대다. 먹거리 물가는 5% 안팎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가공식품 물가는 5.1%, 외식 물가는 4.8%다.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2021년 12월부터 24개월째 전체 평균을 웃돌고 있고, 외식은 2021년 6월부터 30개월 연속 상회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실질소득은 쪼그라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전체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은 평균 397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1% 늘었다. 3분기 전체 물가상승률도 3.1%다. 하지만 가공식품과 외식의 3분기 물가상승률은 각각 6.3%와 5.4%로,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크게 웃돌았다. 먹거리 물가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더 컸다. 올해 3분기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91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6% 증가한 데 반해 소득상위 20%(5분위)는 832만원으로 3.1% 늘었다.
물가가 안 잡히자 정부는 ‘MB(이명박)식 물가관리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빵, 우유, 라면, 아이스크림, 밀가루와 같은 가공식품 9개 품목 등 소비자들의 물가 체감도가 큰 농식품 28개 품목에 대해 11월부터 밀착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아직까진 물가관리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11월 가공식품 물가(5.1%)만 보더라도 전체 평균 물가상승률(3.3%)보다 1.8%포인트 높다. 물가관리제는 무엇보다 추 부총리가 강조한 민간 중심의 친시장·친기업 기조와 배치된다. 추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이나 인위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원가에 대한 부담을 줄여줘 기업이 자율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실질소득이 줄면 가계 구매력이 떨어져 내수 시장도 얼어붙는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2월 7일 발표한 ‘12월 경제동향’을 보면, 소비의 대표 지수인 소매판매는 10월의 경우 1년 전보다 4.4% 감소해 전달(-2.0%)보다 감소폭이 커졌다. 같은 달 설비투자 역시 1년 전보다 9.7% 줄어 전월(-5.6%)에 이어 감소세를 키웠다. KDI는 지난 3월 이후 9개월 만에 ‘내수 둔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최근 11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3% 올라 전월(10월 3.8%)보다 상승세가 둔화한 것도 내수 부진에 따른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추 부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상반기 저조하다가 하반기에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회복으로 수출이 본궤도에 오르리란 기대였다.
그렇다면 올해 수출 실적은 어땠을까. 최근 들어 반등의 기미가 보이긴 하나, 연간으로는 예년에 비해 크게 저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1월 30일 발표한 ‘2023년 수출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수출은 6300억달러로 추정됐다. 지난해 대비 7.8% 줄어든 수치다. 수입은 6450억달러로 전년 대비 11.8%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올해 무역수지는 150억달러 적자가 예상된다.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이 부진한 이유가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3대 주요 수출 품목 중 자동차 등 5개 품목을 제외한 반도체 등 8개 품목의 올해 1∼10월 수출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했다. 감소폭은 반도체 24.4%, 컴퓨터 50.5%, 석유제품 16.0%, 석유화학 16.0%, 디스플레이 10.0% 등이다.
특히 대중 수출은 지난 11월까지 18개월째 감소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1월엔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한 113억6000만달러(14조7555억원)다. 그나마 올 들어 가장 나은 실적이다. 이로 인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된 대중 무역적자는 172억7180만달러(22조5501억원)에 달한다. 연간으로 200억달러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 무역 적자는 1992년(10억7130만달러) 중국과 수교 이후 처음이다.
내수와 수출의 침체로 저성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6%였다. 이후 올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1.4%로 예측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1년 12월 이후 올해 6월까지 5회 연속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고, 지난 11월 29일 전망에서는 기존 전망(1.5%) 대비 0.1%포인트 낮은 1.4%로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0월 10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4%, 일본은 2.0%로 전망한 바 있다.
전망대로라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성장률에서 일본에 역전을 당한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대 성장률은 위기 시기의 예외를 제외하고 사상 최초이며 일본보다 경제성장률이 뒤지는 것도 IMF 위기 때 외에는 처음 있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부진한 주요 경제지표에서 알 수 있듯,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민생·경제와 관련한 국민 여론도 좋지 않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 12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포인트. 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3%, 부정 평가는 60%로 각각 집계됐다. 부정 평가 요인 중에선 경제·민생(34%)이 가장 많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고 공언한 추경호 경제팀이 정작 민생과 직결된 집값이나 가계부채 안정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대출을 늘리는 등 민생 안정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쳤다. 집값이나 가계부채가 안정돼야 소비도 살아나고, 나아가 국가 경제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59조원 규모의 역대급 세수 펑크가 발생한 것은 경제사령탑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오점이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한국은행 일시대출금만 지난 1~9월 113조원에 달하고, 이에 따른 이자 비용만 약 1500억원에 달했다. 감세정책의 전환과 같은 재원확보 방안이 필요함에도 추 부총리는 세계잉여금, 기금 여유재원, 불용 등으로 구멍 난 세수를 메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세수가 줄면 정부의 재정 적자가 커진다. 국세수입에 연동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받아 살림을 꾸려가는 지자체들이 고사 직전에 내몰리는 등 심각한 문제들도 이어진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민간이 위축되고 내수가 가라앉으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켜야 함에도 되레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지출을 늘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서 내수가 악화하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니 또다시 정부 재정이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룬 현안도 많다.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 공약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다. 한국은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돼 있다.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면 외국인 투자 자금의 국내 유입이 늘고, 급격한 자본 유출입 우려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11월 5일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내년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금지 조치가 글로벌 시장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로 MSCI 지수 편입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공매도 시장의 공정성을 강화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싼 가격으로 되사서 갚는 것인데, 개인의 경우 외국인이나 기관과 달리 주식을 빌려 공매도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4월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1월 27일 사설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 증시 주도 세력이 된 개인 주식 투자자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라며 “금지 조치는 MSCI 선진시장 승격을 꿈꾸던 한국의 오랜 야망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1월 7일 공매도 금지에 대한 우려를 전한 야당 의원 질의에 그는 “공매도 금지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MSCI 편입과 관련된 제도개선은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부담 증가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사업장에 대한 추 부총리의 판단도 아쉬운 대목이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2.42%로 6월 말(2.17%) 대비 0.2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말(1.19%)과 비교하면 1.23%포인트 올랐다. 대출 잔액도 134조3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조2000억원 늘었다. 추 부총리는 앞서 지난 4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의 부동산 시장 리스크를 묻자 “PF 시장에 이상징후는 없다”고 답했다. 9월 21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최근 PF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고 리스크가 점차 완화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긍정 평가를 받는 대목도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혼란에 빠진 채권시장을 큰 문제 없이 진화한 것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한 고물가와 공급망 불안 등과 같은 국내 리스크에도 비교적 큰 피해 없이 대처한 일 등이다. 추 부총리는 차기 부총리로 지명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의 인사청문회 이후 부총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그는 12월 1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최고 위기 순간은 지난해 레고 사태였다. 정부는 당시 위기로 가지 않는다고 봤지만, 만에 하나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고 초긴장 상태로 대응했다”고 회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레고랜드 사태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굵직한 국내외 리스크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기재부 차관과 국회의원 재선을 지낸 경험이 빛을 발한 것 같다. 다만 경기 상황에 따른 대처는 유연하지 못했다. 재정건전성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추경 등을 통해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를 시장에 적극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 경기는 더 암울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방법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 발굴과 규제 개편 등과 같은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내수·수출 침체로 저성장 악순환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 사령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새 정부 최우선 과제는 물가 등 민생 안정”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공급망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때였다. 당시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4.8%, 5월 5.4%, 6월 6.0% 등이었다. 경기도 급속도로 얼어붙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도 컸다.
추 부총리는 임명을 받은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서울청사에 기재부 주요 간부들과 도시락 회의를 하며 물가 현황 등을 점검했다. 추 부총리는 취임 첫날인 5월 11일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TF를 중심으로 선제적 대응 조치를 마련하는 등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관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1년여가 지난 올 7월 추 부총리는 물가와 관련해서 한고비 넘겼다고 자평했다. 그는 지난 7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한국경제가 지난 1년간 힘든 시기를 지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지점에 왔다.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머물며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 전망과 달리 최근 물가는 3%대를 유지하고 있고, 상방 압력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서민 생활과 밀접한 먹거리 물가는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 올랐다. 8월(3.4%), 9월(3.7%), 10월(3.8%)에 이어 4개월째 3%대다. 먹거리 물가는 5% 안팎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가공식품 물가는 5.1%, 외식 물가는 4.8%다.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2021년 12월부터 24개월째 전체 평균을 웃돌고 있고, 외식은 2021년 6월부터 30개월 연속 상회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실질소득은 쪼그라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전체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은 평균 397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1% 늘었다. 3분기 전체 물가상승률도 3.1%다. 하지만 가공식품과 외식의 3분기 물가상승률은 각각 6.3%와 5.4%로,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크게 웃돌았다. 먹거리 물가 부담은 저소득층에게 더 컸다. 올해 3분기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91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6% 증가한 데 반해 소득상위 20%(5분위)는 832만원으로 3.1% 늘었다.
물가가 안 잡히자 정부는 ‘MB(이명박)식 물가관리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빵, 우유, 라면, 아이스크림, 밀가루와 같은 가공식품 9개 품목 등 소비자들의 물가 체감도가 큰 농식품 28개 품목에 대해 11월부터 밀착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아직까진 물가관리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11월 가공식품 물가(5.1%)만 보더라도 전체 평균 물가상승률(3.3%)보다 1.8%포인트 높다. 물가관리제는 무엇보다 추 부총리가 강조한 민간 중심의 친시장·친기업 기조와 배치된다. 추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이나 인위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원가에 대한 부담을 줄여줘 기업이 자율적으로 소비자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실질소득이 줄면 가계 구매력이 떨어져 내수 시장도 얼어붙는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2월 7일 발표한 ‘12월 경제동향’을 보면, 소비의 대표 지수인 소매판매는 10월의 경우 1년 전보다 4.4% 감소해 전달(-2.0%)보다 감소폭이 커졌다. 같은 달 설비투자 역시 1년 전보다 9.7% 줄어 전월(-5.6%)에 이어 감소세를 키웠다. KDI는 지난 3월 이후 9개월 만에 ‘내수 둔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최근 11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3% 올라 전월(10월 3.8%)보다 상승세가 둔화한 것도 내수 부진에 따른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올 무역수지 150억달러 적자 예상”
추 부총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경기가 상저하고(상반기 저조하다가 하반기에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회복으로 수출이 본궤도에 오르리란 기대였다.
그렇다면 올해 수출 실적은 어땠을까. 최근 들어 반등의 기미가 보이긴 하나, 연간으로는 예년에 비해 크게 저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 11월 30일 발표한 ‘2023년 수출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수출은 6300억달러로 추정됐다. 지난해 대비 7.8% 줄어든 수치다. 수입은 6450억달러로 전년 대비 11.8%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올해 무역수지는 150억달러 적자가 예상된다.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이 부진한 이유가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3대 주요 수출 품목 중 자동차 등 5개 품목을 제외한 반도체 등 8개 품목의 올해 1∼10월 수출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했다. 감소폭은 반도체 24.4%, 컴퓨터 50.5%, 석유제품 16.0%, 석유화학 16.0%, 디스플레이 10.0% 등이다.
특히 대중 수출은 지난 11월까지 18개월째 감소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1월엔 전년 동기 대비 0.2% 감소한 113억6000만달러(14조7555억원)다. 그나마 올 들어 가장 나은 실적이다. 이로 인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된 대중 무역적자는 172억7180만달러(22조5501억원)에 달한다. 연간으로 200억달러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 무역 적자는 1992년(10억7130만달러) 중국과 수교 이후 처음이다.
내수와 수출의 침체로 저성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6%였다. 이후 올 7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1.4%로 예측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1년 12월 이후 올해 6월까지 5회 연속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고, 지난 11월 29일 전망에서는 기존 전망(1.5%) 대비 0.1%포인트 낮은 1.4%로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0월 10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1.4%, 일본은 2.0%로 전망한 바 있다.
전망대로라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성장률에서 일본에 역전을 당한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대 성장률은 위기 시기의 예외를 제외하고 사상 최초이며 일본보다 경제성장률이 뒤지는 것도 IMF 위기 때 외에는 처음 있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다.
부진한 주요 경제지표에서 알 수 있듯,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민생·경제와 관련한 국민 여론도 좋지 않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공동으로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 12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포인트. 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3%, 부정 평가는 60%로 각각 집계됐다. 부정 평가 요인 중에선 경제·민생(34%)이 가장 많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고 공언한 추경호 경제팀이 정작 민생과 직결된 집값이나 가계부채 안정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대출을 늘리는 등 민생 안정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쳤다. 집값이나 가계부채가 안정돼야 소비도 살아나고, 나아가 국가 경제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역대급 세수 펑크와 미뤄진 현안들
59조원 규모의 역대급 세수 펑크가 발생한 것은 경제사령탑으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오점이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한국은행 일시대출금만 지난 1~9월 113조원에 달하고, 이에 따른 이자 비용만 약 1500억원에 달했다. 감세정책의 전환과 같은 재원확보 방안이 필요함에도 추 부총리는 세계잉여금, 기금 여유재원, 불용 등으로 구멍 난 세수를 메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세수가 줄면 정부의 재정 적자가 커진다. 국세수입에 연동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받아 살림을 꾸려가는 지자체들이 고사 직전에 내몰리는 등 심각한 문제들도 이어진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민간이 위축되고 내수가 가라앉으면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켜야 함에도 되레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지출을 늘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지 않으면서 내수가 악화하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니 또다시 정부 재정이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룬 현안도 많다.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 공약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다. 한국은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돼 있다.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면 외국인 투자 자금의 국내 유입이 늘고, 급격한 자본 유출입 우려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11월 5일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내년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금지 조치가 글로벌 시장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공매도를 금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로 MSCI 지수 편입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공매도 시장의 공정성을 강화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 싼 가격으로 되사서 갚는 것인데, 개인의 경우 외국인이나 기관과 달리 주식을 빌려 공매도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4월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1월 27일 사설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 증시 주도 세력이 된 개인 주식 투자자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라며 “금지 조치는 MSCI 선진시장 승격을 꿈꾸던 한국의 오랜 야망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1월 7일 공매도 금지에 대한 우려를 전한 야당 의원 질의에 그는 “공매도 금지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MSCI 편입과 관련된 제도개선은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부담 증가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사업장에 대한 추 부총리의 판단도 아쉬운 대목이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2.42%로 6월 말(2.17%) 대비 0.2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말(1.19%)과 비교하면 1.23%포인트 올랐다. 대출 잔액도 134조3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조2000억원 늘었다. 추 부총리는 앞서 지난 4월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의 부동산 시장 리스크를 묻자 “PF 시장에 이상징후는 없다”고 답했다. 9월 21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최근 PF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고 리스크가 점차 완화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성과 있지만 경기 부양 의지 아쉬워”
긍정 평가를 받는 대목도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혼란에 빠진 채권시장을 큰 문제 없이 진화한 것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한 고물가와 공급망 불안 등과 같은 국내 리스크에도 비교적 큰 피해 없이 대처한 일 등이다. 추 부총리는 차기 부총리로 지명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의 인사청문회 이후 부총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그는 12월 1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최고 위기 순간은 지난해 레고 사태였다. 정부는 당시 위기로 가지 않는다고 봤지만, 만에 하나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고 초긴장 상태로 대응했다”고 회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레고랜드 사태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굵직한 국내외 리스크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기재부 차관과 국회의원 재선을 지낸 경험이 빛을 발한 것 같다. 다만 경기 상황에 따른 대처는 유연하지 못했다. 재정건전성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추경 등을 통해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를 시장에 적극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 경기는 더 암울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방법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 발굴과 규제 개편 등과 같은 구조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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