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정책, F는 면했다[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8)

2023. 12. 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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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이 12월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2072년까지 장래인구추계 작성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벌써 2023년 연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이 지면에 불평등과 기후재앙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라는 단기적 위협이 겹쳤음에도 정부가 복지정책 방향, 경제정책 방향, 3대 구조개혁 방안 등 내놓는 정책마다 헛다리 짚는 형국임을 안타깝게 지적하는 글을 기고했다. 이번엔 차분하게 연말 정책 결산을 해보려 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장래인구추계, 12월 발표

마침 12월은 주요 통계들이 발표돼 현시점의 한국사회를 진단해볼 수 있는 좋은 시기다. 대표적인 통계가 가계금융복지조사(매년)와 장래인구추계(격년)다. 통계청은 12월 14일 2022년부터 2072년까지의 대한민국의 인구를 추계하는 ‘2023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을 발표했다. 원래 5년에 한 번씩 발표되던 장래인구추계가 2020년 법 개정으로 발표 간격이 2년으로 줄었다. 이번 장래인구추계는 한국사회가 초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 27.0세이었던 중위연령(나이 분포의 중간에 위치한 연령)이 2000년 31.8세, 2020년 43.7세를 거쳐 2030년 49.7세, 2050년 58.1세, 2060년 61.5세에 이른다. 2060년엔 인구의 절반이 61.5세 이상이란 의미다. 생산가능인구(15~65세) 100명 대비 65세 고령인구를 뜻하는 노인부양비는 2022년 24.4명에서 2072년 104.2명이 된다. 문제는 장래인구추계의 예측이 계속 틀려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2022년 출생아 수는 24만9186명이었는데, 2011년 장래인구추계에선 2022년 출생아 수를 45만명, 2016년 추계에선 41만1천명, 2019년 추계는 30만명이라고 예측했다. 통계청의 대표적인 인구추계조차 번번이 틀릴 정도로 합계출산율, 출생아 수는 예측 불허로 급감하고 있다.

전국 2만여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가계 자산, 부채, 소득, 지출 조사인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전반적인 분배 지표인 지니계수, 5분위 배율 등이 다소 개선됐으나, 이는 경기 침체의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현시점에 중요하게 봐야 하는 지표는 가계부채다. 2023년 3월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부채액은 9186만원으로 1년 전보다 0.2% 늘어난 수준이었으나, 소득하위 20%(1분위) 계층의 부채는 2004만원으로 전년 대비 22.7%(371만원) 늘었다. 또 눈여겨볼 통계는 ‘공적이전소득’이다. 2022년 가구당 평균소득은 전년 대비 4.5% 늘었으나, 여러 소득 가운데 복지 정책 등으로 정부로부터 개인에게 이전되는 공적이전소득은 전년보다 4.8% 감소했다. 결국 정부가 경기 침체기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이전소득을 줄였고, 이들의 빚이 늘어난 게 통계로 확인된다. 취약계층은 제1금융권의 저리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워 이들의 부채는 향후 실질 처분가능소득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성적표는 D-

장래인구추계와 가계금융복지조사만 봐도 한국사회는 꺾이지 않는 추세로 가라앉다 못해 소멸하고 있고, 단기적으로 맞이한 위기상황에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한 것일까. 크게 두 가지를 하지 않았다. 구조적인 문제에 실효적인 대응은커녕 로드맵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단기적인 위기에도 ‘이념’에 빠져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정책 성적표를 매기자면 D-(디 마이너스)를 주고 싶다. 그나마 F를 면한 것은 잘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구조적 문제들은 소득과 자산 등 여러 차원의 불평등(이런 불평등을 야기하는 노동시장의 구조 포함), 저출생, 기후재앙 등이다. 불평등과 저출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역엔 일자리가 부족한 반면 일자리가 있는 수도권엔 집값이 천정부지이다. 출산한 여성들이 일하기 힘든 사회에선 아이를 낳기 힘든 게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불평등의 경제학(15) ‘결혼·출산, 누가 막냐고? 불평등한 세상이’). 결국 불평등과 저출생의 문제를 개선하려면 다양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 정책의 총량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약자 복지’ 등의 구호는 열심히 외쳤지만, 통계를 보면 정책의 총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여실하게 나타난다. OECD의 사회지출통계(SOCX·Social Expenditure Database)를 보면 공적사회지출(public social spending)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14.8%로 38개국 가운데 34위다. 한국의 고령화 비율이 2020년대 중반부터 치솟을 예정이라 어쩔 수 없이 증가하는 의료지출, 연금 등의 증가로 공적사회지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정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인데도 정부의 대응은 미진한 상황이다.

(출처: 통계청)



저출생 예산으로 수백조원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들이 하도 많아서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저출생 현상이 심각한 나라임에도 GDP 대비 가족 관련 지출이 2019년 기준 1.4%로 선진국 평균 2.1%보다 낮다. 문재인 정부 첫해 도입된 아동수당 지급 전엔 OECD 국가 가운데 이 지출의 순위가 거의 최하위였다. 통계로 확인 가능한 시기가 2019년까지라 최근까지의 변화를 정확히 알긴 어려우나, 이 통계가 크게 개선됐을 가능성은 낮다. 윤석열 정부가 부모급여를 도입해 영아기 현금 지원을 늘렸으나, 출생아 수 급감으로 수급 인원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출생 현상은 이미 한두 개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상황이 아니다.

시급한 돌봄의 문제도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 공공보육(국공립 보육기관 입소)의 비중 확대는 오랜 기간 보육계와 양육자에게 숙원이었으나, 정부의 대응이 아닌 저출생으로 목표가 달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는 시범사업으로나마 운영하는 늘봄학교로 대응하고 있으나, 방과후돌봄(틈새돌봄)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학교가 전국 95개(9월 기준)에 불과할 정도여서 산불에 소화기 하나 들고 뛰어드는 형국이다. 저출생 고령화 추세로 인해 확정된 파국을 막기 위한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에도 정부는 제대로 된 로드맵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기후재앙 대응은 하지 않은 것을 넘어 로드맵을 수정하면서까지 역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1월 제10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목표인 30.6%에서 21.6%로 하향 조정했다. 이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OECD 최하위권인데, 목표조차 하향 조정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RE100(신재생에너지 100%로 전력을 수급하겠다는 캠페인) 등 국제 규범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문제뿐만이 아닌 단기적 경기 대응에도 무능했다. 원인은 이념 탓이었다. 경기침체 때의 적극적 재정 대응이 상식적인데도 불구하고, 전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무조건식 ‘긴축’만을 외친 탓에 올해 3분기 누적으로 민간 소비가 0.84% 증가했는데 반해 정부 소비가 1.56% 감소하며 경기침체를 가속화했다. 고물가 때문에 긴축을 했다고 항변할 수 있으나, 막대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감세는 오히려 물가를 자극하기에 앞뒤도 맞지 않는다. 긴축을 한다면서 조세지출을 늘리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폭등 이후인 데다 고금리 환경에서 가격이 일부 조정되는 게 당연했으나, 정부가 소득·재산 기준을 완화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 대출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40조원 넘게 푸는 등 인위적인 개입으로 가격을 떠받쳤다. 그 덕분에 역전세난, 집값 하락 등이 발생하진 않았으나, 이는 폭탄이 잠시 터지지 않도록 폭신한 인화물질로 감싸서 다른 곳에 던진 격이다. 현안인 전세사기 문제 역시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기준중위소득 인상과 의대 정원 증원은 가점 요소

물론 윤석열 정부가 모든 면에서 잘못하진 않았다. 앞서 매긴 정책 학점에서 F를 면한 이유는 이전 정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준중위소득의 역대급 인상이다. 기준중위소득이란 정부 복지정책의 지급 기준으로 이 소득이 올라갈 경우 복지 대상이 늘어나고, 지원의 규모도 증가한다. 2023년 기준중위소득을 전년보다 5.47% 인상한 데 이어 2024년엔 6.09% 올렸다. 둘 다 최대 인상 폭이다. 한편으론 물가가 이전보다 올랐으니 이전보다 큰 폭의 기준중위소득 인상이 당연하다고 볼 순 있으나,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도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충분히 인상하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의 성취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윤 정부는 생계급여의 기준을 2023년에 기준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올린 데 이어 임기 내로 35%까지 끌어올리겠다고도 했다. 이 역시도 전임 정부에선 하지 못한 복지 강화다. 의대 정원 증원도 평가할 만한 정책 방향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대와 파업 강행 등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종합적인 정책 대응엔 무능하고 미진했으나, 관료의 반대나 이해집단의 이익 추구 등을 확실히 제압하는 강점은 분명히 있다. 강점을 살려 구조 개혁에 집중해 내년엔 더 나은 정책 성적표를 받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국민의 삶이 개선되고, 사회가 지속가능할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올라가기 때문이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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