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블핑 있게 한 ‘전설의 댄서’…“교수보단 춤꾼으로 남을래요”

‘원조 스우파’ 홍영주 교수
집·학교 오가던 얌전한 학생
나이트 따라갔다가 재능 찾아
룰라·박진영·클론 등과 활동
아이돌 시스템 밑바탕 만들어
“상위 1%빼곤 댄서의길 열악
권리보호 위한 단체 만들 것”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홍영주 교수가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내 댄스 음악의 전성기로 꼽힌다. 룰라, 박진영, 백지영, 쿨, 클론, 터보 등이 선보인 댄스곡이 가요 차트를 휩쓸었다. 홍영주 국제대학교 교수(52)는 춤으로 당대 가요계를 평정한 안무가다. 수많은 히트곡의 안무가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고,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그에게 춤을 배웠다. 최근 매일경제는 “교수보다는 영원한 ‘춤꾼’으로 불리고 싶다”는 홍 교수를 만났다.

성장 과정을 묻는 질문에 홍 교수는 “집과 학교, 교회만 다니던 따분한 학생이었기에 해 줄 말이 없다”며 난처해했다. 그가 춤에 눈을 뜬 건 스무 살,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 갔던 순간이다. 홍 교수는 “회사 회식 때 나이트클럽을 따라갔는데 나이트 직원들이 ‘얘 분명히 놀던 애다’라고 하더라”며 “돌이켜보면 막춤이었을 텐데, 당시엔 춤을 잘 춘다는 칭찬에 마냥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동안 ‘나이트 죽순이’로 지냈다는 홍 교수는 당시 KBS 인기 음악 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 무용단에 입단했다. “입단 동기 중엔 발레를 전공했거나 전문적으로 춤을 배운 친구들이 많았다”는 그는 “기본기가 없던 제가 무용단에 입단한 것 자체가 사실 기적”이라고 말했다.

매일 반복되는 무용단의 연습 스케줄은 혹독했다. 30여 명이던 홍 교수의 입단 동기가 3개월 뒤엔 6명으로 줄었다. 그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매일 새로운 춤을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며 “저녁엔 문을 닫는 연습실을 몰래 창문으로 드나들며 밤새워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홍영주 교수가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무용단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홍 교수는 당시 최고의 댄스 가수들과 함께 활동했다. 하지만 활동이 왕성해질수록 후배 양성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그는 “90년대에만 해도 안무가들에 대한 교육은 체계가 없었다”며 “춤 좀 춘다고 하는 아이들을 무용단에 데려다 놓고 먼저 들어온 선배가 방송 출연을 위해 속성으로 가르친 게 전부”라고 회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홍 교수는 댄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교육 체계를 국내에 도입했다. 자격을 갖춘 스승이 커리큘럼대로 가르치고, 그중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무대에 함께 서는 시스템이다. “당시에 잡아놓은 교육 체계가 현재 아이돌 양성 시스템의 밑바탕이 됐다”는 홍 교수는 “K팝 팬이라면 익숙할 연습생들의 월말 평가나 승강제도 역시 제가 최초로 고안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아이돌뿐 아니라 댄서들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댄스 경연 프로그램의 흥행으로 일부 댄서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하지만 홍 교수는 “여전히 대다수 댄서는 ‘일용직 근로자’로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댄서들이 무대에 한 번 오르기 위해선 4~5차례의 연습뿐 아니라 공연 당일엔 많게는 12시간까지도 대기를 해야 한다”며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이 7만원 남짓이다, 30년 전에 5만원을 받았는데 거의 오르질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대학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이 현실을 알고 난 뒤로는 댄서의 길을 포기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교수의 다음 목표는 댄서들의 권리를 함양하기 위한 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열정만으로 춤을 춰야 하는 현실이 선배로서 미안하다”며 “댄서계의 어른들과 뜻을 모아 댄서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