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 ‘SK 프리미엄’ 내년엔 흔들릴 수도... 재무부담에 11번가 여파 겹쳐
“신용등급 변하지 않으면, 회사채 발행 문제 없어” 의견 다수지만
내년 계열사 줄줄이 회사채 발행... 일부는 재무부담 우려 제기
투자자와 암묵적 약속을 어겨 신뢰도에 금이 간 SK그룹이 내년 자금조달 시장에서 부정적 평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K그룹은 내년 회사채를 가장 많이 발행해야 하는 그룹으로 꼽힌다. 당장 신용도는 굳건하지만, 차입금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투자심리가 우호적일 순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1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그간 SK그룹이 발행한 회사채 중 내년 1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총 2조8600억원으로 집계됐다. 표면이율이 가장 낮은 채권은 2021년 1월 SK텔레콤(AAA)이 발행한 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로, 1.174% 수준에서 발행됐다. 같은 해 SK이노베이션(AA0)도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1.213% 이율로 발행한 바 있다.
그간 SK그룹 계열사들은 대기업 프리미엄에 우수한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1~2%대 이자율로 회사채를 발행하곤 했다. SK그룹은 내년 자금 조달 시장 문을 가장 자주 두드릴 곳으로 거론된다. 돌아오는 회사채 만기 일정이 빡빡한 데다 SK온 등 시설 투자가 필요한 곳들이 줄줄이 조달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최근 회사채 발행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차환, 발행 과정에서 이자 부담이 커진 상태다.
회사채 발행이 활발하다는 건 SK그룹이 채무불이행을 하지 않을 것이란 신의가 자본시장에 깔려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SK프리미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K스퀘어가 11번가의 재무적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을 되사오는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포기하면서 평판 리스크가 부각된 탓이다.
5년 전 SK그룹은 국민연금·새마을금고·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5년 내 상장을 약속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시장에서는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해 FI 지분을 되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SK그룹이 이를 포기하면서 신의를 저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SK스퀘어만 배임을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니라 FI들도 투자 실패라는 측면에서 배임 가능성이 거론될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라며 “그룹 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내린 결정이겠지만, 앞으로 SK그룹 딜엔 추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꼬리표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K그룹 일부 계열사는 상장하지 못하면 동반 매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상태다. 이 기업들은 대부분 적자 상태이고, 당장은 흑자 전환이 요원하다.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11번가처럼 SK그룹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업들은 그동안엔 당연했던 높은 프리미엄이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앞으로 그럴 수 있단 의미이고, 당장은 평판 리스크가 크지 않다. 특히 지주회사 SK는 성공적으로 공모채를 발행했다. 지난 4일 SK(AA+)는 총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3년물900억원의 금리는 3.965%, 5년물 1100억원은 4.044%로 각각 민평대비 낮은 수준에서 금리가 책정됐다. 중장기적으로 원리금 상환에는 문제가 없는 탄탄한 대기업으로 누리는 프리미엄인 셈이다.
다른 관계자는 “채권 투자자들은 SK그룹 계열사들이 가진 신용등급과 앞으로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지만 고려한다”며 “이사회에서 배임 이슈로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자본시장에서 신뢰도를 약간 잃었지만, 이게 채권을 갚지 못할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또 다른 우려 요인은 재무 부담이다. 내년 차입금 증가로 재무부담이 커진다면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K의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11조2894억원이었는데, 올해는 3분기 말까지만 집계했는데도 벌써 11조4072억원으로 지난해 규모를 뛰어넘었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도 연결 기준 39.7%에서 39.1%로 늘어났다. 차입금 의존도는 자산총계를 차입금으로 나눈 것으로, 높을수록 차입금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신용평가는 SK의 신용도 하향 조정 가능성을 높게 보며 “신규 사업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자체적인 현금창출력을 상회하는 투자자금 소요가 발생하고 있어 신규 사업의 진행 과정과 투자성과, 현금흐름 및 재무구조 변화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 역시 2022년 기준 SK그룹의 재무부담을 우려하며 지난 3년간 차입금 규모가 급증하면서 영업실적 둔화 시 노출되는 신용위험 수준 또한 과거 대비 확대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어 채무상환능력 저하가 심화할 경우, SK그룹 전반의 신용도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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