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주행동 성적표 살펴보니… 주주제안 급증했지만, 승인은 11% 불과
주가 부양 효과 장기적으론 미미하다는 지적도
그렇지만 주주행동주의 열풍은 계속될 듯
올해 국내 주주 행동주의 활동이 부지런히 이뤄졌지만, 대부분 표 대결에서 고배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행동주의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어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높아진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주 행동주의 열풍이 불면서 올해 주주제안 안건을 다룬 기업은 전년보다 57.1% 증가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선 8개 증가한 22곳, 코스닥시장에서 8개 늘어난 22곳으로 총 44개 기업이 해당됐다.
하지만 올해 상정된 주주제안 79건 가운데 승인된 안건은 9건(11.3%)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주환원 강화 안건인 ‘현금·주식 배당 요구’와 ‘주식 취득·소각‘은 단 한 건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사·감사·감사위원 선임‘ 안건만 6건(22.2%) 통과했다.
행동주의 펀드 대부분은 표 대결 장벽에 가로막혔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과 BYC를 상대로 주주행동을 적극 전개했으나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SM엔터테인턴트(에스엠)에 승리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경우 JB금융지주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제안들이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안다자산운용(KT&G),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KISCO홀딩스) 등이 제출한 주주제안 역시 정기주총에서 모두 부결됐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정된 주주제안 중 배당 요구 등의 주주환원 강화 안건 승인율은 0%를 기록했는데, 현 경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 주주 가치 실현을 한꺼번에 반영하려고 했다”며 “경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국민연금이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등이 회사 이사회 안건에 호응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동주의가 장기적 측면에서 기업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행동주의 펀드의 등장은 투자자에게 주가 상승 시그널로 여겨진다. 주주 환원을 확대하려는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최근엔 이 공식이 잘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3월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공격 이후 주가가 되레 하락세다. 전거래일인 15일 종가 기준 주가(60만5000원)는 작년 1월 대비 반 토막 수준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KCGI자산운용이 첫 행동 대상으로 지목했던 올해 3월엔 주가가 올랐지만,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한 8월 이후부터 약세로 전환했다. 코람코자산신탁이 타깃으로 삼은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들 주가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행동주의 펀드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KT&G의 경영 개선을 요구했던 FCP는 내년 주총을 앞두고 이달 초에도 이사회에 사장 후보 선임 절차를 개선해달라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후 KT&G는 차기 사장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현직 사장을 다른 후보자에 우선해 심사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사장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삼성물산도 내년 주총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영국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캐피탈,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에 이어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등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 배분 요구 등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주주 활동이 잇따르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법상 내년 3월 주총 시즌을 앞두고 6주 전인 1~2월까지 주주제안을 전달해야 한다”면서 “최근 행동주의 펀드는 주총 안건을 검토하고, 소액주주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여론 캠페인을 펼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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