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 보며 한국 꿈 키운 인니 유학생 “내 꿈은 한국서 취업한 과학자”
인니 명문 반둥공대 나와 한국에서 석·박사
런닝맨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 사랑, 한국어도 수준급
한국 취업 희망하지만 외국인에 높은 문턱에 불안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의대 쏠림 현상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분야의 인재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은 여러모로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해외 인재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면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비즈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다를 건너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고 해외 인재 유치 과정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난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어본다. [편집자 주]
인도네시아 이공계 최고 명문인 반둥공대를 다니던 마르셀 조나단 하다잣(Marcel Jonathan Hidajat·30)은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을 보고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가, 때마침 반둥공대에 있던 한국인 교수의 소개로 성균관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성균관대에서는 김재훈 교수 연구실에서 기계공학과 나노기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다잣은 석사학위를 받고 국내 중소기업에 취업해 2년 10개월 정도 다녔다. 석사 시절 연구실 과제와 연계된 중소기업이었다. 이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공동 설립한 대학원대학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 입학했다 현재 UST 한국화학연구원 스쿨에서 학생연구원으로 일하며 연구와 학업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15년 한국에 처음 발을 딛고 벌써 한국 생활 8년차를 맞고 있다. 처음 한국에 빠지게 된 계기는 ‘런닝맨’이었지만 지금은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인 ‘뭉쳐야 찬다’의 열성팬이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뼈해장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푹 빠졌다.
지난 8일 대전 유성구의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하다잣 연구원을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 모두 놀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유창한 한국어다. 하다잣 연구원은 한국어능력시험(토픽) 6급으로 최고 등급을 받았다. 단순히 대화가 통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자성어나 줄임말까지 사용하며 웬만한 한국인 이상으로 한국어에 익숙하다. 한국에서 10년, 20년을 살았다는 외국인 교수나 연구자들도 한국말이 어려워 ‘안녕하세요’만 어눌하게 말하고는 곧바로 영어를 꺼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떻게 한국어를 능숙하게 쓰게 됐을까.
하다잣 연구원은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매번 한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으니 혼자서 책과 문법을 찾아보며 공부했다”며 “문법을 배우면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해해가며 공부했고, 2년마다 토픽 시험을 보면서 매번 점수를 높이려고 노력한 게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1993년생으로 이제 막 서른이지만 하다잣 연구원은 이미 7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국제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내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 학술지 ‘케미칼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게재한 논문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UST 관계자는 “하다잣 연구원은 UST 외국인 학생 중 가장 많은 특허 실적과 우수한 논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다잣 연구원은 한국화학연구원 화학공정연구본부 그린탄소연구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저활용 가스자원과 그린탄소 폐플라스틱, 석유화학 부산물을 활용한 친환경 공정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마르셀 연구원은 윤활유 제조에 사용되는 베이스 오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여러 베이스 오일 중에서도 친환경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베이스오일 제조법을 연구하고 있다. 미래 친화적인 친환경 기술로 앞으로의 기술 전망도 좋은 분야다.
하다잣 연구원은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촉매를 연구하는데 그중에서도 ‘폴리알파올레핀(PAO)’를 만드는 합성·제조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기존의 석유 기반인 베이스오일과 다르게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저 한국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타향살이를 8년씩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다잣 연구원이 뽑은 한국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앞선 연구개발(R&D) 인프라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하다잣 연구원은 “반둥공대도 충분히 좋은 학교지만 연구시설이나 인프라에서는 낡은 부분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인프라나 설비에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교육 방식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단순 암기가 많았는데 한국에서는 기본 원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교수님이 설명해주다 보니 이해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하다잣 연구원의 목표는 한국에서 취업하는 것이다. 그는 조금 수줍게 GS칼텍스에서 일하고 싶다며 취업설명회를 찾아다닌 경험도 이야기했다. 요즘 한국 기업들은 이공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취업도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하다잣 연구원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그는 한국에서 아무리 공부해도 일자리를 구하는 건 외국인에게 어려운 부분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출연연은 외국인을 연구원으로 뽑는 경우가 거의 없고, 기업도 외국인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작년에 발표한 ‘국내 박사 학위 취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 학생 1994명 중 62%인 1205명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5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해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박사의 비율은 21.1%P 늘었다.
저출산과 의대 쏠림 현상이 겹치면서 이공계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외국인 인재 유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면서 정부도 이민청 설치 등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하다잣 연구원 같은 외국인 학생은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서 본국으로 돌아갈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학생들이 정말 그들이 원해서 돌아갔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하다잣 연구원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지 묻자 “2025년 2월에 대학원 졸업이라 내년에는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며 “외국인이라서 일자리를 구할 때 차별이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 사회가 조금 더 개방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요 연구성과
Chemical Engineering Journal(2023), DOI : https://doi.org/10.1016/j.cej.2023.145376
Chemical Engineering Journal(2023), DOI : https://doi.org/10.1016/j.cej.2023.141912
GREEN CHEMISTRY(2022), DOI : https://doi.org/10.1039/D2GC0277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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