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리스크 커지는데… 부실사업장 정리 손놓은 저축은행
정작 저축은행은 “헐값 매각 안 해”
금융당국 “선제적인 사업장 정리 필요” 압박
저축은행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부실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부동산 PF 관련 부실채권(NPL)이 증가하면서 운용사는 NPL을 매입하기 위한 실탄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저축은행은 “제값을 받고 팔겠다”라며 부동산 PF NPL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운용사 또한 내년 기준금리가 인하된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PF 시장에 반영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저축은행과 가격을 둘러싼 틈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18일 금융 당국과 저축은행권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에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에 대해 선제적으로 정리하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저축은행이 아직 적극적인 사업장 정리에 나서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브릿지론(사업 초기 토지 매입 및 인허가용 단기 차입금) 위주로 부동산 PF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 금리 인상 등으로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의 자산건전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서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은 2021년 말 12.8%에서 2022년 말 23.7%, 올해 6월 말 41.0%로 급등했다. 브릿지성 토지담보대출의 요주의이하여신비율도 올해 6월 말 기준 33.4%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PF 관련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저축은행 상위 5개 사(SBI·OK·웰컴·한국투자·페퍼)의 부동산 PF 관련 연체율은 올해 3분기 말 기준 6.92%로, 전년 동기 대비 4.52%포인트 상승했다. 1년 만에 연체율이 3배가량 증가했다.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시장의 회복이 쉽지 않은데도 부실 사업장 정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금융 당국이 사업성이 적거나 부실 가능성이 큰 부동산 PF 사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나 민간 NPL 업체도 부동산 PF 관련 NPL 자금을 마련해 부동산 PF 재구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저축은행은 적정 가격을 이유로 오히려 사업장 정리를 고민하고 있다. 헐값에 사업장을 매각하는 대신 만기 연장 등 금융지원을 통해 사업장을 끌고 가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일부 저축은행은 부실 사업장 정리를 위해 법원 경·공매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유찰이 반복돼 기존 투입 금액보다 손해를 입는 수준까지 내려가면 매물을 거둬들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개별 사에서 (부동산 PF 사업장) 매각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시장환경이다”라며 “매수를 희망하는 업체도 많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수자 측에서는 시장 환경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해 매도가를 더 낮추기를 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PF 관련 NPL 매각은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라며 “제값을 받지 못하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부실 사업장이라도 부동산 PF 사업자가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한다고 할 때 대주단이 나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한다”라며 “부동산 PF 사업장을 정리, 경매를 추진하더라도 사업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 기간만 수년이 소요돼 오히려 부실 사업장이라도 시장이 되살아날 때까지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곳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PF 관련 NPL을 매입하는 운용사는 저축은행권이 제시하는 매각가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동산 PF 재구조화 관련 펀드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경우 가격 등의 문제로 팔려는 의지가 적은데 펀드가 매입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연체율 등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부실을 털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만큼 좀 더 지나면 (부실 사업장의)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PF 정상화 펀드의 실적도 지지부진하다. 저축은행이 자체적으로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 ‘PF 부실채권 정리펀드’는 지난 15일 처음으로 약 90억원 규모의 부실 PF 사업장 1곳을 매입했다. 캠코 등 다른 NPL 업체도 저축은행 부실 사업장에 대한 매입은 더딘 상황이다.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 정리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존 부동산 PF 시장의 위험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기연장 중심으로 금융지원만 이뤄지는 것은 오히려 부실 위험 부담만 키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 분양을 통해 부동산 PF 사업에 다시 자금이 들어오는 선순환 구조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여 한꺼번에 부동산 PF 부실이 터져버릴 수 있다는 점도 금융 당국이 부실 사업장의 정리를 요청하는 이유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내년이나 이후에 한꺼번에 부실 사업장에 대한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 제값은커녕 오히려 매각이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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