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봐도 이해되지 않는 파월의 피벗···역대급 실수 반복일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한은 예측 못하고 글로벌 IB 예상 밖
IMF·BIS 제시한 물가 대응법서 벗어나
美 근원물가 4.0% 등 피벗하기 일러
ECB 인하 선 긋고 연준 내부서도 수습
전쟁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 또 바꿀까
12월 13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시장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5.25~5.50%로 만장일치 동결했다. 관심을 모았던 점도표(dot plot)는 중간값 기준으로 2024년 말 4.6%로 하락한 후 2025년 말 3.6%, 2026년 말 2.9% 수준이 될 것으로 나왔다. 2024년 말 5.1%를 찍어 충격을 줬던 때와 3개월 전과 비교하면 시장이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어도 완화적인 변화였다. 내년 중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후 이어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간담회였다. ‘금리 인하 시기를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파월 의장은 “너무 오래 기다릴 경우의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고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며 “이제는 물가안정 목표만이 아니라 양대 목표 모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대해서는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하 시점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라고 답변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 발언은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의 예상보다 더 완화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변화였다. 그는 불과 열흘 전인 12월 1일 미국 스펠만 대학 연설에서 “충분히 제약적인 정책 기조에 도달했는지 확신을 갖고 결론을 내리거나 언제 정책금리가 인하될지 짐작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통상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는 중앙은행 특성과는 전혀 다른 초단기 피벗(pivot·전환)이었다.
마침 FOMC 결과 당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낸 한국은행으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한은은 보고서 참고 자료에서 미국 연준이 오랜 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고 짚었다. 시장에선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으나 높은 수준의 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이로 인해서 시장 기대가 조정될 때마다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월 의장의 피벗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이번 파월 의장의 발언이 예상 밖이었던 것은 그동안 봤던 중앙은행 문법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 수장들은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왔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면 논의조차 없다며 이를 일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추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래야 기대인플레이션을 관리하면서 물가를 목표 수준까지 확실하게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완화적 기대를 잡지 못하면 물가도 잡을 수 없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파월 의장도 “필요하면 추가 긴축할 준비가 됐다”고 했으나 인하 논의가 시작됐다고 시인한 마당에 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에서도 성급한 피벗을 경계했다. 마침 지난달 방한한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BIS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은 시차가 있기 때문에 물가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차가 있어 중앙은행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며 “(금리 인하는) 언젠가 하겠지만 당장 내년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라고 잘라 말했다.
IMF는 올해 9월 발표한 ‘백 번의 인플레이션 충격:7가지 정형화된 사실(One Hundred Inflation Shocks: Seven Stylized Facts)’에서 1970년 이후 주요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가운데 5년 이내 해결된 사례는 10건 중 6건에 그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에 실패한 대부분은 ‘성급한 승리 선언(premature celebration)’ 때문이라는 사실도 찾아냈다. 이를 보면 중앙은행들은 물가 수준이 목표 수준에 수렴하더라도 금리 인하에 신중할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미국 내 경제 상황을 살펴봐도 피벗 타이밍이 맞는지 의문이다. 파월 의장이 “물가 안정 목표만 아니라 양대 목표(물가안정과 최대고용) 모두 중요해졌다”라고 했으나 미국 내 고용시장은 전혀 어려움이 없다. 물론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월 3.1%로 10월(3.2%)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물가 목표 수준인 2.0%보다는 아직 1%포인트나 높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4.0%로 전월과 동일한 수준을 기록했다. 근원물가가 4%대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 물가와 함께 경기를 살펴보겠다는 건 물가를 2.0%까지 내릴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까지 해석된다.
오죽하면 11월 물가 발표 직후 블룸버그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물가보고서는 연준이 승리 선언(긴축 종료)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며 “내년 조기 인하를 기대하는 시장의 공격적 프라이싱이 적절한지 의구심이 든다”고 할 정도였다.
파월 의장의 이번 피벗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건 FOMC 직후 있었던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의 정책 결정 결과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14일(현지시간) ECB는 주요 정책금리를 동결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으나 재차 높아질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금리 인하를 논의하지 않았으며 임금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영란은행도 정책금리를 5.25%로 동결하면서도 제약적 수준의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가 이어진다면 추가 인상도 가능하다고 했다.
연준 인사들이 파월 의장의 말을 주워 담으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연준 관심은 여전히 통화정책이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절한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며 “지금은 정책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 않으며 금리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금리 인하가 임박했다고 보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계속 둔화할 것이란 충분한 확신을 얻는 데 수개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파월 의장은 시장의 기대를 제어하기는커녕 기름을 부었을까. 먼저 실제로 이번 회의에서 일부 위원들이 금리 인하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언급이었을 뿐 주요 논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또 내년 중 세 차례 금리를 내리더라도 경기를 부양할 수준의 완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긴축 자체는 이어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 역시도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한 현 시기에 알맞는 발언은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확실한 정보가 있거나 국제유가가 급등해도 문제없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물론 파월 의장이 발언을 자체를 뒤엎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준 자체가 스탠스를 바꾸는 것에 보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도 물가 상승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하루아침에 돌변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기 시작하면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를 네 번 연속으로 단행한 것만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은행이나 ECB 등이 중앙은행 신뢰성을 매우 중시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고려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정도로 경제적 여건만 봤을 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결국 파월 의장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로 꼽히는 ‘평균물가목표제(AIT)’급 실수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있다. 미국 연준은 수십 년간 돈을 아무리 풀어도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자 2020년 8월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일정 기간 2%를 넘더라도 전후 기간까지 평균적으로 고려해서 대응하겠다는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다. 물가가 2%를 넘더라도 상당 기간 완화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나 물가가 급등하면서 미국 연준은 결국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파월 의장의 피벗으로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은행도 언제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아직 금리 인하를 논의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을 비춰봤을 때 지난달 금통위 때와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실제로 연준이 금리를 먼저 내린다면 한국은행으로서는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축소되면서 정책적 부담을 덜 순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타날 금융시장 변동성이 문제다. 시장에선 연준 금리 인하 가능성에 환호가 나오면서 국채금리 하락, 주가 상승, 달러화 약세 등이 연쇄적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국고채 3년물(3.26%)과 10년물(3.33%)이 각각 0.21%포인트, 0.20%포인트씩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1295.4원으로 하루에만 24.5원이 급락했다.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나타난 것이다. 한은은 당분간 이런 변동성이 반복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파월 의장의 피벗은 너무 성급해 보인다”며 “솔직히 연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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