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의 미로’서 길 잃었다면…새 번역본으로 탈출해 볼까
20세기 최고 소설로 극찬받지만
현실·공상 오가는 난해함 ‘악명’
출간 101년 지나도 완독 드물어
번역 이종일 교수 “읽다가 낙담?
의식의 흐름, 일상도 마찬가지”
제목과 작가는 알지만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책. “독자들의 완독을 기원한다”는 출판사의 격려가 왜인지 서늘하게 들리기까지 한 명작. 이번에는 ‘더블린의 미로’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책을 펼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어쩌면 읽기 시작한 것 자체에 의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출간된 지 10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영문학자들이 이 책과 씨름하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문학사상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①의 장편 ‘율리시스’(②1·2권)를 문학동네가 새롭게 펴냈다. 두 권 합쳐 1420쪽. 문학동네는 “방대한 주석에 짓눌려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꼭 필요한 것만을 엄선했다”고 전했다.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표현이기도 한 ‘율리시스’는 ‘오디세이아’와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다. 율리시스는 더블린에 사는 ‘리어폴드 블룸’이라는 남자가 1904년 6월 16일 하루 시내를 쏘다니는 이야기다.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와는 달리 블룸은 볼품없는 소시민이라는 점. 또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오랜 세월 변치 않는 믿음의 아이콘이라면 블룸의 아내 ‘몰리’는 ‘보일런’이라는 남성과 불륜을 저지른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누며 하루를 시작한 블룸이 집으로 돌아와 몰리의 엉덩이에 키스하며 끝나는 이야기.’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이 문장만 보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현실과 공상을 어지럽게 오가는 구성은 독자를 좌절케 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보듯 배설, 불륜과 관련한 적나라한 문장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첫 출간 당시 한 신문이 “조이스의 작품은 변소 문학을 전공한 도착증 환자가 쓴 것 같다”는 서평을 싣기도 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10년간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물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작품은 재평가됐고, 세계적인 출판사 미국 랜덤하우스는 율리시스를 ‘20세기 영어로 쓰인 걸작 중 최고’라고 칭송했다.
조이스조차도 생전 “끔찍한 괴물”이라고 불렀던 ‘율리시스’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68년이다. 반세기가 넘어 이 책을 다시 번역한 이종일 세종대 영문과 교수에게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작품이 읽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면 안 읽힌다고 낙담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실제 사건과 사건 사이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지 않나. 의식의 흐름에 익숙해져야 한다. 작품에서 세계의 모습을 제시하는 조이스는 가식이나 위선을 철저히 배제한다. 분변학적이거나 외설스러운 묘사가 난무하지만, 결국 이것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비상한 실감을 느끼며 소설에 빠지게 된다.”
조이스가 만든 더블린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면 잠시 시로 탈출해도 좋다. 조이스의 시를 엮은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③아티초크)도 최근 번역 출간됐다. 시집에서는 조이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지러운 소설과는 달리 깨끗한 목소리로 정직하게 사랑을 노래하고 있어서다. 시집의 원제는 ‘실내악’으로 조이스는 이 시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길 원했다고 한다. 일부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조이스가 직접 곡을 붙인 16번째 ‘앳된 시절에 이별을 고하다’(Bid adieu to girlish day)는 아일랜드에서 지금도 애송되고 있다.
“안녕, 안녕, 안녕을 고해요 / 앳된 시절에 안녕을 고해요, / 복된 사랑이 그대에게 구애하러 / 그대의 앳된 모습에 구애하러 왔어요.”
오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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