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밀학급에만 심혈… 소규모 학교는 뒷전 [집중취재]

김경희 기자 2023. 12.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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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신·증설 과밀학급 해소방안에 집중
내년도 본예산에 1조4천463억원 편성
소규모 학교 관련은 대청소 지원이 전부
도교육청 “많은 예산 투입되도록 노력”
일러스트=유동수 화백

경기도 소멸 학교 생존기 

경기도교육청이 과대·과밀학급 문제 해소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는 등 해결 방안 모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존폐위기에 놓인 소규모 학교를 위한 관심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17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과대·과밀학급 해소를 포함한 학교 신·증설을 위해 내년도 본예산에 1조4천463억원을 편성했다. 세부적으로는 99개교 신설비 1조3천392억원, 학급 증설비 640억원, 유치원 신설비 431억원 등이다.

폐교 활용이나 관리를 위해 쓰이는 예산도 적지 않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경기학생스포츠센터(용인) 건립 당시에는 총 사업비 269억원 중 도교육청이 78억원을 지원했으며, 내년도에 폐교를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갈 환경 개선비는 12억원 규모다.

그러나 소규모 학교 만을 위해 편성된 별도의 예산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까진 내년에 편성된 150억원 규모의 ‘소규모 학교 대청소 지원’ 예산이 전부다.

모든 학교가 지원받는 표준교육비(교당·급당·학생당 경비) 역시 학생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는 구조다. 표준교육비는 초등학교 기준으로 6학급 이하인 학교에는 2억6천464만원, 60학급 이상에는 4억5천466만6천원이 지원된다. 중학교의 경우 6학급 이하 학교는 2억9천655만4천원, 54학급 이상 학교는 4억9천199만8천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예산을 학급당 경비로 나눌 경우 소규모 학교에 더 많은 예산이 지원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학생이 줄어들어도 학교 시설은 그대로고, 이를 유지·보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여전히 동일하다”면서 “그럼에도 학생이 줄어들면 그 규모에 맞춰 예산만 획일적으로 삭감돼 학교 운영에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도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과밀·과대 학급이 현안으로 떠올랐음에도 그동안 이에 대한 별도의 예산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해 내년도 예산에 크게 반영해 편성한 것”이라며 “소규모 학교 운영에도 관심을 기울여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색 있는 교육으로 폐교 위기 극복

용인 장평초의 아토피 특화 교육 프로그램. 장평초등학교 제공

소규모 학교 지원은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대책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직면했던 폐교 위기를 극복한 학교들을 통해 소규모 학교의 생존 방안을 모색해봤다.

용인 장평초등학교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접근성과 부족한 주변 인프라 등으로 폐교 위기에 내몰린 학교였다. 학생들이 지역을 떠나면서 2020년, 전교생 수가 19명까지 감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79명에 달했지만 부족했던 주변 인프라가 장평초의 발목을 잡았다.

장평초는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고자 학교가 가진 자산인 자연 환경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장평초는 아토피천식 안심학교로 지정, 황토벽 교실과 향나무 복도, 원적외선 황토방 등을 마련하고 친환경 텃밭 가꾸기, 숲길 산책, 히노키탕 목욕 등 아토피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보건교사뿐만 아니라 일반 교사들도 알레르기 관련 교육을 이수해 학생들을 직접 교육하며 2020년 경기혁신교육 학생 건강 증진 분야 우수학교로 교육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장평초의 전교생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30명을 넘겼다.

양주에는 도농복합인 지역 여건을 고려해 특색 있는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상수초등학교가 있다.

남면에 있는 상수초는 인근 양주옥정신도시 등장 이후 소멸 위기를 맞았다. 신도시로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남면의 인구는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상수초는 2015년, 전교생이 47명까지 줄었다.

상수초는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지역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선 상수초는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상생을 위해 신도시 지역과 협력해 공동학구제를 도입했다. 신도시 지역에서 소규모 학교로 전학을 할 때는 주소지 이전 없이 학교장 허락 하에 전입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진입 장벽을 낮춘 뒤에는 교육 과정 특성화에 매진했다. 주변 환경을 활용해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교육을 하고 다양한 마을 교육 자원이 공동체 교육으로 스며들도록 했다. 그 결과 상수초의 학생수가 89명까지 늘며 통폐합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소규모 학교 교사는 “출퇴근 등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아이의 교육 여건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가 있다면, 그 지역에 머무를 수 있는 큰 요인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지역 맞춤형 처방·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경기지역 소규모 학교는 지역별 편차를 더욱 키울 수 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미영 경기도율곡연수원 교육행정연수부 팀장은 도농복합지역인 경기도의 경우 25개 교육지원청의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신도시 개발로 인한 신설학교 수요 증가와 지역 이탈로 인한 원도심의 소규모 학교 증가가 맞물리고 있는 만큼 과대학교와 과소학교를 별개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팀장은 “경기도는 연천, 가평, 포천, 여주, 안성, 이천 등 농촌 지역과 수원, 성남, 부천, 용인 등 원도심이 있는 도시지역, 화성, 구리, 남양주 등 신도시 개발로 유입인구가 많은 지역 등 다양한 상황적 요소를 갖고 있다”면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소규모학교 특성, 교육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학교의 증가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명확한 소규모학교의 기준을 확립하고,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추심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소규모 학교에 별도의 지원이 이뤄지기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로 ‘소규모 학교의 명확한 기준 부재’를 꼽았다.

그는 “소규모 학교는 법률상으로는 학생 수 100명 이하 또는 학급 수 5학급 이하(교감 미배치 근거 기준), 교육부령으로는 총사업비 300억원 미만인 학교(중앙투자심사 면제 기준), 경기도에선 학생 수 60명 이하인 공립학교(작은 학교 지원에 관한 조례) 등 기준이 달라 정의하기도 어렵고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면서 “소규모 학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을 위해선 소규모 학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명확한 정의를 세운 뒤 도교육청 내 소규모 학교 정책 수립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담부서를 설치, 중장기 교육제도 및 소규모 학교의 여건 개선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한수진 기자 hansujin011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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