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보내!", "원한다면 보내!"…문화재 수출논쟁[이기환의 Hi-story]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성 4인조 그룹인 2AM이 2010년 발표했으니 벌써 13년 된 곡입니다. 뜬금없이 웬 노래로 시작하느냐고 할테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유산의 해외 전시 및 수출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죽어도 못보낼 문화재’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기념하는 ‘한·일 문화재상호 국보전’이 개최될 예정이었는데요.
그때 문화재위원회가 출품 예정이었던 ‘백제 금동대향로’(국보)와 ‘영조 어진’(보물)의 반출을 불허했습니다. “백제 예술의 정수인 금동대향로를 내보낼 필요가 없고, 일왕의 유물이 해외에 나가지 않는데 굳이 영조의 초상화가 해외에, 그것도 일본에 출품될 이유도 없다”고 만장일치로 불허방침을 세운 겁니다.
또 2013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개최하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국보(옛 83호) 반가사유상’이 출품될 예정이었는데요. 당시 변영섭 문화재청장까지 나서 “전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물이 해외전시를 위해 수시로 짐을 풀고 싸는 일을 반복해서 되냐”면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등을 또 내보낼 수 없다”고 불허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매트로폴리탄 미술관 측이 문제를 제기하고 문화관광부까지 개입한 끝에 반가사유상의 반출허가가 이뤄졌습니다. 그 해 말 변 청장의 경질 사유에 ‘반가사유상 등의 반출 반대’가 들어있었습니다.
■국보·보물급 345점이 대거 기내식을 먹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문화유산 반출에 바들바들 떨었냐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문화재는 6·25전쟁 직후 여러차례 대규모 해외특별전에 출품되었습니다.
1957년 12~1959년 6월까지 1년 반 동안 금관총 금관 등 197점이 미국 8개 도시를 순회함으로써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이어 1960~62년 유럽전에 160여점을 선보였고요. 1976년에는 6개월동안 일본의 3개 도시에 348점을 내보냈습니다.
급기야 1979년 5월부터 2년 동안 미국 내 7개 도시를 도는 ‘한국미술5000년전’이 열립니다. 이 순회전에 국보·보물급 유물 264종 354점이 총출동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신석기)부터 팔주령(청동기), 황남대총 및 천마총 금관, 반가사유상, 백제문양전 등(삼국), 청자(고려), 백자 및 풍속도(조선), 산수도(이상범·현대 회화)까지….
■군사정권의 홍보차원…
이 특별전이 끝나자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옵니다. 한마디로 무모한 전시였다는 겁니다.
“군사 정권의 홍보 차원에서 기획된 특별전에 국보급 유물을 354점이나 대거 내보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당시 박물관 학예사들의 수근거림이었다”(당시 이강승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전 충남대교수)는 증언이 있습니다.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기고문(1982년 6월4일 동아일보)을 볼까요.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대규모 해외 전시를 그렇게 자주, 또 그토록 오랫동안 개최한 사례는 없다. 문화재의 가치와 해외나들이에 따른 위험부담을 감안하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우린 늘 문화재를 일방적으로 내보내기만 했을 뿐….”
‘중국의 속국’, 혹은 ‘일본의 식민지’ 취급을 받다가 해방되었으니, 어떻게든 한국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릴 필요가 있었죠. 그러나 해외전시, 그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물의 포장, 이동, 전시, 반환 과정에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비근한 예로 1979년 샌프란시스코 전시 때 소규모 지진이 일어났다는데요. 박물관 판매대에 놓여있던 중국 도자기 상품이 넘어져 깨졌답니다. 등골이 오싹해진 당시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 실장이 도자기들을 낚싯줄로 묶어 고정시켰다는데요.
샌프란시스코가 어떤 곳입니까. 1906년 4월18일 7.9의 강진으로 도시의 80%가 파괴되고 3000여명이 희생된 곳입니다.
어쨌든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 “해외전시가 잦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등을 또 내보낼 수 없다”고 불허결정을 내렸습니다. “해외전시가 잦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등을 또 내보낼 수 없다”고 불허결정을 내렸습니다.
어쨌든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 정리된 것이 있는데요.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 어진 등은 일시적인 해외전시라도 ‘죽어도 못보낼 문화유산’ 목록에 들었다는 겁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보라는 겁니다. ‘모나리자’는 1962~63년 미국, 1974년 일본·구 소련 순회 전시 등 몇차례 ‘기내식을 먹은 적’은 있는데요. 그러나 1974년 일본 도쿄 전시 때 한 관람객의 ‘붉은 페인트 테러 사건’이 발생했죠. 천만다행으로 페인트는 방탄유리상자에 뿌려졌는데요. 이후 단 한번도 프랑스 밖을 나선적이 없습니다. 모나리자를 보려고 해마다 800만명이 루브르를 방문하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 전시에 출품할 필요가 없었죠.
■철벽을 뚫고 수출된 문화재
왜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냐면 요즘 문화재 반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전시회를 위한 일시 반출도 아니고 아예 해외수출 이야기가 본격 논의되고 있더군요.
아니, 그동안 국내 문화재의 해외전시에도 ‘가니 못가니’ 하는 논쟁이 벌어졌던 판인데, ‘해외 수출’이라니요.
한번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보·보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는 들춰볼 것도 없습니다. 해외전시 등의 이유가 아니면 원천적으로 이른바 ‘기내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죠.(문화재보호법 39조)
그러니 국보·보물 같은 문화유산의 해외수출은 ‘죽어도 못 보내’의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지정문화재가 아닌 비지정 일반동산문화재의 경우 어떨까요. ‘죽어도’는 아니더라도 역시 ‘못보내’는 것은 같습니다. 해외 박물관 등에 전시를 위해 반출하는 경우는 ‘10년 이내의 반입’이라는 조건을 붙여 허가해줍니다.
또 비지정 문화재이니만큼 원칙적으로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수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엄격한 조건이 붙습니다.
‘외국 정부가 인증하는 박물관(혹은 문화유산 단체)이 전시목적으로 구입 혹은 기증 받을 경우’(문화재보호법 60조2항)에만 가능합니다. 실제로 이 규정에 따라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수출된 문화유산 6건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전시용으로 구입한 ‘뒤주장 및 떡살’(36점·2011)이 있고요. 호주 빅토리아 미술관도 2019~2022년 사이 책가도(1점)·연화도(1점)·백자 달항아리(1점)·백나전함(1점)·나전함(1점) 등 5건을 전시용으로 구입해갔습니다.
■50년 이상이라는 기준
최근 문제가 제기된 항목이 있습니다. 일반동산문화재(비지정)의 기준과 관련된 건데요.
제작한지 50년 이상 되고, 상태가 양호하고 예술적·학술적·역사적 가치 등은 기본 공통 사항이고요.
여기에 희소성·시대성·특이성·명확성 중 하나의 기준을 충족하면 일반동산문화재로 인정받는다는 겁니다.
특히 ‘50년 이상’의 문화재라는 제작연한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왜냐면 이 규정 때문에 이중섭(1916~1956)·박서보(1931∼2023)·유영국(1916∼2002)·김환기(1913∼1974)·이인성(1912∼1950)·곽인식(1919~1988) 같은 유명 화가의 50년 이상 된 작품이 수출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겁니다.
무엇보다 이 ‘50년 이상’ 규정 때문에 생존 작가들의 작품도 해외로 팔려갈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답니다.
예컨대 최근 타계한 박서보 화백의 작품 가운데서도 1973년을 기준으로 ‘50년 이상 된 작품’은 ‘수출 불가’이고, ‘그 이후 작품’은 ‘수출 가능’으로 나누어 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불가’ 작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법 규정이 이른바 K미술의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일리있는 지적 같습니다.
■문화재의 기준은 50년
우선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50년 이상’ 규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예전에 문화재(유산)의 기준을 논할 때 흔히 근대적 문물제도를 도입한 갑오개혁(1894)을 거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0년대 시점이라면 100년을 기준으로 그 전 시대의 유구와 유물을 문화재(유산)으로 정의했던 거죠.
요즘은 어떨까요.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한 ‘일반동산문화재의 연한=50년 이상’으로 정했고요. ‘국가등록문화재’의 기준도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50년 이상’으로 해놨거든요. 그러니까 요즘의 문화재 기준은 ‘50년 전인 1970년대초’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유물이나 유구라면 문화재(유산)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문화재의 연한과 관련된 통일된 규정은 없습니다.
■1억원 이하의 물품은 수출가능
그렇다면 외국의 문화재 수출은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까요. 예컨대 영국의 경우 ‘수출통제법률’을 제정했습니다.
문화재를 사고파는 행위를 규제한 것은 아니고요. 다만 수출통제와 관련된 법률인데요.
그렇지만 이 법률은 ‘50년 이상’ 되었어도 특정한 조건을 갖추고, 가격도 6만5000파운드(1억원 가량) 이하의 물품이라면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50년 이상된 고고학 유물과 문서, 필사본, 18만 파운드(3억원) 이상의 유화나 템페라화(달걀 노른자와 아교를 섞은 불투명 안료로 그린 그림) 등은 ‘중요 문화재’의 취급을 받아 개별심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요. 이 심사위는 해당 문화유산의 중요도를 감안해서 수출통제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영국 내 다른 기관(미술관 혹은 박물관)에게 해당 물건을 재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합니다.
수출 통제로 불이익을 당할 매입자에게 적당한 가격을 지불한다는 겁니다.
■디알로 초상화의 경우
단적인 예가 카타르 박물관청이 크리스티 경매(2009)에서 구입한 ‘아유바 술레이만 디알로의 초상화’입니다.(김병연의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2023, 역사비평사)
세네갈 출신은 디알로(1701~1773)는 노예상에게 붙잡혀 미국 담배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건너왔다가 훗날 고향(세네갈)로 금의환향한 인물인데요. 1733년 영국화가 윌리엄 호어(1707~1792)가 그린 디알로의 초상화는 흑인 노예의 얼굴을 괴기스럽게 그린 당대(18세기)의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답니다. 생동감 넘치고, 사실적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가치를 알아차린 영국 측이 뒤늦게 제동을 걸었는데요. 수출심사위원회를 동원해서 수출을 막은 겁니다.
심사위원회는 대신 영국내 국립초상화박물관에게 작품의 재구입을 종용했는데요. 결국 작품에 관심을 보인 박물관측이 40만파운드를 마련해서 초상화의 주인이 된 카타르 박물청에 “그림을 우리가 되사겠다”는 의사를 표명합니다.
그러나 카타르측은 그 제안을 거부하죠. 결국 디알로 초상화는 카타르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요. 다만 영국·카타르 양국이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했는데요. 영국(국립초상화박물관)에 작품을 두되 카타르에서 파견된 인턴 직원을 채용했고요. 2011년에는 전시회까지 열었는데요. 물론 이 전시 안내문에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재산’이라는 표식을 붙였답니다.
■비교적 수출이 자유로운 외국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법령은 매우 특이합니다. 2002년 제정된 ‘박물관법’에 따라 전국의 국·공·사립박물관 1220여개 박물관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는데요. 그것이 ‘프랑스 박물관’이라는 인증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인증을 받은 박물관의 소장품이 모두 프랑스 문화유산법에 따라 ‘국가 보물’의 범주 속에 포함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는데요. 이 프랑스박물관 소장품이 아닌, 그러니까 비지정문화재의 경우에는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출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은 ‘중요문화재(국보·보물)은 수출할 수 없다’(44조)고 규정했습니다. 한마디로 중요문화재 외에는 원칙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얘기죠.
한국과 사정이 비슷한(약탈 당한 문화재가 많은) 이탈리아를 볼까요. 이탈리아는 2004년까지는 50년이 넘은 사망 작가의 작품을 수출허가대상으로 규제하는 문화유산법을 적용해왔는데요. 그러나 최근들어 한국내에서와 비슷한 비판여론이 일어 그 범위를 ‘70년 넘은 사망 작가’로 완화했습니다. 다만 50~70년 된 사망작가의 ‘탁월한 작품’에 한해서는 여전히 수출허가 대상으로 삼았구요. 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의 경우를 쭉 훑어보면 한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문화재 수출을 둘러싼 두가지 시선’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수출 규제가 ‘최강’이라는 겁니다.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말할 것도 없고요.
비지정 일반동산문화재의 수출도 법으로 철저하게 규제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K미술의 한계’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이를 의식한 문화재청이 나섰는데요.
즉 생존 작가의 작품은 50년이 지나도 ‘문화재’의 범주에서 제외시켜 자유로운 국외반출이 가능하도록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의 일부 개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개정시행령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내년(2024) 1월1일부터 적용될 듯합니다.
이를 두고 ‘찔끔 개정’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미술계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아예 이웃나라 일본처럼 자유롭게 비지정문화재의 해외 거래 및 반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외국시장에서 한국의 예술품이 가치를 인정받고, 또 그렇게 해야 한국 미술의 세계화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그러나 너무 급진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약탈 및 수탈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는 한국 역사에서 자유로운 문화유산의 국외반출은 시기상조라는 겁니다. 게다가 장물(도굴 및 도난품)이어서 섣불리 시장에 내놓지 못한 떳떳치 못한 유물도 그 틈에 국외반출될 우려가 있다는 거죠. 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이트를 보라는 겁니다.
해외에 흩어져있는 문화유산이 22만 9655점(27개국)으로 집계되고 있는 판이 아니냐는 겁니다. 해외에 흩어져있는 문화재를 한 점이라도 환수해야 할 판에 수출 규제를 풀면 어찌 되겠느냐는 겁니다. 문화유산의 순유출이 불보듯 뻔하다는 겁니다.
솔직히 어떤 주장에 더 일리가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다만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지 61년이나 흘렀는데요. 세상은 확확 변해왔는데, 문화재보호법의 이 조항은 환갑을 훌쩍 넘기고서야 문제가 제기되었네요.
뒤늦었지만 시대상황에 맞게 제대로 법을 다듬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죽어도 못보내’는 문화유산은 분명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제 세월이 지났으니 ‘필요하다면, 원한다면 보내줄 수도 있는 유산’도 허용해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이 기사를 위해 문화재청 김은영 유형문화재과 연구관, 김병연 국제협력과 사무관, 김범준 유형문화재과 주무관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히스토리텔러 기자 l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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