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배 한국일보 명인전] 두 번째 우승 달성한 신진서 “명인은 늘 탐나는 타이틀… 다시 가져와 기쁘다”
"타이틀전이 주는 무게감... 우승 더욱 어려워"
최대 고비는 신예 박지현과의 패자조 대국
7관왕 등극에도 "최고의 해라 말할 수는 없어"
내년 농심배 상대 기사들에 "위기감 느껴야 할 것"
“명인은 늘 탐나는 타이틀이다. 되찾아 와 무척 기쁘다.”
신진서 9단은 16일 경기 성남 K바둑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46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결승 2국에서 승리한 뒤 함축적인 우승소감을 전했다. 타이틀전이 가진 무게감과 수성의 어려움을 모두 담아낸 소감이었다. 그는 2021년 제44기 대회에서 생애 첫 명인에 등극했지만, 지난 대회 결승에서는 신민준 9단에게 패해 타이틀을 뺏긴 바 있다. 신진서는 “명인전은 타이틀전인 만큼 결승전에서 박정환·변상일·신민준 9단 등 (명인 타이틀을 탐내는) 초일류 기사에게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두 번이나 정상에 서게 돼 기쁨이 배가 됐다”고 밝혔다.
타이틀을 노리는 건 초일류기사들만이 아니다. 생애 첫 명인에 도전하는 신예기사들의 약진도 본선 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신진서 역시 이번 대회 본선 8강에서 박지현 4단에게 일격을 당했다. 공식전에서 연하 기사에게 당한 첫 패배였다. 그는 “박지현뿐만 아니라 김은지 8단과도 대국을 했는데,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그가 이번 대회 최대 고비로 꼽은 순간도 박지현과의 대국이었다. 단, 승자조에서 진 대국이 아닌 패자조에서 승리를 거뒀던 대국이 더욱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상대가 신예이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이겨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며 “예를 들어 유리한 상황이 오면 쉽게 정리해야 하는데, 더 완벽한 수를 찾으려다가 스텝이 꼬였다. 만약 박지현이 좀 더 경험이 많았다면 패자조 대국에서도 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예들과의 대결을 포함한 패자조 여정을 “쉬운 판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한 신진서지만, 오히려 랭킹 3위인 변상일과의 결승대국에서는 두 판 모두 비교적 손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1국은 초반에 승부가 갈렸고, 2국 역시 중반 전투 이후 한 번도 승기를 내주지 않았다. ‘천적’이라는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변상일을 상대로 12연승을 달성했고 공식전적도 34승 7패로 벌렸다.
이에 대해 신진서는 “한쪽이 계속 이기기 시작하면 당연히 패자의 부담이 커진다”며 “내가 예전에 박정환·커제 9단에게 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일류 기사 간의 대국에서는) 선택의 순간에 두는 한 수가 승부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변 9단이 (심리적 압박 탓에) 완벽한 선택을 하는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장기 집권’ 중인 신진서에게도 심리적 압박을 주는 기사가 있는지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상대는 중국의 리쉬안하오 9단이었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둘은 공식전 기준 2승 2패(비공식전 포함 2승 3패)로 팽팽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신진서가 1승 2패로 밀리고 있다. 신진서는 “구쯔하오·셰얼하오 9단에게 질 때는 내게 문제가 있었다는 느낌이었는데, 리쉬안하오와의 승부는 5대 5, 또는 내가 약간 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음 대국에서 최선을 다해도 질 수 있겠다’ 싶은 기사는 리쉬안하오 딱 한 명뿐”이라고 강조했다.
명인전 우승으로 신진서는 올해 7관왕에 올랐다. 2월 열린 KBS바둑왕전을 시작으로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4월),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6월), YK건기배(7월), 응씨배(8월), 용성전(9월), 명인전(12월)을 차례로 제패했다. 단체전에서도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2월), 하나은행 MZ바둑슈퍼매치(3월), KB국민은행 바둑리그(6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10월)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바둑 최초로 연간 100승을 돌파하며 바둑대상 특별기록상 수상자로 뽑혔고, 2020년 본인이 세운 연간 최고 승률(88.37%)도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절대 1강’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한 해였다. 그는 “올해 초만 해도 세계대회에서 다 이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독이 됐던 것 같다”며 “(6월) 란커배 결승에서 진 후로 꼬이기 시작했다”고 올해를 돌아봤다. 이어 “이후에 최선을 다해 만회하긴 했는데, 란커배 패배가 워낙 아팠다. 2023년을 최고의 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년을 최고의 해로 만들기 위해서는 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농심배에서의 기적이 필요하다. 현재 농심배에는 한국대표 5명 중 신진서 한 명만이 남아 있다. 그가 일본(1명)과 중국 기사(4명)에게 전승을 거둬야만 ‘바둑 삼국지’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 확률상 쉽지 않지만, 바둑팬들은 그에게 2005년 이창호 9단이 이룬 ‘상하이 대첩’을 기대하고 있다.
신진서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고 웃은 뒤 “확률상으로는 32강전에서 우승하는 것과 같긴 한데, 아무래도 초일류 기사들만을 상대해야 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만 내가 남아 있으니 일본과 중국 기사들 한 명 한 명이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며 세계 1인자의 위엄을 내비쳤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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