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미지 답답했다"는 유연석, 감탄 부른 섬뜩 '사이코패스' 연기 명장면 셋
"강한 외모 아냐…내 힘,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
선함과 악함 자유로이 오가는 배우로 우뚝
"왜 사이코패스로 잘생긴 애들만 캐스팅하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의 배우 이성민은 연쇄살인마 금혁수를 연기한 유연석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깔끔한 외모의 유연석과 달리 원작 웹툰 속 금혁수는 개구리를 닮은 듯 기괴하게 생겼다. 더구나 유연석은 최근 세련되고 도회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안정원과 JTBC '사랑의 이해'의 하상수로 보여준 멜로 연기가 대표적이다.
물론 '유연석' 이름 석 자를 대중에 각인시킨 건 악역(영화 '건축학개론'의 진욱, '늑대소년'의 지태 등)이었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금혁수에 이르러 그의 악역 연기는 진일보했다. '운수 오진 날'에서 그가 돋보이는 세 장면과 그 비하인드를 짚어 봤다.
#1. 택시 기사 오택(이성민)에게 털어놓는 '살인 무용담'
"저라면 아까 (기사님에게) 욕한 인간, 죽였을 거예요. 사람 죽이는 거 어렵지 않거든요. 오늘도 죽였는데?"
비좁은 택시 안, 혁수는 오택에게 '살인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혁수의 본성을 오택이 알아차리는 장면으로 유연석은 대사와 표정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연석은 "금혁수를 어린아이로 생각하고 연기했다"며 "살인 무용담은 학교에서 재밌던 일을 어머니에게 말하듯 연기했다"고 말했다.
"정말 사람을 죽여 봤어요?" 오택이 두려움에 떨며 묻자 혁수는 천진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요? 농담인데. 장난친 거예요." 이때 유연석의 '선한 얼굴'이 빛을 발한다. 왠지, 정말 실없는 농담일 것 같다는 묘한 신뢰(혹은 기대감)를 준다. 유연석도 "내 선한 이미지를 잘 활용하면 캐릭터의 낙차가 크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살인자의 표정 대신 원래 유연석의 이미지처럼 다정하게 오택에게 다가갔다"고 설명했다.
#2. 살인 후 베어 문 매운 핫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시비가 붙은 한 남자를 무참히 살해한 혁수. 오택의 택시로 돌아와 매운 핫소스가 뿌려진 핫바를 건넨다. "아이고, 엄청 맵네요." 오택의 말에 혁수는 심드렁하다. "이게요?"
매운맛은 통각이다. 뇌 손상으로 통증을 못 느끼는 혁수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살인을 하고도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혁수가 기괴하게 느껴진다. '매운 핫바' 아이디어는 유연석이 냈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는 그는 매운 음식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무통증 환자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유연석은 "무통증은 기존 사이코패스 캐릭터와 다른 혁수만의 특이점"이라며 "무통증을 시청자에게 공감시킬 수 있을 만한 게 뭘까 찾다 디테일한 설정을 추가했다"고 했다.
#3.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장례식에 찾아간 혁수
혁수는 자신이 죽인 남윤호(이강지)의 장례식을 찾아가 조문한다. 윤호의 엄마 순규(이정은)를 위로하다가 미소를 짓는다.
혁수는 이 순간을 떠올리며 오택에게 "그때 느낀 건 이전과는 다른 카타르시스였다"고 말한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다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연출을 맡은 필감성 감독은 이 장면을 찍다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읊조렸다. "이런 나쁜 놈." 이정은은 "얄미워 (총으로) 빵 쏴버리고 싶더라"는 후일담을 남겼다.
유연석은 그렇게 악랄한 금혁수를 연기하면서 "촬영할 때 나와 캐릭터를 분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만약 나라면'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힘들 것 같았다"고도 했다. 금혁수가 강아지를 살해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장면에서 유연석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으니 편집을 잘 해달라"고 감독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유기견을 입양해 키우는 연예계 잘 알려진 반려인이다.
데뷔 20년 차, 유연석이 금혁수 선택한 이유
유연석은 '금혁수'로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배우임을 또다시 입증했다. 올해로 데뷔 20년 차. 스스로를 "강한 외모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유연석은 "데뷔 초부터 외모에서 오는 이미지의 강렬함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로 필모를 쌓는 게 나라는 배우가 버틸 수 있는 힘일 거라 믿었다"고 털어놓았다. "선한 이미지로 굳혀지는 게 답답했다"던 유연석에게 그래서 금혁수는 주저할 이유가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어떤 이미지를 씌워도 어색하지 않은, 호기심이 가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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