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축구 선수, NFL ‘최고 키커’로 부활

장민석 기자 2023. 12. 1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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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스포츠 인사이드] 카우보이스 선두 견인차 오브리

2019년 NFL(미 프로풋볼) 경기를 TV로 보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키커가 필드골을 실축하자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당신이 더 잘할 수 있겠는데?”라고 한 마디 툭 던졌다.

그 말이 자극이 되었을까. 축구 선수 출신의 이 엔지니어는 그 후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킥 훈련을 병행한 끝에 지난해 NFL 하부 리그인 USFL 버밍엄 스탤리언스에 입단했다. 엔지니어 연봉보다 적은 돈이었지만 스포츠 선수로 도전을 이어가고 싶어서였다.

인생역전 - 댈러스 카우보이스 키커 브랜든 오브리가 11일(한국 시각) NFL 필라델피아 이글스전에서 필드골을 차고 있다. 오브리는 이날 필드골 4개를 모두 성공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왼쪽 사진은 오브리가 베슬리햄 스틸에서 축구 선수로 뛸 당시의 모습. /USA투데이 연합뉴스, 오브리 인스타그램

축구 선수 출신답게 강한 발목 힘을 자랑했던 그는 미시시피 주립대 코치와 함께 훈련에 매달린 결과 타원형의 미식축구 공도 정확하고 멀리 보낼 수 있게 됐다. 그가 스탤리언스 키커로 2년 연속 우승에 힘을 보태자 지난 7월 댈러스 카우보이스가 계약을 제안했다. 그렇게 브랜든 오브리(28)는 키커로 꿈의 무대 NFL에 입성했다.

오브리는 데뷔 첫해 놀라운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카우보이스는 지난 12일 NFC(내셔널 콘퍼런스) 동부 지구 선두를 다투는 지난 시즌 수퍼볼 준우승팀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33대13으로 제압했다. 5연승을 달린 카우보이스는 이글스와 승률이 같아졌지만, 소속 지구 팀과 전적이 앞서며 1위로 올라섰다.

이날 오브리는 두 차례 장거리 킥으로 NFL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7-0으로 앞선 1쿼터 막판 60야드 필드골(3점)에 성공한 데 이어 24-13으로 리드하던 3쿼터엔 59야드 필드골을 넣었다. 그는 한 경기 59야드 이상 필드골에 두 차례 성공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미식축구에선 보통 세 차례 공격 기회에서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고, 킥 지점에서 골 포스트까지 55야드 이하로 남아 있을 경우 마지막 네 번째 공격 때 3점짜리 필드골을 시도한다. 필드골 거리가 55야드가 넘어가면 성공률은 50%대로 뚝 떨어진다.

그런데 오브리는 올 시즌 55야드 이상 필드골에 4차례 모두 성공하는 등 필드골을 31번 차서 100% 적중하는 신기(神技)를 보여주고 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키커 브랜든 오브리. / USA투데이 연합뉴스

오브리는 원래 축구(soccer) 수비수 출신이다. 미국 노터데임 대학에 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한 오브리는 4학년 때 전미 서드(third) 팀에 선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7년 MLS(미 프로축구)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1번째로 토론토FC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2018년 MLS 2부 리그 격인 USL 베슬리햄 스틸로 밀려났고, 얼마 안 가 선수 생활을 접었다. 결국 MLS 1군 무대엔 서보지도 못하고 축구화를 벗은 것이다.

그는 대학 전공을 살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직했지만,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미식축구 키커가 됐다.

지난 시즌 주전 키커 브렛 마허(34)가 결정적 실축을 반복하면서 속을 썩였던 카우보이스는 대학 풋볼 경험도 없는 축구 선수 출신의 이 늦깎이 신인을 과감하게 중용했다. 그리고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리그 최저 연봉 수준인 75만달러(약 9억7800만원)를 받고 있지만 오브리는 “3년 전 홀로 킥 훈련을 하면서 상상했던 장면이 현실이 되고 있다”며 “킥 하나하나에 모든 걸 건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뇌 수술을 받고 회복한 아내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각오도 다진다. 노터데임 동문으로 라크로스 선수 출신인 아내는 오브리의 꿈을 늘 지지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NFL 10월의 스페셜팀 선수로 뽑힌 오브리. / 인스타그램

오브리가 뛰는 댈러스 카우보이스는 지난 9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명문 구단이다. 시장 가치가 90억 달러(약 11조6500억원)로, 2위인 MLB(미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71억 달러)를 한참 앞선다.

카우보이스는 수퍼볼 5회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의 팀(America’s Team)’이란 별칭이 붙을 만큼 엄청난 위상과 인기를 자랑하지만 1996년 이후 27년간 수퍼볼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10승 4패로 순항 중이다.

리그 터치다운 패스 1위(28개)를 달리는 쿼터백 닥 프레스콧(30) 등이 활약하며 17일 현재 NFL NFC 16팀 중 가장 많은 431점을 올렸다. 그 중 오브리가 필드골로 기록한 득점이 93점, 터치다운 후 엑스트라포인트(1점)로 올린 득점이 40점이다.

카우보이스는 실점도 NFC에서 둘째로 적어 공·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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