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화·드라마로 反서방 분투한 ‘마오쩌둥 띄우기’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3. 12.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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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30주년 기념행사 잇따라
베이징 천안문 입구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한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마오쩌둥 중국 초대 주석 탄생 130주년(12월 26일)을 열흘 앞둔 16일,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 전구(戰區)는 ‘중국이 낳은 마오쩌둥’이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발표했다.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은 마오쩌둥의 출생지인 후난성 샤오산의 ‘마오쩌둥 동지 기념관’이다. 연일 군인 수천 명이 이곳을 단체 방문해 집단 교육을 받고 있다. 인근 마오쩌둥 생가 앞 마오쩌둥 동상 앞엔 ‘인증샷(기념 사진)’을 찍고자 하는 학자들과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5·4운동(1919년 시작된 중국의 반제국·반봉건 운동)의 발원지인 베이징대 훙러우(红楼·붉은 벽돌 건물)에선 지난달 ‘청년 마오쩌둥, 베이징서 마르크스주의 신앙 확립’이란 학술 토론 행사가 열렸다. 중국 정부 연구소인 사회과학원은 마오쩌둥을 주제로 서예 행사를 최근 개최했다.

중국 지도부가 마오쩌둥 탄생일을 앞두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각종 행사 개최와 홍보물 제작을 독려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1949년 신(新)중국을 건국하고 1976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중국을 통치한 인물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자 중국 지도부가 국부(國父)인 마오를 띄우며 당시의 ‘분투 정신’을 강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진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오 동상 난립에 제동을 거는 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를 가릴 정도로 우상화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방송사들과 콘텐츠 제작사들의 연말 핵심 키워드 또한 ‘마오쩌둥’이다. 검열 통과가 제작비 조달보다 어려운 중국 제작 환경에서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마오쩌둥 찬양 영화·드라마 공개 붐이 일어난 것이다. 베이징 위성TV가 18일 방영하는 드라마 ‘쿤펑지랑’은 1918~1921년 마오가 열렬한 마르크스주의 신봉자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12일 공개된 드라마 ‘원창망’(국영 CCTV)은 마오가 1921~1927년 중국식 혁명 여정을 모색하는 이야기다. 블록버스터 ‘바오레이’(16일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인민만세’(26일 개봉) 등 마오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속속 나오고 있다. 베이징일보는 “마오의 젊은 시절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中 남부 시찰하는 시진핑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구도 난닝에서 주둔군 장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진핑 체제 중국은 오는 26일 마오쩌둥 중국 초대 주석 탄생 130주년을 앞두고 각종 행사와 홍보물 제작을 통해 마오쩌둥의 업적과 생애를 기리고 있다. 중국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마오를 띄워, 시진핑을 마오에 비견되는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 7인(정치국 상무위원)은 오는 26일 관례에 따라 마오쩌둥 시신이 안치된 톈안먼광장 마오쩌둥기념관을 찾고, 이곳에서 기념좌담회를 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10년을 주기로 마오의 탄생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해왔다. 장쩌민 전 주석은 마오 탄생 100주년인 1993년 12월 26일 추모 연설을 통해 “마오쩌둥 동지는 가장 위대한 역사적 성취를 이뤘다”고 찬양했고, 후진타오 전 주석도 110주년인 2003년 12월 26일 인민대회당에서 기념 좌담회를 열고 장문의 연설을 했다.

마오쩌둥을 띄우는 배경엔 시진핑을 그에 비견되는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노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된 2017년부터 중국 지도부는 마오쩌둥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마오쩌둥의 과오를 각종 역사 교과서와 정부 문서에서 제외하면서, 마오 장남 마오안잉이 ‘항미원조 전쟁’(중국이 6·25 전쟁을 부르는 명칭)에서 숨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의 동상을 신축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에 설치했다. 2021년엔 약 2개월간 마오 생가를 대대적으로 복원한 뒤 ‘홍색관광(공산당 주요 유적지 관광)’ 대표지로 만들기도 했다. 시진핑은 이전까지 마오쩌둥에게만 쓰던 ‘당과 국가의 조타수’ ‘영수(領袖)’라는 수식어 또한 가져다 쓰고 있다. 마오쩌둥이 개혁·개방의 상징인 덩샤오핑의 대척점에 있는 지도자로도 평가되기 때문에, 중국이 마오 시절의 폐쇄적 국가 시스템으로 회귀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지도부는 한편으론 지나친 ‘마오 우상화’는 경계하는 모습이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후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링링허우(2000년 이후 출생) 세대가 마오쩌둥에 과도하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는 현실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서 주민 모금으로 제작된 마오쩌둥의 동상은 10월 1일 건립 한 달 만에 철거됐다. 지난 8월 산둥성에서도 대리석으로 제작된 마우쩌둥의 동상이 철거되는 일이 일어났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지지 속에 확산된 문화혁명(1966~1976년)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사(史)를 갖고 있기도 하다. 문화혁명 전부터 박해를 받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는 투옥됐고, 이복 누이는 목숨을 잃었다. 시진핑 본인도 북서부 산시성의 빈곤한 농촌으로 하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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