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친일 심리’의 어제와 오늘
“한국은 일본 모른다”면서 막상 자신들은 한국 몰라
나는 한국이 이웃나라 일본과 사이 좋게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 또는 일본에 사는 친구와 지인이 여럿 있고 그들과 친하며 그들을 좋아한다. 이 글에서 ‘친일’ 또는 ‘친일파’란 표현은 일본과 잘 지내는 것을 부정하는 표현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 일본에 빌붙어 한민족에게 선명하게 피해를 준 세력과 그들의 행위·논리·심리·태도를 지칭한다.
한국의 경우 ‘친일파 심리’는 대체로 노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에 남아있다. 양상은 서로 다르다. 노인 세대는 일본에 대한 숭배에서, 중장년 세대는 한국에 대한 짜증에서 각각 비롯됐다. 세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별 의미 없는 생각이란 점에서는 둘이 비슷하다.
노인 세대의 친일파 심리는 체험에서 비롯됐기에 뼈에 박혔다. 그분들이 어린 날과 젊은 날에 보고 접한 일본은 그 자체로 선진·모범이었다. 우수·도전·진취·강함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그런 말을 들려주고 싶어 참기가 힘들다. 이런 이야기다. 일본에 갔더니 길에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고 전철 안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책을 보며 공중질서를 잘 지키고 한겨울에도 초등학생에게 반바지를 입히고 폐를 끼치지 않으며…. 끝도 없다. 일본이 하는 건 모두 ‘선진’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다.
그러니 한 단계 열등한 한민족은 그런 일본은 배워야 하는데, 시끄럽고 서로 단합하지도 않으며 거짓말도 잘 하고 인내심도 없는 한국인이 일본을 배우지 않으니 어리석고 나쁘다는 것이 노인 세대가 펼치는 친일파 심리다. 좁은 체험과 사유 부족에서 이는 왔다. 이런 심리는 지금도 꽤 선명하게 살아 있다. 이 논리의 황당한 단점은 사유가 없다는 점이다. 사유가 없으니 질문도 없다. 일본인이 겨울에도 어린이에게 반바지를 입힌다면, 왜 그럴까 하고 질문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냥 ‘일본은 선진’이다. 큰 질문을 잃어버린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예컨대 조선은 문치의 나라였다. 민중성이 강한 나라이기도 했다. 판소리나 대하소설 한 대목을 보면 욕설만 몇 페이지 정도 그냥 이어진다. 말이 많았다. 일본은 칼의 나라였으니 욕설은 발달하지 않았다. 한국이 사기 범죄 비율이 매우 높고 일본은 그렇지 않으니 일본이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통계수치에만 매달리기 전에 문화 특질을 보면 졸가리가 훨씬 잘 잡힌다.
친일파 심리를 가진 중장년 세대도 들여다보자. 이들은 한국에 짜증이 나 있다. 아니면 한국이 준 상처를 입었다. 한국은 뭘 해도 대책 없이 말이 너무 많고 붕당을 지어 지나치게 서로 공격하며 일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고 이들은 여긴다. 그런데 일본은 ‘앗싸리’하게 일을 해낸다. 메이지유신을 보라. 사무라이를 포함한 지배 계층이 단합해 단숨에 효율 좋게 일이 되게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근데 조선은 뭔가? 끝도 없는 당쟁만 펼치다가 속절없이 망해 백성을 고생시킨 나라 아닌가.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이다. 자기는 일본을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의 우수함을 잘 아는데, 다른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련 작업을 열심히 한다. 이들에게도 엄청난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은 너무나 커서 이분들의 성실한 노력을 숫제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든다.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중국도 잘 모른다. 세계도 잘 모른다. 그냥 일본만 판다.
일본을 알고 싶은가? 간단하다. 한·중·일을 모두 공부하라. 한국을 알고 싶은가? 간단하다. 한·중·일을 모두 공부하라. 한·중·일을 익히다 보면 세계 전체로 지평이 넓어진다. 한국에 관해 질문하면 하나도 답변을 못하면서 일본만 들여다보며 ‘왜 한국인은 일본을 공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중장년 세대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은 괴롭고 서글프다. 큰 질문을 잃어버린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친일파 심리를 지닌 노년 세대는 옛 일본에 대한 숭배에서, 친일파 심리를 가진 중장년 세대는 한국에 대한 짜증에서 출발했으되 정작 한국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일본과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있기에, 일본이 먼저 도발해올 경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응하는 데 악영향을 준다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동시에 민족이 위기에 처한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한 독립투사와 애국지사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있고 한국을 사랑한다. 지금은 좀 차분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매우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어떤 상황이 어떻게, 언제 새롭게 펼쳐질지 짐작기 어렵다. 그것이 이와 같은 주제로 글을 쓴 동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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