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31> 고려 때 최해가 장사감무로 좌천돼 눈 내리는 겨울에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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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간 귀양살이에 병까지 들었고(三年竄逐病相仍·삼년찬축병상인)/ 한 칸 사는 집 꼴이 스님과 비슷하네.
/ 사방의 산이 눈에 덮여 오는 사람 없고(雪滿四山人不到·설만사산인부도)/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심지나 돋우네.
그가 지내던 곳은 궁벽한 산속이었고, 살림살이가 얼마나 없었으면, 스님 생활과 비슷하다고 했다.
폭설이 내려 사방에 눈뿐인데 누가 자신을 찾아오겠냐며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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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雪滿四山人不到·설만사산인부도
삼 년간 귀양살이에 병까지 들었고(三年竄逐病相仍·삼년찬축병상인)/ 한 칸 사는 집 꼴이 스님과 비슷하네.(一室生涯轉似僧·일실생애전사승)/ 사방의 산이 눈에 덮여 오는 사람 없고(雪滿四山人不到·설만사산인부도)/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심지나 돋우네.(海濤聲裏坐挑燈·해도성이좌도등)
위 시는 고려 시대 시인인 최해(崔瀣·1287~1340)의 ‘눈 내리는 밤(顯齎雪夜·현재설야)’으로,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 들어있다. ‘고려사’ 열전에 그에 대한 기사가 있다. 그는 다소 오만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위 시를 지을 당시 그는 장사감무(長沙監務)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있었다. 장사는 전라도 고창(장무)의 옛 이름이다. 대과에 급제한 그는 충숙왕 8년(1321) 원나라에서 치른 과거에서도 급제했다.
시인이 장사에 좌천되어 있는 상황을 스스로 귀양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지내던 곳은 궁벽한 산속이었고, 살림살이가 얼마나 없었으면, 스님 생활과 비슷하다고 했다. 기상이 대단하였던 시인은 자신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잊힌 채 산다는 자의식에 마음의 병까지 얻었다. 폭설이 내려 사방에 눈뿐인데 누가 자신을 찾아오겠냐며 절망한다.
마지막 구를 보면 바람이 집채를 삼킬 만큼 큰 파도 소리를 내며 세상을 모두 날려버릴 기세로 분다. 잠을 못 이뤄 애꿎은 등불 심지만 돋운다. 등불 심지는 돋우지 않으면 꺼진다. 그건 근근이 버티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시인의 심경을 다르게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문재 등이 뛰어났던 그는 장사감무로 있다가 결국 예문춘추관주부(藝文春秋館注簿) 자리로 불려 나갔다. 여하튼 삶의 근심이 다층적으로 묻어나오는 시편이다.
목압서사가 있는 지리산에도 지난 토요일(16일)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어제(17일) 큰아들 조현일(34)이 자신의 출신 대학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학교 뒤 관악산에도 눈이 많이 내려 장관을 연출하였다. 목압서사가 있는 화개골은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모두 산이다. 필자는 원하여 자신을 지리산 깊은 골에 유배시켰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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