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장수 교육부 장관에게 권하는 책
이주호 부총리가 건국 이후 교육부 장관 중 최장수 장관이 되었다. 과거 최장수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유은혜 부총리로 1316일을 재직했다. 이주호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장관이 되기 전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간사와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을 역임하여 한 정부의 시작부터 끝까지 교육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였다. 이번 정부에서도 실질적인 첫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출범 후 한 달 남짓 자리를 지킨 전임자만 있었기 때문이다. 최장수일 뿐만 아니라 두 정부의 교육 정책 골격을 세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3년 반 이상 장관실을 지킨 부총리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한다.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판된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는데…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I used to think... And now I think)’라는 책이다. 교육개혁을 연구하는 명망 있는 20명의 학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재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담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한 줄은 하버드대의 리처드 엘모어 교수의 고백이다. 과거에는 정책이 해결책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책이 현장에 대한 장기적 투자보다는 관련자들의 단기적 업적으로 평가받는 습성 때문이라고 했다. 40년 이상을 교육과 정책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연구로 업적을 쌓은 대학자의 고백이 얼핏 보면 자기부정처럼 들리겠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문제의 복잡성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부총리가 읽으면 자신이 40대에 일하던 시절과 60대가 된 지금이 책의 내용과 평행이론처럼 보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많은 정책이 있었다. 입학사정관제 확대, 고교 다양화 300,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대학구조개혁 등 이후 정부의 교육정책에서도 연계되는 굵직한 뼈대가 많이 만들어졌다. 입학사정관제 확대, 수능 축소, 내신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등의 아이디어는 오히려 진보 교육계에서도 환영하는 제도가 되었다. 정부가 두 번 바뀔 정도로 시간이 흘렀고 바뀐 환경은 부총리가 십 수년 전에 경험한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다. 분권화의 강화로 유·초·중등 교육에 대한 권한은 시도 교육감이 가지고 있다. 장관으로 교육감에게 협조를 구할 수만 있을 뿐이다. 실패로 끝난 인위적 구조조정 때문에 대학에도 영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교육부 직원이 파견되는 것도 이번 정부 들어서 막혔기 때문에 영향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엘모어 교수의 지혜를 빌린다면 과거에 정책으로 만들었던 것 중 지금도 남아있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유보통합이라는 30년 묵은 난제가 풀렸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이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유보통합이 윤석열 정부의 최대 업적 중 하나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25년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될 ‘늘봄학교’도 오랜 숙원의 해결이다. 오전 7~9시부터 아침 돌봄이 시행되고, 저녁 8시까지 저녁 돌봄이 시행되면 아이들의 삶과 배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글로컬대학 사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책이지만 오래된 상식이다. 대학은 지역사회의 수요와 산업계 요구에 반응하기 위하여 지역화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유·초·중등교육은 책임교육 제공을 위해서 중앙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90년대 이후의 세계적 추세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거꾸로 갔다.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좀 어려운 일을 하면 될 거다.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유보통합에 더해서 여성가족부가 가지고 있는 청소년정책도 맡길 바란다. 학교 안팎에 따라 교육부와 여가부로 관할이 바뀌는 것보다는 유아, 아동, 청소년 등을 모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또한 분권만 있고 자치는 없는 현행 교육자치제도 어렵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부터 쌓인 생각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이다. 최장수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부총리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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