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평론가들이 뽑은 올해 최고 영화 ‘절해고도’
- 수상작 상영, 관객과 대화 마련
- 좁아지는 비평 무대 고민 나눠
- “평론가 글 쓸 기회 보장됐으면”
“첫 장면을 어떻게 쓸 것인지 특히 굉장히 고민했다.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는 문장을 길게 촬영했다. 어떻게 한 번에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지 소품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각본상 ‘비밀의 언덕’ 이지은 감독 )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을 캐릭터가 알려줬다.”(기술상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 박재범 감독). 작품과 자신에 대한 진솔한 수상 소감이 이어졌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이야기다.
▮시상식+포럼 깊은 대화 마련
지난 1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제2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시상식이 열렸다. 부산영화 발전과 지역 비평문화 활성화를 위해 1958년 창설된 부산영화평론가협회는 2000년부터 한국 영화의 미학적 성과를 조명하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 상은 지난해 10월 1일부터 지난 9월 30일까지 개봉한 모든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 심사위원 10명이 예심·본심을 거쳐 부문별 수상자를 지난달 24일 발표했다. 협회는 “각 영화가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에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선정한다. 올해는 색깔이 분명한 영화가 많아 수상작 결정까지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고 밝혔다.
협회상은 1부 시상식과 2부 포럼으로 이뤄진다. 2015년부터 협회가 도입한 포럼은, 형식적인 시상식 순서를 대폭 줄이고 수상자와 관객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협회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다. 수상자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선택하면, 협회가 이를 20분가량의 영상으로 편집해 선보이는 상영회도 가진다. 시상식 다음 날인 지난 16일에는 일부 수상작 상영과 함께 GV(관객과 나누는 대화)도 열렸다.
포럼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정한석 프로그래머가 진행했다. 감독·배우들은 때론 진지한, 때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100분 가까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명장면에 대한 뜻밖의 비하인드도 밝혀졌다. 대상을 받은 ‘절해고도’의 김미영 감독은 “박종환 배우가 밤을 이용한 애드리브로 부성애를 드러낸 장면에서 연출자로서 전율을 느꼈다”고 했지만, 박 배우는 “극 중 차량 유턴을 해야 하는데, 현장 스태프가 나눠준 밤을 한 손에 들고 있다가 활용했는데 상대 배역이 잘 받아줬다”고 답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점점 좁아지는 ‘비평 토대’
영화 비평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①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 영화부터 현재까지 가치 있는 영화의 지속적인 상영 ②관객 ③영화와 관객을 잇는 영화 비평가들의 활동 등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날 협회가 진행한 포럼은 영화 비평의 가치와 순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지역 영화비평의 줄기가 굳건히 이어진 것과 달리, 이들이 뿌리내릴 토양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역에서 영화평론가들이 관객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강연 기회는 줄고, 영화 비평을 다루던 웹진 등은 코너를 축소하거나 삭제했다. 평론가의 무대가 점점 좁아진다.
협회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비평지만으로는 한계가 크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1998년 ‘영상 문화’라는 이름으로 연간 1회 내던 비평지는 2019년 ‘크리틱b’로 이름을 바꾸고 발행 횟수도 연간 두 차례(7·12월)로 늘렸다. 초기에는 비평 이론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미처 관객에게 관심 받지 못한 영화나 반드시 이야기해 봐야 할 영화를 중심으로 평론가들의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협회 박인호 회장은 “신진 평론가들은 글 쓸 기회조차 없다”며 “비평은 쓸수록 실력이 느는 만큼 더 많은 평론가에게 ‘무대’가 보장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협회가 지원받던 국비 예산은 내년에 사실상 ‘0원’이 돼 시비만으로 25주년 협회상을 준비해야 하는 위기도 맞았다. 정부가 지역 영화 활성화 관련 예산을 전액 또는 절반 삭감한 탓이다. 협회 측은 “산업 측면에서 키울 분야와 예술 측면에서 지킬 분야가 고루 성장해야 한다”며 “다양한 관점이 고려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협회는 돌파구를 찾아 영화로 시민과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는 토론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 영화로 글 쓰는 방법 등을 포함한 가칭 ‘도서관 프로젝트’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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