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포탄은 왜 불량일 수밖에 없을까[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내가 간 중대엔 57mm 대공포 8문이 있었다. 첫 보직은 장탄수였다. 4발이 든 탄약상자를 들고 뛰는 훈련부터 받았는데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포 옆에 포탄 몇백 발을 보관한 포탄창고가 있었다. 야간 근무 때 추우면 그리스가 녹아 흘러내린 포탄창고에 들어가 잠을 잤다. 포탄상자와 벽 사이 공간은 약 80cm 정도 됐는데 그 틈에 들어가 동창들과 휘발유 곤로로 찌개를 끓여 먹었던 일도 있다. 술까지 마시고 취해서 자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탄약상자에 불이 옮겨붙었다면 온 중대가 날아갈 뻔했다. 그만큼 탄약 관리가 허술했다.
교도대엔 제일 낡은 포가 배정된다. 그걸 감안해도 우리 중대 대공포 중엔 1942년에 생산돼 6·25전쟁 때 참전했던 것도 있었다. 포탄은 당시 기준으로 생산연도가 약 30년 정도 된 1960년대 초반 제품이었다. 포탄창고는 겨울이면 냉기 때문에 허연 성에가 벽에 두껍게 끼는데, 과연 전쟁이 나면 이 포탄들이 제대로 발사될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얼마 전 구글어스로 살펴보니 그때의 중대 포진지는 물론이고 병실과 돼지우리까지 그대로였다. 80년째 같은 포를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있을 때 포신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과연 그 포신은 온전할지, 포판은 돌아갈지 의문이다.
2010년 연평도 포사격 때 북한이 발사한 포탄의 절반이 바다에 떨어지고, 섬에 떨어진 것들 중에도 불발탄들이 대량 발생한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포와 포탄 관리가 한심한데 제대로 날아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북한 포탄은 러시아에 가서도 망신살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북한산 포탄을 해체해 봤더니 부품이 빠져 있고, 충전된 화약의 색깔도 달랐으며, 밀봉돼야 할 부분이 훼손돼 습기에 노출돼 있었다고 한다. 북한산 포탄을 사용하다 포신과 포탑이 완전히 날아갔다는 러시아 자주포 사진도 공개됐다.
러시아에 준 포탄이 재고품인지, 신품인지에 대해 논쟁도 있지만 내가 볼 땐 의미 없는 짓이다. 확실한 것은 북한 포탄은 불량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 포탄은 1994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생산한 것과 이후에 생산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1994년 이전 것은 그나마 생산 지도서대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30년 넘게 보관 관리가 안 되면서 불량이 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은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대량 아사부터 시작됐다. 그게 1994년 가을이었다. 이때부터 생산은 둘째고,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당연히 누구도 품질 같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럼 고난의 행군이 끝난 뒤엔 제대로 생산될까. 이때부턴 간부들과 노동자들이 원자재들을 빼돌려 팔기 시작했다.
위에서 요구하는 것은 수량이지 품질이 아니다. 수량 과제를 못 하면 처벌받지만, 질 때문에 처벌받는 일은 거의 없다. 품질 검사원들도 다 한통속이라 대충 넘어간다. 이건 군수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전체의 문제다.
게다가 상부에선 설비와 자재도 제대로 주지 않고 무조건 자력갱생하라고 한다. 할 수 없다고 하면 조건타발을 앞세운다고 처벌한다. 그러니 간부라면 수량부터 맞추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러시아에서 큰 망신을 당했으니 아마 포탄 공장 간부들은 처벌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는, 운 나쁜 천재지변에 해당한다. 수량 때문에 처벌받을 확률이 여전히 수십 배 더 높으니 앞으로도 계속 불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에선 중국산의 품질이 한심하다고 비난하지만, 내가 볼 땐 북한산은 그보다 열 배는 더 조악하다. 김정은이 열병식 때마다 한두 개씩 선보이는 신상 무기도 한두 번은 굴러가거나 날아가긴 하겠지만, 품질이나 내구성은 형편없다고 확신한다. 솔직히 난 김정은이 핵무기를 쏘면 그게 제대로 폭발할지도 의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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