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에 말 붙이는 데만 석 달”… 시설 모시기 진땀 [밀착취재]
매일 저녁 복지사·봉사자들 모여
터미널 은거 노숙인 일일이 안부
도시락 건네며 신중히 동향 살펴
“섣불리 접근하면 관리망 밖 도망
노숙 만성화될수록 입소 어려워”
“우리 역할은 혼자 두려움에 떨며 죽는 노숙인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적어도 누군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게 하는 것, 그게 올겨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엔 구세군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간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서울시립 노숙인 지원 기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출동 준비로 분주했다. 매일 저녁 센터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이 서울 각지 노숙인이 있는 거점으로 ‘찾아가는 거리상담(아웃리치)’을 나가기 위해서였다. 긴급입원이 필요한 노숙인을 파악하고 거주시설에 입소하도록 설득하는 이날 야간 아웃리치에 세계일보 취재진도 동행했다.
노숙인을 자활 체계 안으로 포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섣부르게 접근했다가 노숙인이 관리망 바깥으로 숨으면 겨울철 동사 사고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웃리치는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이들에 따르면 노숙인 대부분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아 동일한 복지사가 같은 시간에 최소 3개월은 찾아가야 말 몇 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오후 8시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은 흩어져 준비해 간 저녁 도시락을 건네며 노숙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새로 유입된 이들은 없는지 살폈다. 건물 구석구석 놓친 노숙인이 없는지도 꼼꼼히 확인했다. 이형운 다시서기센터 실장은 사람들의 ‘냄새’에 집중한다고 했다. 초기 노숙인은 겉으로 보기엔 말끔하지만 오랜 시간 씻지 못해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길거리 생활로 정신이 피폐해지기 전에 시설로 데리고 가는 편이 자활에 유리하다”며 “노숙 생활이 만성화될수록 입소 설득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고속터미널 곳곳에 고정적으로 노숙하는 인원은 칠팔십명에 달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노숙인까지 포함하면 130명 정도로 추산했다. 터미널 건물 앞 벤치에는 고령의 남성 노숙인이 비를 피해 서 있었다. 김 복지사는 입소를 권했지만 노숙인은 말없이 웃으며 핫팩만 받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김 복지사는 “지난번에 입소하겠다고 하셨는데 또 마음이 바뀌셨다”며 “핫팩으로 견딜 수 있는 추위가 아니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번 모든 걸 내려놨던 사람들인 만큼 재기하겠다는 욕구를 갖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17일 매서운 한파와 함께 전국 곳곳에 내린 폭설로 피해가 잇따른 가운데 노숙인의 안전 문제에도 큰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복지부가 5년마다 실시해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여전히 8956명에 달한다.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생각한다면 이보다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글·사진=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