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바람의 손자’, 아버지를 넘나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름을 날린 이정후(25)가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다. 정식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의 일원이 됐고, 지난 주말 입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아버지는 한국 야구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인 이종범(53)이다. 얼마 전까지 LG 트윈스 코치였다. 이종범은 1994년 한 시즌에 84도루를 달성하는 주루 능력을 선보여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었다. 아들은 자연스레 ‘바람의 손자’가 됐다.
▶이정후는 “현역 시절 아버지는 정말 빨랐다. 나보다 빠르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무엇을 배웠냐’고 묻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잘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이종범은 아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나 ‘자기 관리’를 당부할 뿐 야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한다고 한다. 딱 하나, “타석은 왼쪽에 서라”는 것뿐이었다고 했다.
▶여러 분야에서 대를 잇는 집안을 볼 때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특별한 성공 비책을 전수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이정후는 야구 기술은 배워본 적이 없고 “경기를 잘했든 못했든 집에 오면 항상 ‘잘했다’고 격려만 해주셨다”고 했다. “야구로 혼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죠. 경기를 망치면 가장 속상한 게 선수 본인이라는 것을요.”
▶축구 선수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을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의 근처에도 못 가니까 조금 밉기도 했습니다.” 물론 진짜 밉다는 뜻은 아니다. ‘아버지의 벽(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두 아들을 농구 선수로 키워낸 ‘농구 대통령’ 허재는 “아무쪼록 근성 있는 선수가 돼라”고 했다. 아들에게 “특혜는 없다”고도 했다는데 한 TV 방송에서 둘째가 “아빠는 뭐 해줬어?”라고 묻자 허재는 “DNA 줬잖아”라고 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경기에서 아들 찰리에게 “휴대폰 좀 그만 봐” 하면서도 “내 스윙 베끼지 말고 매킬로이를 따라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리 매킬로이의 ‘균형 있는 샷’을 배우라고 한 것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반면 자식에겐 ‘스타 부모’를 뒀다는 꼬리표가 부담이다. 우쭐한 기분은 잠시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세운 통산 1797 안타를 때려 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만큼만 하라’는 말을 듣고 자라나 이젠 ‘아버지를 넘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때도 아버지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다. “정후야. 실패해도 고개 숙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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