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무너지는 녹색경제 윤석열 정부와 한국의 역주행
◀ VCR ▶
이 카페에는 두 가지 빨대가 있습니다.
비닐로 싼 검은색 플라스틱 빨대.
그리고 친환경 빨대입니다.
"먹는 빨대"라고 적혀 있습니다.
종이를 벗기면 흰 빨대가 나옵니다.
쌀로 만든 빨대입니다.
먹을 수도 있습니다.
생쌀 씹는 것 같습니다.
손님은 원하는 빨대를 골라 씁니다.
[김진태/플라스틱 빨대 선택] "플라스틱 빨대가 일단 오래 먹어도 안 변하고."
[최혜정/쌀 빨대 선택] "굳이 플라스틱 빨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부는 1년 전부터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했습니다.
단속만 1년 미뤄, 올해 11월 24일부터 플라스틱 빨대를 쓰면 과태료 최대 3백만 원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이미 4년 전부터 예고한 정책.
그런데 시행을 불과 2주 앞두고, 정부가 말을 바꿨습니다.
단속을 또 미루겠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미룰지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겁니다.
[이금순/카페 사장] "먼저 준비한 사람이 좀 바보가 된 느낌? 한 10박스 정도를 목돈으로 이렇게 사놨거든요."
국내에서 쓰는 플라스틱 빨대는 1년에 100억 개가 넘습니다.
환경부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합리화라고 했습니다.
단속은 안 하지만 친환경 빨대를 쓰도록 유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될까요?
[심현정/카페 사장] "규제가 이렇게 완화된 입장에서 친환경 빨대를 쓴다고 하면 그 업체만 좀 바보가 되는,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왜 저렇게 비싸게 해?'라는 그런 소리를 듣겠죠."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 같은 일회용품규제를 사실상 철회한 뒤,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세계적 흐름을 거스른다는 비판은 물론이고, 이러다 우리나라 친환경 산업이 붕괴할 거라는 걱정도 나옵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윤석열 정부의 환경 정책을 집중 점검합니다.
최경재 기자 나와 있습니다.
최 기자, 이게 하루아침에 만든 정책도 아니잖아요?
◀ 최경재 ▶
4년 전에 만들었습니다.
준비기간 3년을 거쳐 작년부터 시행하려고 했는데, 그때도 정부가 단속을 1년 미루겠다고 했던 겁니다.
◀ 이휘준 ▶
조금 전에 보신 것처럼 오랫동안 준비한 카페들도 많을 텐데, 그렇게 갑자기 뒤집는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 최경재 ▶
카페들도 혼란스럽겠지만, 이 친환경 제품들을 개발하고 만든 기업들이 지금 줄줄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믿음과 함께, 관련 산업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 VCR ▶
공장 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기계도 멈췄습니다.
한 달 전까지 직원이 11명이었는데, 모두 내보냈습니다.
종이 빨대 공장입니다.
[한지만/종이빨대 업체 대표] "생산해 놔봤자 진짜 이런 말까지는 하기 싫은데요. 인건비 투입하고 자재 투입해서 쓰레기 만드는 경우밖에 안 되는 거예요. 판매가 안 되잖아요."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할 거라는 정부 말만 믿고 생산량을 늘렸다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한지만/종이빨대 업체 대표] "(11월) 4, 5일 이런 때 통화했어도 '정책 변화가 없을 거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하니까 진짜 하늘이 노래지는 거예요."
반품과 계약 취소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2천만 원어치가 넘습니다.
주문도 뚝 끊겼습니다.
[한지만/종이빨대 업체 대표] "이제는 우리 보고 죽으라는 얘기잖아요. 그렇죠? 이거는 다른 우리가 힘쓸 방법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는 거예요."
쌀 빨대를 만드는 이 회사도 창고에 재고가 가득합니다.
3천 만개, 3억 원어치입니다.
반품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쌀 빨대는 식품으로 분류됩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다 버려야 합니다.
[박정철/쌀 빨대 제조업체 대표] "전부 다 폐기를 해야 되고 그럼 저희 손실은 어마어마한데."
매년 쌀 농가와 대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가격을 종이 빨대와 비슷한 10원대 초반으로 확 낮췄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과 이슬람 할랄 인증도 받았습니다.
스타벅스 본사에서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초로 만든 비닐도 개발해 출시가 코앞이었습니다.
하지만 다 물거품이 될 위기입니다.
[박정철/쌀 빨대 제조업체 대표] "폴리비닐보다 신축성, 강도가 다 더욱 좋고 단가는 같습니다. 얘(쌀빨대)가 좌초가 되니 얘는 세상의 빛도 못 보고 사라져야됩니다."
연구 개발비 등으로 은행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은 30억 원.
한 달 이자만 2천만 원에 이릅니다.
[박정철/쌀 빨대 제조업체 대표] "지금 정책을 이렇게 했는데 누가 연구개발을 하겠습니까? 정부에서 정해놓은 시점을 이렇게 하겠다 하겠다는 걸 당일날 아침 손바닥 뒤집는데 이 정부 시책을 누가 지키겠습니까? 저희는 정부 솔직히 못 믿겠습니다."
환경부는 왜 갑자기 방침을 바꾼 걸까요?
한국의 규제가 과하다고 했습니다.
카페나 식당에서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라고 했습니다.
[임상준/환경부 차관(환경부 일회용품 관리방안 발표, 11월 7일)] "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올해 1월부터 프랑스와 독일은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독일은 매장은 물론, 배달 음식도 다회 용기를 써야 합니다.
환경세를 매기는 나라도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지난 7월부터 플라스틱 코팅된 종이컵을 쓰면 세금으로 0.25유로, 350원을 물립니다.
[홍수열/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저는 환경부에 이렇게 질문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선진 국가들 중에서 음식점 안에서 매장, 음식점 테이블마다 종이컵을 쌓아두고 이렇게 종이컵을 음식점에서 남용하는 국가는 있느냐?"
환경부는 자영업자 부담이 크다는 것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보도자료에 '푸드트럭 붕어빵 사장이 종이컵 규제로 어묵 국물을 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푸드트럭은 식품접객업이 아니라, 아예 규제 대상도 아닙니다.
환경부가 자기 업무도 제대로 몰랐던 겁니다.
환경부는 "플라스틱보다 종이 빨대가 비싸 음료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카페 사장 얘기도 보도자료에 담았습니다.
빨대 가격은 플라스틱 6원, 종이 12원으로 종이 빨대가 2배 비쌉니다.
하지만 하루 1천 개를 쓴다고 해도, 늘어나는 부담은 6천 원입니다.
[심현정/카페 사장] "원두값, 우윳값 그 다음에 커피 재료들 그런 재료 부분들에서 가격이 올라가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지. 친환경 빨대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 요인으로 가격을, 음료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여론조사.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일회용품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자기들이 한 여론조사를 사실상 부정합니다.
[임상준/환경부 차관(환경부 일회용품 관리방안 발표, 11월 7일)] "그때 국민 의식과 또 지금의 국민 의식이 같다고 볼 수는 없고요. 여론조사라는 게 100% 국민 시민들의 뜻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부의 말바꾸기는 처음이 아닙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음료를 살 때 일회용컵 보증금 3백 원을 내고, 다 쓴 컵을 무인회수기에 반납하면 3백 원을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3년 전 도입됐습니다.
환경부는 작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시행을 불과 3주 앞두고, 6개월 뒤로 미뤘습니다.
12월이 되자 일단 세종과 제주만 시범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법으로 전국 의무 시행이 정해져 있는데, 법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철회한 겁니다.
[오충미/일회용컵 무인 회수기 업체 임원] "그러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재고, 부품 재고는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지난해 3월 170여 개 유엔 회원국들은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전 세계가 함께,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강력히 규제해, 지구 오염을 막기로 했습니다.
내년 부산에서도 회의가 열립니다.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 없는 세상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개최국 한국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습니다.
[홍수열/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환경부 정책을 믿고 투자를 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될 거죠. 탄소중립이든 순환 경제든 이게 결국은 경제 산업 시스템의 전환이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계속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투자 시장에서 이런 스타트업들에 대해서 투자를 과연 해주겠느냐."
◀ 이휘준 ▶
종이컵 규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뿐이라더니, 그것도 사실이 아니네요?
◀ 최경재 ▶
환경부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급하게 발표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조치가 환경부의 자체 결정이라기보다는 자영업자들의 표를 의식해 총선용으로 위에서 내려온 거라는 의심이 나오는 겁니다.
◀ 이휘준 ▶
환경부가 환경보전이라는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
윤석열 정부 출범할 때부터 걱정이 많았잖아요?
◀ 최경재 ▶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올해 첫 외부 일정이 재벌 총수들이 대거 참석한 신년 인사회였습니다.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돼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 VCR ▶
어이없이 빗나간 예측으로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지 일주일 뒤,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을 찾아갔습니다.
재계 총수들을 줄줄이 데려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부산 국제시장, 12월 6일)] "(대통령님,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최재원 SK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총선을 앞두고 부산 민심을 달래려고, 재계 총수들을 들러리 세웠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얘기를 꺼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격려 간담회, 12월 6일)] "가덕도 신공항은 반드시 계획대로 제대로 개항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입니다.
원래 2035년 개항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올해 초 개항을 6년이나 앞당겨 2029년에 열기로 했습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가덕도는 생태 자연 1등급 지역입니다.
멸종위기종인 토종 돌고래 상괭이, 나팔고둥, 수달, 구렁이, 대흥란이 살고 있고, 동백군락과 철새도래지도 있습니다.
6년이나 앞당겨진 개항 일정.
환경부가 총대를 맸습니다.
지난 9월 환경부는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켰습니다.
국토부의 작성 과정에 평가검토위원들이 자문까지 해줬습니다.
채점자들이 특별과외까지 해준 셈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돼라"고 했습니다.
틈만 나면 모든 부처가 산업부가 돼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2023 연두 업무보고 외교부·국방부, 1월 11일)] 정부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도 기업의 한 전략부서라는 그런 마음으로‥
[윤석열 대통령 (2023 연두 업무보고 금융위원회, 1월 30일)] "'모든 정부 부처는 산업부화 해야 한다'는 제 판단하에…"
그 뒤 환경부의 개발 허가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월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흑산도 일부 지역을 국립공원에서 해제했습니다.
흑산도 공항이 들어설 자리입니다.
2월에는 역시 국립공원인 설악산에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3월에는 제주 제2공항이 환경파괴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습니다.
역시 대통령 공약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아 '이념적 환경정책', '과감한 인사조치' 같은, 사실상 환경부를 겨냥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9월 가덕도 공항까지 통과됐습니다.
[정인철/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토건 사업에 대한 공약,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견제 작동이 전혀 되지 않는 그런 상황들이고 그런 부분들을 환경부가 앞장서서 판도라의 상자를 계속 열어주고 있다."
지난달 열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
시공사도 아직 안 정했는데, 착공식부터 열었습니다.
[한덕수/국무총리(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착공식, 11월 20일)] "대통령께서도 지난 대선 당시에 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오색지구에서 해발 1,600미터 끝청 아래까지 3.3킬로미터 구간에 설치됩니다.
2026년 운행이 목표입니다.
강원 양양군은 경제적 파급 효과가 1,500억 원이 넘고, 고용도 9백 명 넘게 늘어날 거라고 했습니다.
[홍창해/오색지구 상인] "지금은 좀 많이 좀 침체돼 있거든요. 근데 케이블카 된다고 하니 그런 기대감이 많죠."
다른 케이블카 상권은 어떨까요?
오색에서 직선 거리로 10킬로미터 떨어진 권금성 케이블카 상권.
대형 콘도 문이 닫혀 있습니다.
주차장도 텅 비었습니다.
상가 대부분 문을 닫거나 폐업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불을 꺼놓고 있습니다.
[김남태/권금성 인근 상인] "억지로 살아요. 억지로. 생계가 안 돼. 힘들어."
[최화자/권금성 인근 상인] "여긴 전멸이야. 가을에도 별로 없었어.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하고…"
오색 케이블카 사업비는 1,172억 원. 강원도와 양양군이 나눠 냅니다.
양양군은 연간 42억 원 이상 수익이 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게 해도 사업비 회수에 20년 넘게 걸립니다.
경제성은 제대로 따진 걸까요?
[박봉균/강원 양양군의회 의원] "저는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문제는 경제성이죠. 1년에 53만 명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이게 30년 동안 유지가 돼야 된다라는 전제하에 나오는 금액이거든요. 근데 그게 지금 보면 추세를 보면 케이블카 잘 안 타지 않습니까."
실제로 전국 곳곳에 관광용 케이블카가 늘어나면서, 사업성은 악화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100만 명 넘게 유치했던 통영케이블카는 이용객이 반토막 나면서, 지난 7월 긴축 경영에 들어갔습니다.
설악산 전역은 세계자연보전연맹에 등재된 1A등급 지역입니다.
"인간의 방문과 이용, 영향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제한하는 지역"입니다.
멸종위기 1급인 산양, 멸종위기 2급인 하늘다람쥐, 삵, 담비, 무산쇠족제비가 삽니다.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눈잣나무도 있습니다.
국책기관 5곳 모두 케이블카에 부정적 의견을 냈습니다.
"육상 포유류의 서식 환경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산양, 담비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될 수 있다", "백두대간 핵심 구역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경부는 아예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제거 대상으로 지목한, 이른바 킬러 규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 8월 24일)] "이러한 킬러규제는 우리 민생경제를 위해서 빠른 속도로 제거돼야 할 것입니다."
[정인철/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 "환경부를 보고 있는 건지 산업자원부를 보고 있는 것인지…오랜 시간 사회적 거버넌스를 통해서 만들어왔던 다양한 정책들은 전부 다 이제 사장되고 실질적으로는 국토교통부라든지 산업부와 관련된 정책에 이렇게 코드를 맞춰주는 형식으로 부처 기능이 완전히 상실돼 버렸죠."
◀ 이휘준 ▶
정부 부처마다 각자 역할이 있는 거잖아요.
환경부한테 "환경산업부가 돼라"고 하는 건, 일하지 말라는 뜻 같은데요?
◀ 최경재 ▶
정부조직법에 보면, 환경부장관은 환경을 보전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라고 정해놨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몇 마디에 사실상 무력화되는 분위기입니다.
◀ 이휘준 ▶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환경 이슈가 기후 위기잖아요.
이것도 한국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우려가 크던데요?
◀ 최경재 ▶
맞습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서, 이제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습니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재생에너지 같은 새로운 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한국은 여기서도 뒤쳐지고 있습니다.
◀ VCR ▶
중국 쓰촨성 고지대에 끝없이 펼쳐진 태양광 패널.
태양광과 수력을 함께 운용하는 세계 최대 하이브리드 발전소입니다.
날씨가 나빠도 사계절 내내 청정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중국의 태양광 설비 규모는 155기가와트.
원전 155기에 맞먹습니다.
캘리포니아 14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태양광 단지.
태양광 천국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는 2045년 탄소중립이 목표입니다.
태양광 빅2, 중국과 미국은 태양광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올 한해 중국에서는 20% 이상, 미국에서는 40% 고공 성장이 예상됩니다.
산유국들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드넓은 사막의 이점을 살려 탄소 중립에 대비하겠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태양광은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폭염이 드셌던 지난 여름.
8월 7일 전력거래소 전력 수요가 여름철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최고치를 찍은 건 한낮이 아니라 오후 5시였습니다.
산업부 자료를 보면 2005년에는 낮 12시였던 최고점이 2010년에는 오후 3시, 2016년에는 오후 5시로 옮겨갔습니다.
왜 달라졌을까요?
정부는 숨은 태양광 발전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정집이나 작은 공장의 태양광 발전은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고 자체 소비됩니다.
통계로도 잡히지 않아 비계량 발전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이런 비계량 태양광이 한낮의 피크를 떨어트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날 숨은 전력은 7기가와트로 추산했습니다.
원전 7기 발전량에 맞먹습니다.
한낮에는 곳곳에 깔린 이런 숨은 태양광이 필요한 전력을 충당해주니까 오히려 해가 기우는 오후 5시로 피크타임이 바뀐 겁니다.
[권경락/기후환경단체 플랜1.5 활동가] "전력 피크, 전력 수요가 굉장히 높아지는 시점에서 태양광을 쓰고 있으니까 그만큼 다른 석탄이라든지 LNG 발전소 이런 것들을 돌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장점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태양광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주상복합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이곳에 태양광을 설치한 시공업체는 지금 망하기 직전입니다.
2015년 매출이 110억 원이었는데, 지난해 12억 원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은행 대출이 막혔습니다.
[김진규/태양광시공업체 대표] "일단 1금융권에서는 어렵고, 가서 얘기하면 '태양광에 태 자도 꺼내지 말고' '이 정권 안에서 태양광에 대한 대출이 나올 걸로 기대를 하시냐, 그거는 아마 정권이 바뀐 뒤에나 그때 가서 한번 다시 생각을 해보셔야 될 것 같다'."
올 상반기 신규 태양광 대출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정부 지원도 끊기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40% 이상 삭감됐습니다.
[정우식/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 "금융지원 예산은 거의 다 삭감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주민도 이제는 하려고 해도 못하는 거고 그걸 통해서 설치 시공하면서 보급을 했던 태양광 기업들이 이제 먹고 살길이 없어진 거죠. 그러니까 시장이 전체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직격탄을 맞은 거죠."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태양광 산업을 이권 카르텔로 지목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출근길, 2022년 9월 15일)] "혈세가 이권 카르텔의 비리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참 개탄스럽습니다."
국무조정실, 검찰, 감사원, 국세청, 금융감독원 이 총동원돼, 태양광 업계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보조금 부풀리기, 과다 대출,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부당 이득을 적발했습니다.
그리고 태양광 산업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홍유길/태양광시공업체 대표]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뉴스에 많이 나오고 그다음에 많은 기관에서 조사를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안 좋은 분위기로 형성이 되다 보니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현장에서 일하신 분들이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에요."
대기업도 이런 한파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태양광 기업인 한화큐셀은 이달 초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습니다.
직원 1,800명 가운데 10% 정도가 퇴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큐셀의 3분기 국내 매출은 2,062억 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넘게 급감했습니다.
한화큐셀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조지아 주에 미국 최대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정우식/한국태양광산업협회 상근부회장] "넘버원 기업인 한화가 못 버틴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중소 중견 태양광 제조 산업은 완전히 붕괴된다고 봐야 되겠죠."
국내 태양광 보급량은 올해 3기가와트도 채우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이후 증가세가 꺾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기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느냐 논쟁이 매우 정치화됐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국가 에너지 산업조차 이념과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권경락/기후환경단체 플랜1.5 활동가] "실제 비리가 있었을 수 있죠. 그런데 이제 이거는 전체 발전량, 전체 발전소를 다 합하면 아마 1%도 안 될 거예요. 나머지 99%는 어떻게 되는 거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태양광이 우리 경제에 하나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이제 뿌리까지 흔들게 되면 좀 미래가 어둡다고 볼 수밖에 없죠."
◀ 이휘준 ▶
태양광 산업이 위축되는 걸 보니까 앞에서 본 친환경 빨대와 비슷합니다.
틈날 때마다 기업 경쟁력 얘기하던데, 오히려 산업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 최경재 ▶
친환경 산업을 녹색경제라고 부릅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이 시장이 850조 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미 석유나 가스보다 시장이 크다고 합니다.
◀ 이휘준 ▶
며칠 전에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소식도 있었는데, 이러다 한국의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 아닙니까?
◀ 최경재 ▶
특히 재생에너지 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경쟁력이 추락할 거라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기후변화 대응 평가에서 한국은 64위, 산유국들 빼면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 VCR ▶
지난주 네덜란드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회장과 함께 네덜란드 회사, ASML을 찾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네덜란드 순방 ASML 방문, 12월 12일(현지시간)] "ASML이 만들어낸 반도체 산업의 혁신은 인공지능, 5G,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의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ASML.
'극자외선 노광장비'라는 초정밀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유일한 회사입니다.
머리카락 굵기 1만분의 1, 10나노미터 이하로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습니다.
한 대 무게가 180톤.
그런데 이 장비는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460가구가 쓰는 전기와 맞먹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장비를 대거 도입해 평택 캠퍼스 반도체 설비를 늘릴 계획입니다.
삼성전자는 부산시보다 많은 전기를 씁니다.
삼성전자가 올해 8월까지 국내에서 쓴 전기는 15.6테라와트시. 이 중 재생에너지는 13%입니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RE100.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만 100% 쓰자는 캠페인입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전 세계 426개 기업이 참여했는데,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은 납품 업체에도 100% 재생에너지만 쓰라고 요구합니다.
[홍종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글로벌 회사들이 우리나라 국내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RE100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너희와 계속 거래하기가 어렵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통보식으로 한다는 거예요."
삼성전자도 이런 국제적 압박에 못 이겨 뒤늦게 지난해 RE100에 가입했습니다.
애플보다 6년이나 늦었습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구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황호송/삼성전자 상무(대한민국 에너지대전, 2022년 11월 2일)] "당장 올해, 내년에 100% 재생에너지 전환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늘려나갈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경제성이 있고 충분한 물량의 그런 재생에너지 옵션이 많지 않다는 것, 이게 저희로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움직임에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오히려 축소하고 있습니다.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대폭 줄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RE100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재명/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윤석열/당시 국민의힘대선후보 (2022년 2월 3일)]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네?" <RE100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죠." <RE100.> "RE100이 뭐죠?" <그러니까 이게 재생에너지 100%.> "재생에너지 100% 그게 현실적으로 저는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핵심 과제도 모르냐는 비판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석열/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대선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 후, 2022년 2월 4일)] "글쎄 뭐 대통령이 될 사람이 뭐 무슨 '리백'이나 이런 거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뭘까요?
정부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RE100 대신, CF100을 들고 나왔습니다.
무탄소 100%.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청정에너지에 원자력발전도 포함시키자는 주장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 9월 21일)] "대한민국은 무탄소 에너지 확산을 위해 전 세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인 'Carbon Free 연합'을 결성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호응이 별로 없습니다.
지난 6월,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내 500대 기업들에 'CF 100 참여 의사'를 물었더니, 82%가 '안 한다'고 답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이런 움직임은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샘 키민스/클라이밋 그룹(RE100 주관단체) 에너지 총괄책임자] "원자력은 전력을 생산하기 전 설계부터 프로젝트 완성까지 10~15년이 걸려요. 우리가 필요한 건 바로 사용 가능한 거고, 재생에너지는 그 간극을 채우기에 이상적이에요."
설치도 빠르고, 비용도 매우 저렴하죠. 또 다양한 규모로 설치가 가능하고요.
[임재민/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금 재생에너지 단가가 가장 싸졌기 때문에 그냥 그걸 선택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걸 만들면 되는 건데 우린 그걸 안 하려고 하니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인정해 주세요' 하는 거잖아요. 부끄러운 거죠."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8%.
OECD 평균 31%에 한참 못 미칩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는 40%를 이미 넘었습니다.
중국 29%, 일본 22%, 원전 강국인 프랑스도 24%나 됩니다.
최근 막을 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중대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습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도 3배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국제 기후연구단체들이 발표하는 기후변화 대응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67개 나라 가운데 64위를 기록했습니다.
밑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세 나라뿐입니다.
산유국을 빼면 한국이 꼴찌입니다.
[홍종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부가 여기에 눈을 닫고 귀를 닫고 있다면 무능한 거고요. 아니 그렇게 현 정부가 어떤 시장을 중시하고 친기업. 대통령께서 심지어 영업사원 1호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할 정도로 한국 경제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신다고 하는데 왜 유독 이 문제에 있어서는 왜 유독 기후와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이슈에 있어서는 정부 정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지."
◀ 이휘준 ▶
플라스틱 규제는 풀고, 재생에너지는 뒷전인 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연말 2주는 쉬고 2024년 새해에 뵙겠습니다.
최경재 기자(economy@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553984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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