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벨
한겨울 뒤집힌 유리컵 속에 파리 한 마리를 가둬넣고
기적을 보듯 아이와 나는 외로움을 보고 있다
마룻바닥에서 햇볕은 x축에서 y축으로
나른하게 늘어지고
나는 우리가 하늘 저 깊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느낌에
울고 싶어진다
유튜브 속에선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행사가 열리고
아이는 저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나를 조른다
끝까지 잘 해내고 싶다는 각오를 언제 처음으로 했던가
죽음으로 증명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세상이 끝장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나도 내 인생이 내가 가진 최고의 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새로움이나 시작이 없는 인생, 그것은
뒤죽박죽이자 서늘한 영원이다
컵 속에서 작은 생명이 온몸으로 으르렁대고 있다
박판식(1973~)
한겨울, 파리 한 마리가 시인의 생활 속으로 침입했다. 시인은 아이와 함께 유리컵 속에서 죽어가는 파리를 본다. ‘하늘 저 깊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외로움을 본다. 유튜브 속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데, 아이는 갈 수 없는 ‘저곳’에 데려가 달라고 조른다. 시인은 아이가 아직 세상에 없었던 아득한 시공을 더듬다가 오래전 각오를 떠올린다. 끝까지 잘하려던 열망과 초심은 이제 흐려졌다. 시인은 ‘새로움’이나 ‘시작이 없는 인생’은 ‘서늘한 영원’이라고 노래한다. 한 해의 끝에서 ‘서늘한 영원’을 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리는 인간에게 유해하지만, 인간은 지구에 가장 유해한 종족으로 내일을 조금씩 까먹는다. 마지막 파리의 날갯짓에서 시인은 벨소리를 듣는다. 여기저기서 결심의 둑이 무너지고 위험한 벨이 울리고 있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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