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레드팀보다 언론 먼저
마음이 조막만 한 편이라 다른 사람에게 비판받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 드러내서 남을 비판하지 않으려 노력하기는 한다.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지라 항상 내 마음이 편한 대로 일을 할 수는 없다.
지난 7일은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날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16일 치른 2024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 150일 정도를 앞두고 갑자기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고 지시한 그 수능의 결과다. 정부는 채점 결과를 발표하면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정부가 발표한 대로만 쓰지 않았다. 그날 수능 채점 결과를 전한 기사의 제목은 “‘역대급 불수능’…킬러 빼고 변별력 잡으려다 ‘적정 난이도’ 잃었다”였다. 입시 전문가의 “평가원은 올해 수험생들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을 인용했고, ‘킬러 문항 배제’의 목적이었던 사교육 약화는커녕 사교육 심화를 불러오게 생겼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기사는 교육을 담당하는 취재기자가 썼지만 최종 검토와 전송은 내 몫이었다.
같은 날 정부는 ‘학교폭력 사안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SPO) 역할 강화 방안’도 발표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교사가 사안 조사를 하면 오히려 교육적인 부분을 소홀히 할 수 있고 불필요한 여러 갈등이 야기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전문가들이 맡도록 하고 교사들의 교육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냈다. 경향신문은 또 ‘딴지’를 걸었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충실히 전하면서도 ‘경미한 사안까지 외부 조사관에게 맡기는 것은 교육적 해결 방안이 아니다’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비중 있게 담았다.
역시 같은 날 환경부는 ‘치수 패러다임 전환 대책’을 발표했다. 전국의 지류·지천에서 준설 사업을 확대하고 댐 10곳을 추가로 짓는 것이 골자였다. 환경부는 “기존 치수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빈틈을 메꾸고, 국민 처지에 가까운 치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규모만 작은 ‘제2의 4대강 사업’을 벌이려 한다”는 환경단체의 비판성명도 함께 담았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많은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만났다. 출입처를 떠난 뒤에도 아직 안부를 주고받는 분들도 있다. 길지 않은 경험이지만 나는 한국의 공무원 중에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내놓는 정책에도 선의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정책에 관한 기사를 쓸 때는 그들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비판적인 시각을 담으려 애쓴다. 그게 결국은 정부의 정책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이 사회를 튼튼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기자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최근 대통령실에 ‘레드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레드팀은 기업 등에서 조직 내 확증편향으로 정보를 잘못 판단하는 일을 줄이기 위해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엑스포 유치전에서 완전히 잘못된 정보만을 들었고 이는 조직 내에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에서 나온 해결 방안이다.
여기저기서 하는 레드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 사람이 없었을까. 대통령실 내부에는 없었을지 몰라도 문밖에는 수두룩했다. 특히 대통령이 그토록 개혁하고 싶어 하는 ‘일부 언론’은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완전히 다른 목소리를 전하려 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그런 목소리를 보고 들을 방법이 없었을까. 정보통신망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는 ‘나와 관련된’ 소식을 듣기보다는 안 듣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렇다면 결론은 아주 간결해진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이 열심히 보고 들으면 된다. 민심 탐방을 한다고 밖으로 자주 나설 필요도 없다. 다양한 신문과 방송을 보면 끝난다. 거창하게 레드팀을 구성한 뒤, 없는 시간을 쪼개 반대 의견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대통령실 내부 조직 개편보다 언론에 관한 인식 변화가 먼저다. 현 정부를, 대통령을, 여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가짜뉴스’라며 백안시하지 말고 이 사회의 수많은 목소리 중 하나라 여기고 귀담아들으면 그게 바로 레드팀이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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