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여자도 군대 갔다면, 달라졌을까
76세이신 어머니는 명절을 제외하고도 1년에 여섯 번의 기제사를 준비하신다. 50년째다. 이제는 친척들도 돌아가셨거나 고령이시기에 찾아오시는 분도 거의 없다. 심지어 82세 아버지와 단둘이서 기제사를 지내시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도 등장음식 만큼은 변함이 없다. 절하고 일어나는 것도 벅차하시지만, 새해 달력에는 언제나 제사일부터 적으신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해야 된다면 파격적으로 횟수를 줄이자, 하더라도 음식을 간소하게 하자 등등의 논쟁이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아버지 평생의 가치관이 수정되진 않았다. 어머니가 너무 고생하시니 생각을 달리할 때가 되었음을 본인도 아시지만 엄숙하게 여겼던 평생의 기준을 끊어버리는 게 쉽지 않으신 듯하다. 그렇게 ‘성차별’은 일상이 되었다. 할머니 제사에서도 할아버지 술잔부터 따르는 게 원칙인 남존여비 유교행사가 어찌 성별 평등하게 준비되겠는가. 하지만 아버지 입에서 “여자는 군대를 안 가니까, 당연히 해야지”라는 말이 나온 적은 없다. 어머니의 체념 안에 “여자도 군대를 갔으면, 달랐겠지”라는 추론이 비친 적도 없었다.
선거 전에 여러 공약들이 난무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병역과 가사노동이라는 결이 전혀 다른 두 개가 ‘성평등’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비슷한 맥락을 지닌 것처럼 떠돌 줄은 몰랐다. 여성의 군복무야 생각하기 나름일 거다. 남성만의 징병제를 차별로 규정하고 여성‘도’ 군대를 가는 게 공평하다고 주장할 순 있다. 철저히 안보적 관점에서 병력자원이 감소하니 지금은 성별 가릴 때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정의 성평등을 위해 여성의 군복무가 필요하다는 건 도대체 어떤 발상인가.
전투에는 남성이 적합하다는 식의 여성배제 논리를 비판하면서 여성‘이’ 군대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지 않냐’면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남자가 육아에 더 참여하는 정책이 효과가 있을 거라니 황당하다. 여러 정치지형의 교집합을 찾다 보니 지나치게 계산적이었다는 비판은 차치하고, 그 답이 실리라도 있을까. 지금처럼 남자‘만’ 군대 간다는 표현을 그대로 흡수하면, ‘여자도 개고생 해봐라’라는 징벌적인 성격으로 제도가 변할 뿐이다. 그러면 군대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신체적인 한계에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딱지가 붙을 수밖에 없다. 가정의 성평등을 위해서는 모성, 엄마신화, 여성다움 등 문화적 편견이 깨져야 하는데 가능하겠는가?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 구조적 변화만큼 중요한 게 ‘그게 왜 필요한지’에 관한 합의다. 그건 여성이 지닌 돌봄의 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결혼 기피와 저출산 같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일 거다. 이 심각성에 이견이 없다면, 다음 수순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왜 남자만 군대 가냐!’라는 추임새가 붙을 이유가 없다. 이건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붙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그릇된 문화의 힘’으로 접착되었을 뿐이다. ‘떼는 게’ 정치의 존재 이유요, ‘붙이지 않는 게’ 정치인의 기본자격일 거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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