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류호정 의원의 ‘탈당’과 ‘제명’ 사이
‘폐쇄형’ 정당명부식 제도에서
유권자는 오로지 정당을 선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례의원이
‘날 제명해 달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 공직선거법은 바람직할까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런 류 의원이 ‘새로운 선택’ 신당 창당 합류를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 비전과 소속 정당의 비전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란은 류호정 의원이 새로운 정당 합류를 선언하고도 정의당을 통해 얻은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생겨났다. 정의당은 지난 16일까지 의원직을 사퇴하고 당적을 정리해달라 요구했지만 류 의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정의당이 류 의원의 당원 자격을 박탈하고 제명조치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 이유는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92조 4항은 비례대표 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둘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의원직을 잃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제명 외의 사유’인데, 쉽게 말해 비례대표로 당선된 의원이 자진해서 당을 나와야 의원직을 잃는다. 의원직 유지가 목표라면, 정의당이 자신을 제명하는 게 류 의원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제명 외의 사유’라는 조건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할까? 이 규정이 정당하다고 보는 입장은, 비록 정당의 추천으로 의원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이 되었기에 그 자격을 박탈하는 권한은 정당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대표 정치체제와 우리 선거제도의 이해에 대한 부족에서 나온다.
흔히 우리는 ‘의회정치’와 ‘정당 민주주의’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지만 알고 보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버나드 마넹은 <대표 정부의 원칙들>(1995)에서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우선, 의회정치는 대표 민주주의의 초기 형태로서 지역 연고, 사회적 유명함이나 존경에 기반을 두고 당선된 개인들이 자기 양심과 판단에 따라 의회 활동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의회정치는 투표권이 제한되어 있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유권자와 대표자 사이의 친밀감에 기반을 두었다.
하지만 투표할 권리가 사실상 모든 시민에게 확장된 정당 민주주의에선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유권자와 대표자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더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어떤 정당의 색깔을 가진 사람에게 투표한다. 예를 들어, 잘 모르는 사람이 대표자로 나오더라도 지지하는 정당이 추천했다면 믿고 투표하는 경우다.
이처럼 정당을 믿고 투표하는 경향이 극대화된 제도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가 극대화되면 각 정당은 득표한 비율만큼 의석수를 차지하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이 체계에선 각 정당이 누가, 어떤 순위로 의원이 될지 정하는데 이를 ‘정당명부’라 부른다.
이 정당명부를 작성하는 방식은 크게 ‘폐쇄형’과 ‘개방형’으로 나뉜다. ‘폐쇄형’은 정당이 일방적으로 누구를, 어떤 순서로 추천할지를 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개방형’은 정당이 후보를 추천하지만, 그중에서 유권자 개인이 선호하는 후보를 고를 수 있다. 실제 벨기에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헌법상 정당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비례대표 선출은 ‘폐쇄형’ 정당명부식 제도를 쓰고 있다. 모든 유권자는 1인 2표제 아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한다. ‘개방형’ 명부라면 유권자가 개별 의원을 선택했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폐쇄형’에서 유권자는 의원이 아니라 오로지 정당을 선택하는 구조다. 이렇게 보면 비례의원이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되었기에 그 자격을 박탈하는 일은 정당에 있지 않다’는 입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정당 민주주의 체제에선 비례의원뿐만 아니라 지역구 의원 역시 당원들의 지지 혹은 정당의 추천과 같이 정당의 도움 아래 당선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의원들은 정당의 결정에 대체로 구속된다. 만약 정당의 구속 없이 활동하고 싶다면 당원들이 보내는 지지를 상실하고, 다음 선거에서 정당의 추천을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이를 두고 마냉은 이렇게 쓴다.
“한스 켈젠은,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모범적으로 표현한 저술에서, 정당이 선출된 대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제안했다. 즉, 정당을 떠난 대표는 사임해야 하고, 정당은 대표를 해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나를 제명해달라’고 외칠 수 있게끔 허용하는 우리 공직선거법이 고려해야 할 견해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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