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고려 석조불상의 모델 개태사 삼존입상, 국보 가치 충분
고려시대 최고 작품… 국보지정 당연
개태사지 규모 내용 추가 발굴 필요
개태사 삼존입상 국보 승격 포럼
고려 태조 왕건이 세운 충남 논산시 연산면 개태사의 석조여래삼존입상(삼존입상)이 과연 국보가 될 수 있을까? 논산시는 지난 2022년 문화재청에 개태사 삼존입상을 국보로, 개태사지(옛 절터)를 국가사적으로 각각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동안의 발굴조사와 학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삼존입상과 개태사지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최근 논산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논산시 주최, 한국자연환경연구소 주관으로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 국보 승격을 위한 전문가 학술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서는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이 삼존입상의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 특징과 제작 배경 등에 대해 발제를 하고 토론을 진행했다.
다음은 전문가들의 주제발표 요지.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연구성과와 과제(정은우 부산시립박물관장)
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황산벌에서 후백제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통일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삼존입상은 본존불 높이 446.2cm, 좌협시보살입상은 374.8cm, 우협시보살입상 369.8cm로서 거의 장육존상에 가깝다.
개태사는 고려개국과 함께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라는 중요한 역사성을 가졌다. 함께 세워진 삼존입상은 향후 고려시대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였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고, 왼손은 손가락을 구부려 배에 댄 모습의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으로 "두려워하지 말라 모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의미로 새로운 왕조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개태사의 대형 석조불상 양식은 충청지역을 비롯 개성, 경기도 등으로 확산된다. 높이 18m의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높이 10m의 대조사 석조보살입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 삼존입상 불전 창건 기단 발굴조사와 의의(김종만 충청문화재연구원장)
석조여래삼존입상 불전은 고려 초 창건 이래 몇 차례에 걸쳐 변화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불전이 소실되고 불상마저도 우협시보살상을 제외하고 본존불과 좌협시보살상이 절단되는 등 화를 많이 입었다.
1986년 발굴조사는 고려 태조 왕건 때 조성한 삼존입상이 이전되지 않고 창건 기단에 봉안돼 있었음을 확인했다. 1987년에는 좌협시보살상의 불두가 발견돼 불상의 본 모습을 찾게 됐다
삼존입상을 모신 불전은 940년에 완공된 것으로 기단의 규모가 정면 25.1m, 측면 13.9m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버금가는 시설로 고려시대 초기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개태사지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국가사적 승격이 필요하다. 개태사 관련 문화재는 철확, 오층석탑, 석조, 국내 최대의 금고(金鼓 쇠북), 고려시대 최대 크기의 국보 금동대탑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개태사지를 국가사적으로, 삼존입상을 국보로 승격시키는 게 충분함을 뒷받침해준다.
개태사 삼존입상은 고려 초기 불상의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조각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출토지와 연대가 확실한 불교공예품으로 국보 승격은 당연하다.
◇ 고려 전기 불상의 조성과 시대적 함의(권보경 동국대학교박물관 전임연구원)
개태사지 석조삼존불입상은 고려 태조의 후원으로 조성한 기념비적인 불상이다. 이 삼존상과 태조와 관련이 있는 철불을 포함하여 보았을 때 고려 전기 불상의 조성에는 다음과 같은 시대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고려 전기 불상 양식의 다양성은 고려 초기 전국에 불사가 증가하면서 각 지역의 자원과 인력을 활용하였던 당시 사회상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둘째, 대형 불상은 기념비적인 성격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 태조는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곳에 개태사를 짓고 대형 삼존불을 조성하였다. 대형 불상은 기념비성을 강조하고 왕실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한 조형일 가능성이 있다.
셋째, 철불 조성을 포함한 창건 및 중창 불사는 무기 회수, 자원의 재활용과 관련이 있으며,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를 알리는 가시적인 선전물이다. 불사를 통해 전쟁에 지쳐 있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낙성법회 등으로 백성을 참여시켜 민심을 규합한 것이다.
넷째, 고려 초기 태조가 발원한 불상은 태조의 신성성과 결부되어 후대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태조가 발원한 불상 양식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확대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삼존입상의 특징과 제작 배경(민활 불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고려시대 석조불상이 많이 현존하지만 정확한 조성 연대와 제작 배경을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개태사 삼존상은 사찰과의 관계가 명확하고 정확한 조성연대를 갖고 있으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봉안 위치 또한 변함이 없다.
또한 통일신라시대 불상들과 다른, 새로운 미감이 반영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독특한 신체 비례와 원통형에 가까운 불신, 상호를 비롯한 손, 발 등의 세부 표현들은 고려시대 석조불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존 최대 석조불상인 논산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이나 부여 대조사 미륵보살입상 등은 개태사 삼존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작품들이다.
개태사 삼존입상은 개태사 창건과 관련한 시대성을 대표하고, 고려시대 석조불상 중 연대와 봉안 위치, 조성 배경을 알 수 있는 극히 희소한 사례다. 또한 이후에 조성되는 고려시대 석조불상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하는 것이 타당하다.
◇ 삼존입상 및 개태사지의 보존과 활용(한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개태사와 개태사지는 동일 유적이므로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둘은 마치 다른 유적인 것처럼 분리되어 있다. 또한 두 곳을 함께 떠올릴 장치도 부족한 편이다.
건축유적은 여러 건물과 유물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적인 문화유산으로, 장소성과 상호 연계성이 중요하다. 개태사지는 고려 건국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가지며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셨던 진전사원의 역할도 이미 알려졌다. 그러나 삼존입상은 개태사지의 영역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할 수 없다. 개태사지에 대한 전체적인 규모와 그 내용이 아직도 미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발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고증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들이 정비계획의 토대가 될 것이다. 조사연구의 과정에서도 유적 자체를 방치하지 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단계적인 정비와 관리가 꼭 필요하다.
개태사 주지 의상당 양산 대종사"개태사 발굴, 복원, 정비에 많은 관심을"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을 처음 봤을 때 부처님께 미안한 생각도 들고 안타까웠습니다. 꼭 국보로 지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양산 주지는 개태사 중창에 헌신해왔다. 1998년 개태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4년에는 조계종 종단 일을 그만두고 개태사에 정착했다. 토지를 매입하고 크고 작은 전각을 짓는 등 불사에 매달렸다.
"개태사는 고려시대 왕실사찰이었으나 조선조에서 쇠락을 거듭했고, 모든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여러 불자들의 도움 덕분에 이제 도량으로서 틀을 조금 갖췄습니다."
그는 "남북한의 석불상을 거의 다 봤지만 개태사 삼존입상만큼 원만하고 청정한 불상은 없다"며 "국보 승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처님께서 지켜줘 삼존입상과 개태사 터가 지금까지 보전돼왔다며 개태사가 제대로 발굴, 복원, 정비될 수 있도록 당국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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