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 시대 지적재조사사업
2019년 8월, 폭염 대신 7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전국에 큰 비가 오는 가운데 전북 남원시의 귀상·귀석지구는 시간당 500㎜가 넘는 폭우로 마을 전체가 수몰되고 6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일대는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이고, 불분명해진 토지 경계로 주민간 분쟁으로까지 이어져 주민들의 심적·물적 고통은 극에 달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적재조사사업으로 침수피해 규모를 신속하게 확인하고 경계가 사라진 지역의 경계를 복구하여 주거안정을 지원하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시킨 경험이 있다. 최근 괴산댐 월류 등 잇따라 발생한 기후위기 재난을 지켜보고 있으면 토지나 건물과 같은 부동산에 관한 현황과 권리관계를 등록하고 관리하는 지적(地籍)사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책임수행기관인 LX공사 및 지자체, 민간기업과 함께 2012년부터 지적재조사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 사업은 1910년 종이로 제작된 토지대장이 변형·훼손되어 생긴 지적정보의 오류, 개발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른 현실과 토지대장 간의 경계선 불일치(지적불부합지) 그리고 홍수, 태풍같은 자연재해와 해안침수로 인한 지적정보 변경이 발생한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다. 2030년까지 전 국토의 14.8%인 542만 필지를 대상으로 디지털 지적정보를 구축할 계획인데 23년말까지 169만 필지가 정비될 예정이다.
토지변화를 추적·관찰하는 지적재조사사업을 통하여 토지의 위치와 면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국토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종이 도면을 디지털화하고 위성영상과 중첩한 지적정보로 관리함으로써 경계분쟁을 해소하고 재난대응도 용이해진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지적재조사 사업의 유용성에 공감한 인도네시아가 우리 정부에 지적재조사 노하우 전수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지적정보 관리의 중요성은 기후위기시대에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36%가 해안가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침식과 수몰 예상지역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면서 일부 국가는 파도에 휩쓸려 소멸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내륙지역도 기후위기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툴레어 지역에서는 홍수로 100년 전 사라졌던 호수가 다시 생겨 대규모 농토가 사라졌지만, 지방정부의 대응은 침수지역이 확대되지 않게 둑을 쌓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 해수면 상승으로 포락지(물에 잠긴 땅)가 생겨 토지 소유자가 소유권 상실을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폐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전 세계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다시한번 공감하였는데, 대한민국도 국제사회로부터 더 큰 역할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국제공동연구에 관심을 갖고 지구촌이 함께하는 미래 기후위기 대응전략에 동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해수면상승, 홍수에 따른 침수 등 기후위기에 따른 토지경계의 변경에 따라 대규모 지적불부합지가 발생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국제공동연구를 월드뱅크에 제안한 바 있다.
공동 연구는 각 국가별, 자연재해별 대응사례를 조사하고, 지적재조사 노하우를 활용한 표준화된 대응가이드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 노하우에는 토지 경계의 변동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갈등관리가 포함된다. 기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경계가 사라진 토지에서 경계를 다시 설정하고, 대규모 토지가 영구 침수되어 주거지와 농지를 상실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여건을 새로이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갈등관리는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이 연구는 토지변화 예측 모델과 대응방안을 정립함으로써 한반도에 적합한 기후위기 대응방안 마련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만, 국내에서도 실질적인 실행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지적재조사를 포함한 전 분야에서 체계적인 국제공동사업과 더불어 국내실증사업을 진행한다면, 대한민국은 '생각은 글로벌,행동은 로컬의 글로컬혁신'에서 선두주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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