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경제통 역대 최소…반시장·반기업 입법 쏟아져
기업인·경제학자 등 전문가
2000년대 이후 가장 적은 29명
“이마트 매출이 떨어지니까 나온 법인데 어떻게 동의해줍니까.”(박영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달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의무 휴업일에 대형마트의 온라인 영업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이날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유통산업의 경쟁 구도가 ‘대형마트 대 온라인 플랫폼’으로 바뀌면서 2020년 7월 발의된 이 법안은 민주당의 반대로 3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586세대 운동권 출신인 박영순 의원은 “재벌이 소유한 유통기업의 주가가 빠지니 한국경제인협회가 나서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기업이 원하는 건 무조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전통시장 상인들도 찬성하는 규제 합리화법이라는 설득에는 “믿을 수 없다”며 애써 귀를 닫았다.
이런 답답한 장면은 21대 국회 4년 내내 반복 재현됐다. 규제를 없애고 혁신을 지원하는 법안은 번번이 가로막혔고, 반시장·반기업·포퓰리즘 입법만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국회에 시장과 기업 경영, 글로벌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제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국경제신문이 16대부터 21대까지 국회의원의 과거 직업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업인·경제 관료·경제학자 등 이른바 경제통이 21대 국회 때 29명으로 가장 적었다. 가장 많은 19대 국회 때(55명)와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그나마 있는 경제통의 합리적 목소리도 극단적 정쟁과 선명성 경쟁에 묻히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경제통들은 초선을 끝으로 국회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후진적인 정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최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증권사 사장 출신 홍성국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세계 경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고, 인공지능(AI) 같은 기술 혁신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인데 한국 국회는 정쟁만 일삼으며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현재 10%에 불과한 국회 내 경제통 비중이 최소 두 배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꾼 득세에 사라진 경제통…19대 55명→21대 29명
정책토론없이 포퓰리즘 경쟁 치중…각종 특별법·재정 퍼주기만 횡행
21대 국회에서 경제통은 여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증권사 사장을 지낸 홍성국 의원과 카카오뱅크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용우 의원,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홍정민 의원 정도가 전부다. 중소기업중앙회 경제본부장을 지낸 김경만 의원도 당내 경제통으로 분류된다. 경제 관료 출신은 맹성규 의원(국토교통부 차관), 정일영 의원(인천공항공사 사장) 정도다. 국민의힘에는 그나마 유경준 의원(한국개발연구원·KDI)과 윤창현 의원(금융연구원)을 비롯해 정우택(경제기획원)·추경호(기획재정부 1차관)·류성걸 송언석(이상 기재부 2차관)·김희국 송석준(국토부) 의원이 있다. 한무경·안철수·박덕흠 의원 등은 기업인 출신이다.
이들을 포함해도 21대 국회의 경제통(29명)은 16대(39명) 17대(35명) 18대(36명) 19대(55명) 20대(34명) 등과 비교해 2000년대 들어 가장 적다. 19대만 해도 강석훈 의원(성신여대 교수)을 비롯해 유일호(KDI)·나성린(한양대 교수)·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안종범(성균관대 교수)·김종훈(통상교섭본부장)·윤진식(청와대 정책실장) 의원 등 쟁쟁한 경제통이 즐비했다.
민주당 등 현 야권에도 김진표(부총리)·장병완(기획예산처 장관)·이용섭(국세청장)·김관영(재정경제부)·홍종학(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의원 등 거시경제 및 재정·세제, 기업 정책 전문가가 많았다. 19대 국회에 민간 기업과 경제 관료 출신은 각각 22명, 경제학자 출신은 11명에 달했다.
21대 국회에 경제통이 워낙 적다 보니 저성장 타개, 연금·노동 등 구조개혁, 거시 재정정책 같은 굵직한 경제 아젠다를 놓고 치열한 정책 토론이 사라졌다. 20대에는 국회에 ‘경국지모’(경제를 공부하는 국회의원 모임) 같은 공부 모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 지역에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공항과 철도를 깔기 위한 각종 특별법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최운열 전 의원은 “경제통은 포퓰리즘에 빠지기 쉬운 정치를 더 건전하게 이끄는 존재”라며 “시장을 아는 경제통이 원내에 많이 진입해 국회를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재영/설지연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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