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죽리마을의 기적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3. 12.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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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군에 가면 죽리마을이 있다.

이곳이 죽리마을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고, 건물 외벽 한쪽에서는 꿀벌 여러 마리가 '웰컴 투 죽리(WELCOME TO JUK-RI)'라는 문구로 외지인을 맞이한다.

죽리마을엔 다른 농촌에서 보기 힘든 생기가 있다.

죽리마을이 이렇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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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군에 가면 죽리마을이 있다. 전체가 64가구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다.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이다.

큰길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곳이 죽리마을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고, 건물 외벽 한쪽에서는 꿀벌 여러 마리가 '웰컴 투 죽리(WELCOME TO JUK-RI)'라는 문구로 외지인을 맞이한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낡은 마을 창고 외벽에 멋진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담벽과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 멋지다. 담벼락 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화려한 색의 타일로 만들어진 벤치 덕분에 사진 명소가 된 소공원도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조성한 구엘공원을 닮았다.

마을 한쪽 끝에 새로 지은 건물에는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 공간이 있다. 깔끔한 내부에서 가족이 함께 소시지를 만들 수 있다. 이 마을로 귀촌한 배우는 가끔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죽리마을엔 다른 농촌에서 보기 힘든 생기가 있다.

죽리마을이 이렇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죽리마을은 낡은 농촌 모습 그대로였다. 무려 15채가 빈집이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다 보니 유리는 깨지고 담은 무너져 있었다. 그야말로 흉물이었다. 빈집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주민들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을이 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게 된 건 김웅회 씨가 2010년께 이곳으로 귀촌하면서부터다. 거제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린 시절 추억 속 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2013년 이장이 된 그는 마을 바꾸기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자체 협조를 받아 주민들과 함께 꽃길을 조성하고, 빈집을 허물기 위해 주인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도시에 나가 있던 집주인들은 처음엔 반대가 많았지만 거듭된 설득에 마을을 위해 집터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장은 기대에 부응해 집을 허문 자리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마을로 내려오는 외지인들을 위한 귀농인의 집 6채를 짓고, 공용 주차장과 공원 등을 조성했다. 마을 수익사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소시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주민은 20% 가까이 늘었고,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연간 700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다른 지자체 공무원 등 관계기관 방문객이 유독 많다. 이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인들이 찾는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죽리마을의 기적을 보면서 리더의 역할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이장의 헌신이 없었으면 애초 불가능한 성과였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다. 그러자면 생각과 가치의 공유가 필요하다.

김 이장이 처음 시도한 것도 주민들과 수차례 포럼을 열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터무니없이 싼값에 주택을 임대해주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돈으로 끌어들인 주민은 지원이 끊기면 마을을 떠나게 된다.

농촌 소멸 문제는 정책적 예산 지원에 앞서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음을 죽리마을이 보여주고 있다.

[정혁훈(농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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